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30pm
백송갤러리 BAIKSONG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1-8 (관훈동 197-9번지) Tel. +82.2.730.5824 www.artbaiksong.com
정처 없는 여정-25년의 결실 ● 60 간지(干支)의 인생 노정을 한 바퀴 돌아 자연 앞에 선 화가는 말한다. "나의 회화세계는 다른 것 아우르는 혼성의 드러냄이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에서 그림공부를 했으며 남태평양의 섬 뉴질랜드를 거쳐 경기도 안성 미리내의 빛 좋은 언덕에 둥지를 틀기 까지의 60 성상(星霜)을 결산하는 말이다. 학업을 마치고 첫 개인전을 연 1990년을 시점으로 삼는다면 화가로서 25년의 화업이 구축한 예술세계일 것이다. ● 양규준의 혼성적 회화세계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그의 사변적 성품과 삶의 치열함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세계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이 만들어낸 하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돌이켜 보면 1990년 이전의 한국미술은 크게 모더니즘 계열과 신형상 계열로 양분되어 있었다. 소위 회화의 순수성과 실험성에 무게를 둔 모더니즘과 이에 맞서 세계적으로 등장한 신형상 미술이 화단의 주류로 부상하던 시절. 그는 이 두 개의 현실에 대응하며 청년화가로서 제3의 미술을 찾아 새로운 모색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 양규준이 첫 개인전에 선보였던 작품경향은 작가의 최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그는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에 동화되지 않았고 현실 탐구의 집단과도 멀리한 채 평면회화의 실험에 몰두했다. 당시 그가 찾은 세계는 '심상이 가미된 자연 풍경'이라 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운무에 쌓인 산봉우리가 원경으로 펼쳐진 장대한 공간을 배경삼아 홀로 서있는 한그루의 노송을 그린 연작이었다. 갑골처럼 거친 노송의 껍질과 부채모양으로 펼쳐진 잎사귀는 신비의 광휘로 물들고 그 주변에는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환상적 풍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심산 송월도를 연상케 하는 유화 시리즈에 작가는 '대지로 부터'라는 제명을 붙였다.
양규준이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는 신형상 미술이 다양한 양상들로 정착되기를 기대해 볼 만한 시기였다. 국전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형상성을 내세우는 민전시대가 나름의 성과를 거두면서 서구의 영향을 받은 극사실주의 경향이 집단적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양규준의 조형실험은 단색화나 민중미술 그리고 하이퍼 리얼리즘과도 거리를 둔 채 대지와 자연에 자신의 존재를 투영한 독자적인 환영적 풍경을 일구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집단적 이념과 파벌로 짜여 있던 국내 화단은 자신의 개성을 받아드리기 어려웠다 생각한 것일까. 그는 1997년 뉴질랜드로 홀연히 떠나버렸다. ● 남태평양의 섬나라는 그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제공해 주었다.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이방인의 삶 15년은 자신의 내면을 찾아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시간과 공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생각들이 뒤범벅이 된 터널'을 걷던 혼돈의 시기는 그에게 치열한 예술적 성찰의 시기이기도 했다. 뉴질랜드 북쪽의 어느 숲속에서 한 여름을 보내면서 얻은 경험은 평범한 것이면서도 자신의 노정에 소중한 지표를 제공했다. 작은 존재자로서 자아의 발견이었다. 새들의 지저귐, 물에 투영된 숲의 그림자, 바람에 이는 잔잔한 물결과 숲의 속삭임들은 그에게 자연을 느끼게 하고 자아의 실존적 존재감을 허락해 주었다.
"남태평양 섬 북단의 외부와 단절된 숲 속은 고요하다. 이곳은 헨리 루소의 원시림인가? 폴 고갱이 이상적인 삶을 꿈꾸며 찾았던 타이티섬의 풍경이 이러 했을까? 이따금씩 산비둘기의 빈 날갯짓이 숲의 정적을 깨뜨린다. 여기가 어디 인가 (...) 시간과 공간의 벽은 이미 허물어지고, 여러 생각들이 뒤범벅이 되어 간다.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사라지는 기억들의 잔해에 문득 알 수 없는 슬픔이 왈깍 몰려온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어슴푸레 어둠을 뚫고 숲을 빠져나올 때 나는 느꼈다. 자연의 생명감으로 가득한 신비로운 숲을 가로지르고 있는 나의 작은 존재를." (양규준) ● 방황과 사색의 긴 시간을 돌아 화가가 찾은 세계는 1990년대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환상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나무, 산, 강, 해, 달과 같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다시 화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가가 다시 찾은 세계는 전과 다른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구체적 형상에 이입되었던 시선은 어느덧 추상적 형상으로 바뀌고 대상의 사실적 묘사는 그린다는 행위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하여 찾은 세계가 바로 칼리그래피다.
캔버스는 산과 강 그리고 해와 달의 에너지로 채워지고 은하수 혹은 우주의 빛줄기는 일필의 획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연과 자아 두 개의 세계가 융합된 화가의 캔버스에는 시간과 공간이 녹아있으며 좌와 우가 융합하고 음과 양이 서로 통하는 풍경이 등장하게 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중용(moderation)'이라는 제명을 붙였다. '나'라는 작은 존재의 발견은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예술적 노정에 확신을 주었고 뉴질랜드 화단은 그의 작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2년 양규준은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정처 없는 여정이 '형상의 굴레를 벗어나 순수정신이 농축된 의식의 집적'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면서 이제 정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 나는 양규준의 칼리그래피 근작에서 유기적 형태의 노송을 본다. 아니면 신비의 에너지를 품은 흑룡의 모습이거나 태양에 바래고 월광에 물들며 오랜 시간을 지켜온 매화고목도 보인다. 그도 아니면 작가의 말대로 자신의 미리내 작업실을 찾아와 마주보며 담소를 나누는 벗들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캔버스 화폭에 자리잡은 칼리그래피의 추상 이미지는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들이다. 60 간지의 인생 노정을 한바퀴 돌아 자연 앞에 선 화가는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하다. 존재하는 것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것들 사이의 관계를 혼성으로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이제 미래를 위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2015.3) ■ 김영호
어린 시절 칼리그라피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다음과 같다. "한지를 바른 방문으로 들어오는 한낮의 빛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방은 항상 희미한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시는 뒤로는 7폭의 병풍이 벽 쪽으로 항상 놓여있었는데 칼리그라피로 가득했다. 깔리그라피는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 같았다. 바닥에 드러누워서 보면 약하고, 강한 칼리그라피들이 이리저리 허공을 날아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곤 했다. 허공을 부유하는 그것은 무척 가벼우며 자유로워 보였다." ● 내 그림에서 칼리그라피는 인간의 존재이거나 혹은 무한공간 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한 부분이다. 나는 이 칼리그라픽 Form을 얻기 위해 매화나무, 느티나무 등의 고목이나, 괴석 같은 자연물과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 이미지들은 자연과 인간, 혹은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들의 이미지와 운동감에 의해서 자발적인 선의 흐름을 끌어내야 했다. 이 Form은 처음에 연필과 작은 붓에 의해 여러 차례 반복 연습되면서 차츰 단순화 된다. 많은 스케치들 중의 하나를 작품의 모델로 선택한다. 나는 실제 작품 사이즈와 같은 크기의 종이 위에 두터운 House brush, 혹은 mop으로 자신감을 얻을 때까지 그것을 여러 차례 반복 연습한다. ● 칼리그라픽 마크가 지니고 있는 다이나믹한 운동감의 표현과 상징성은 20세기 많은 Abstractionism artists에게 영감을 주었다. Mark Torby의 White letters, Frantz Kline의 Black structures, Adolph Gottlieb는 고대 희랍 회문자의 부분을 차용해서 그의 universal themes을 표현했다. 또한 Max Gimblett은 Chinese character, 혹은 Japanese 칼리그라퍼 Sengai(1750-1837)의 드로잉에 고무(inspire) 된바 크다. levels of realization in Zen을 direct한 칼리그라픽 마크를 통해서 그의 화면에 표현해 오고 있다. 나는 칼리그라픽 마크를 통해 대자연인 우주 속에 있는 존재들을 표현하려고 했다. 백그라운드에 있는 색은 흙, 하늘, 전통 한지의 바랜 색 등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은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꽃, 나무 등의 주변 자연의 색과 관련이 있다. 나는 이것들을 통해 나의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과 구별되는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Early New Zealand artist Petrus van der Velden(1837-1913)는 Otira Gorge paintings에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Colin McCahon의 그림에서 새벽의 여명처럼 떠오르는 그의 marks은 black의 포용력 속에서 구원의 메시지 같은 어떤 희망을 보여준다. 웨스트 코스트 해안에 있는 피하 주변의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한 영화 '피아노'작품이 있다. 여기서 보여주는 우울과 절망의 black tone도 마침내 한 인간을 구원하는 밝은 빛으로 전환된다. 내 그림에 있어서 검정색은 무척 포지티브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자연환경,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은 현실세계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잃음으로써 다시 잉태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 그림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나의 존재와 혹은 기억들에 관한 나의 기록이다. ● 나는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서 있는 곳에 관한 좌표를 떠올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 특히 한국이나 뉴질랜드의 지도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그만큼 여행을 좋아하고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는 것들이나 거리가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에 흥미가 있다. 처음 내가 혹스베이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을 때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과 푸른 초원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도상에서 그 위치를 알고 있지만 실제 공간을 확인하고 싶어 거의 하루 내내 눈 덮인 산을 향해 운전했던 기억은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새들의 지저귐, 물에 투영된 숲의 그림자, 바람에 이는 잔잔한 물결과 숲의 속삭임, 이것들은 내게 매우 자연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다. 숲 속에서 꽃들은 그 자태를 뽐내지 않는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각양각색의 꽃들이 계절마다 다르다. 봄에는 썩은 고목나무아래서 새 생명이 꿈틀댄다. 울창한 숲은 세 단계로 층을 이루는 것 같다. 큰 나무들의 줄기가 지붕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다. 중간에 있는 큰 Pam trees와 Fern trees, 맨 아래에 잡목들과 어린 Pam trees의 잎이 무성하다. 어두운 검정의 숲 사이로 가끔씩 투명한 햇볕이 내리 쬘 때, 어린 나뭇잎의 녹색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숲의 검정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포용력을 갖는 것 같다. ● 어느 해 나는 뉴질랜드 북쪽, 남태평양과 면해 있는 숲 속에서 한 여름을 보낸 적이 있다. 아침에 숲 속으로 들어가면 가파른 길을 올라 쓰러진 고목나무들을 들춰보며, 새로 나는 싹들을 관찰하고, 또 나뭇가지에 기생해서 사는 여러 식물들의 모습에 열중했다. 그림 그리는 일보다 여기저기 멍하니 돌아다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거리를 챙겨 먹었다. 이곳에서는 깊은 숲 속에서도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한국으로부터 수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남태평양 섬 북단의 외부와 단절된 숲 속은 고요하다. 이곳은 헨리 루소의 원시림인가? 폴 고갱이 이상적인 삶을 꿈꾸며 찾았던 타이티섬의 풍경이 이러 했을까? 이따금씩 산비둘기의 빈 날갯짓이 숲의 정적을 깨뜨린다. 여기가 어디 인가.... 어린 시절 헤집고 다녔던 고향의 뒷동산인가, 아니면 군 시절 내 몸을 던져서라도 지켜야 했던 나의 진지가 있는 섹터인가. 시간과 공간의 벽은 이미 허물어지고, 여러 생각들이 뒤범벅이 되어 간다.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사라지는 기억들의 잔해에 문득 알 수 없는 슬픔이 왈깍 몰려온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어슴푸레 어둠을 뚫고 숲을 빠져나올 때 나는 느꼈다. 자연의 생명감으로 가득한 신비로운 숲을 가로지르고 있는 나의 작은 존재를. ■ 양규준
* 화이트스페이스, 뉴질랜드 / www.whitespace.co.nz/artists/gyu-joon-yang.aspx
Vol.20150416j | 양규준展 / YANGGYUJOON / 楊圭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