비평가와 함께하는 세모테이블 / 2015_0422_수요일_04:00pm
진행 / 佳雨 대담 / 김노암_윤진섭_황인
참여작가 권순왕(CEAAC)_김선태(고양)_두눈(메세나폴리스)_문혜정(고양) 신수진(영은)_안진국(양주)_양정화(고양)_오용석(바이칼노마딕) 이성구(고양)_이은숙(고양)_이중근(씨떼)_전지연(고양) 정재철(아트오마이)_최성훈(난지)
주최 / 아루슨 ARUSN 후원 / 서울문화재단_서교예술실험센터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 SEOUL ART SPACE SEOGYO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6로 33(서교동 369-8번지) B1 Tel. +82.2.333.0246 cafe.naver.com/seoulartspace www.seoulartspace.or.kr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물질과 정신의 통합적 지속성을 갖는다. 이 지속성은 인간의 거처와도 연결된다. 동굴에 거주하면서도 예술성을 추구해온 유일한 생물체. 거주와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이 시대의 거주는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 이 시대의 예술가에게도 거주는 중요한 요건이며 새로운 변형의 관계망을 갖는다. 니이체가 '인간은 세상의 다리'라고 했듯이 거주는 창작의 다리로서 거점의 연결망으로 공동체의 자리가 된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지고 우리의 의식이 존재하는 순간 선택은 순간순간 이동한다. 거주는 예술가에게도 선택적으로 요구된다. 21세기가 되면서 글로벌리즘은 미술계에도 숲속의 새집 캠페인처럼 세계적으로 창작 레지던시 공간들이 나타났다. 그와 맞물려 우리나라도 미술관에서 창작 레지던시가 시작된 것이 10여년이 지나가고 있다. 미술학도들에게 개인 공간을 넘어서 서로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즈음 레지던시가 생겼다. 그동안 미술계와 예술가들은 새로운 작업공간에 대해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대안으로서 개인 창작공간의 새로운 형태의 작가 공동체를 국가 주도로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2에 국립창동레지던시, 2004년에 국립고양레지던시가 그 시작이다.
후기인상주자 고호와 고갱은 아를에 있는 공동의 거주공간에서 작품을 했었다. 이 시대에 예술가 역시 자신의 예술세계를 위해서 빈번하게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이것은 예술가의 다리같은 거처다. 이러한 장소는 창작의 다리로서 비워진 공간이다. 하이데거는 「건축함 거주함 사유함」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리는 사물이며, 사방을 결집하며 모아들이는데, 그렇지만 사방에게 하나의 터전을 허락하는 방식으로 결집하며 모아들인다. 이러한 터전으로부터 자리(Platz)들과 길(Weg)들이 규정되며, 이것들을 통해 공간(Raum)이 마련된다." "공간이란 본질적으로 마련된 곳(das Eingeräumte), 즉 자신의 경계 속으로 들여보내진 곳(das Eingelassene)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경계는 사방으로 이동하는 장소로서 움직이는 공간이다.
세계적으로 인류의 최근의 경향은 디아스포라시대에 놓여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아시아 3세계 국가로 이동했고 작가들은 창작활동을 위해 새로운 거주의 형태를 찾아서 떠다니고 있다. 그 중 창작 레지던시는 국가나 지자체에서 실행하고 있는 거주의 형태를 능동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여기는 소유의 거주지가 아니다. 작가들은 새로운 거주 공간에서 취향이 다른 작가들과도 교류하며 많은 정보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이렇게 새로운 공간에서의 활동은 분명 많은 점들이 창작활동에 도움을 준다. 또한 서로 교류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도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시간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동안의 유목했던 공간들에 대해서 회고해야 한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진리같이 통용되는 말 중 하나는 '오래 버티기'이다. 이는 창작 활동이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며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시대의 거주란 창작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창작활동에 있어서도 거주는 몸과 예술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공간은 사고를 지배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영원히 '유목하는 인간(L'homme nomade)'에게 필요한 것은 자리에의 정념.
이 시대의 거주란 어떤 것이고 이러한 공간은 어떻게 유지되며 창작이란 지속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변증법적 결론에 이른다. 지속은 끝없는 소여들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선택을 하는 순간 다른 선택으로부터 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예술가는 버티기라는 큰 틀에서 이동하는 특정한 거주를 선택하며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현실에 부재하는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거주를 확장시킨다. 이제 오래된 친구들은 SNS의 공간에 머물며 선택의 폭을 넓힌다. ● 이러한 상황아래 지속가능한, 거주, 또는 지속성을 갖는 창작 활동이란 자기 조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맞물려 있다. 최근까지 레지던시 공간이 예술가들에게 어떠한 의미나 활동을 준 것은 확실하다. 이제 레지던시 공간을 떠난 작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창작의 열정적인 지속을 위해 자기조직력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거주의 지점을 확보해야한다.
자크 아탈리는 『유목하는 인간』에서 "생물체들의 그 엄청난 뒤얽힘은 이동성, 미끄러짐, 이주, 도약, 여행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지금시대 예술가의 거주는 미끄러지듯 생동하는 다리에 존재한다. 이 거주의 다리는 전시를 통해서 결합과 확산을 시도한다. ● 이번 서교실험센터에서 열리는 전시는 초기 레지던시 작가들과 다른 레지던시 공간을 경유했던 작가들과 마주하는 공동체의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도 레지던시 세대는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이번 전시기간 동안에는 다른 시간을 경험한 동시대 작가들이 마주보는 세모테이블에서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교차할 것이다. ● 부유하는 섬처럼 고독한 존재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예술가들은 각자가 섬이요. 스스로의 등불이다. 우리나라 레지던시 10년 이상 지난 지금 각자의 성좌를 만들어가는 레지던시 작가들이 있다. 은하계에서 벌어지는 별들의 생성과 소멸, 이동하는 혜성들. 지속적인 창작 활동은 레지던시 공간이 유용했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파토스는 청중의 감성에 호소한다는 그리이스어이며 '격정, 정념, 동적인 감정 상태나 격동하는 마음, 고통, 상태'등이다. 『거주-지속의 파토스』 10년 동안의 조우를 기대한다. ■ 佳雨
Vol.20150421c | 거주-지속의 파토스 Residency-Sustainable Patho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