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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약품(주) 갤러리AG 신진작가 공모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갤러리 AG GALLERY AG 서울 영등포구 시흥대로 613(대림동 993-75번지) Tel. +82.2.3289.4399 www.galleryag.co.kr
옵스큐라 환영을 구현한 '컴퓨터 프로세스 회화' ● 현대미술의 표현기법에서 가장 편리하게 애용되는 도구 중 컴퓨터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그만큼 현대사회 일상은 물론 전반에 컴퓨터의 쓰임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미술 영역에서 컴퓨터 기술의 쓰임도 매우 다양해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초정밀 기하학적 묘사나 화면구성, 미세한 색감 변화의 구사 등은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다면 매우 수월해질 수 있다. 심지어 2D를 넘어 3D 구현 방식까지 상용화될 것이란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차보리 작가는 바로 컴퓨터가 지닌 이러한 장점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차보리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은 기하학적 패턴을 반복으로 활용한 평면회화와 영상 이미지를 재구성한 미디어 작품, 이 두 가지를 융합한 설치작품으로 구분된다. 먼저 다각형의 화면에 가는 선묘를 반복해서 연출해낸 기하학적 평면작품을 보자. 얼핏 얼룩말의 무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유기적인 직선들'의 반복은 작가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시간성의 가상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제각각 선들의 흔적들이 쌓인 층위는 무형의 존재감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런 작업의 출발점은 사진기의 원리인 '가상(가짜)의 옵스큐라' 개념이다. 우리 생각 속에 담긴 무형의 형상들을 시각화하는 과정에 옵스큐라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영향으로 사진·아우라·카메라 옵스큐라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일어나는 '경계의 사건'들을 알고 싶고, 시각화하고 싶었죠. 이런 호기심이 작업의 출발점이자 모티브입니다. 끝없이 확산되는 '격자 형식의 무늬' 그리드(Grid) 위에서 반복·모 방의 연속은 곧 '무의식 속에서 윤회를 통해 만나는 수많은 연(緣)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비록 구체적인 형상을 드러내고 시각화 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볼 수는 없지만 실존하는 우리 정신 혹은 '의식이 지닌 DNA의 파장을 표현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차보리)
작가의 말처럼 차보리의 작품들은 "시각적인 형태로 규정하기 불가능한 요소들—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 날카로운 빛의 맺힘, 고요한 소리의 고임, 사람들의 기록 등"을 재현한 '컴퓨터 프로세스의 회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주제라도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품들과 2013년 전후의 작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가령 2013년 작품「옵스큐라의 릴 포인트 2」처럼 이전엔 균일한 굵기의 가는 선들이 무수히 반복하며 화면의 '이성적 리듬감'을 자아냈다면, 올해의 최근 작품들은 비정형적인 선의 굵기의 반복으로 '즉흥적 감성의 운율'을 연출해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리듬감이 균일하든 불균형하든 간에 분명한 공통점은 '무형의 리듬감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란 점이다.
차보리 작가의 작품엔 소리, 빛에 대한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둘의 공통점은 '존재감은 분명히 느껴지지만 시각적인 실체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차 작가는 이런 작품의 주제를 "선(線)의 미메시스(mimesis)"라고 설명한다. 그리스어인 미메시스는 '춤·몸짓·얼굴표정 등에 의해서 인간·신(神)·사물 등을 모방하는 것'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자연의 재현'이라고도 말했다. 예술 장르에선 흔히 재현(representation) 또는 모방(imitation)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19C초반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e)의 광학적 속성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인 BC 4C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에 의해 '좀 더 사실적인 묘사와 원근법의 착시효과'의 표현을 위한 시도가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가상(가짜)의 옵스큐라 공간 안에 여러 가지 이미지가 연출되지만, 그것들은 실존(實存)과 실재(實在)의 미묘한 경계, 분명히 있긴 한데 실체로서 확인할 수는 없는 차이를 보여준다. 차보리 작가의 작품에서도 반복적인 선들이 시간성을 두고 교차하며, 제각각의 미미한 흔적들이 쌓여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낸다. 점으로 출발한 선들은 면을 만들고, 그 면들은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며 '재현의 옵스큐라'로 완성된다. 이렇게 얻은 시각이미지를 평면작품이나 영상미디어 혹은 설치작품 등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실존적 대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해도 그것은 결국 허상(虛像)에 지나지 않기 마련, 현존하는 모든 것은 '끝없는 미메시스의 산물'과도 같다.
결국 차보리 작가의 '시각적인 형태가 불가능한 요소'에 대한 구현의 노력은, 그 옛날부터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자연의 재현'을 위해 노력한 과정과도 통한다고 하겠다. 차보리 작가는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서 '감성'과 '소통'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의 작가노트에서 "참여·체험·경험을 기반으로 한 인터렉티브 아트를 통해 일방적인 감상에서 탈피하여, 관람자의 주체적인 역할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제작을 연구할 계획이다. 이는 '기계를 통한 예술 중심의 감성적 소통형식 확장'에 대한 연구이며, 오감으로 '감성 체험'을 할 수 있는 수요자(감상자) 중심의 쌍방향 교감 창구도 마련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일명 '파도와 바다시리즈'도 그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특히 평면작품들의 제목「파도와(渦)」의 '渦'는 '소용돌이'를 뜻한다. 정밀하고 미세한 선들의 반복에서 불규칙이면서도 유기적인 변형 패턴이 등장하는 이번 작품들이 바로 '소용돌이치는 파도를 표현한 것이다. 물은 원래 색도 없으며, 정형화된 형체가 없다. 바람을 만나 파도의 일렁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일정한 리듬감으로 시각적인 패턴을 그려내어 시각화된다. 사각의 일반적인 화면이 아니라, 다각형의 화면에 파도이미지를 유기적으로 선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또한「조각난 바다」작품에선 '네 변 30cm'의 조각화면을 무려 154장을 붙여 완성했다. 높이 250cm, 가로 750cm의 대형 화면엔 '픽셀의 집합은 곧 전체'라는 재현방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상하 데칼코마니 방식의 영상작품「불투명한 바다」작품과 연계해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마치 '파도의 소용돌이'가 '조각난 바다'를 이어 붙여 '불투명한 바다'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전하고 있는 듯하다. ● 이처럼 이번 개인전엔 그동안 차보리 작가가 연구해온 '가상공간의 시각적 재현'을 보여주는 기하학적 추상의 평면회화와 영상작품이 다양하게 출품된다. 인간적 감성의 상상력과 컴퓨터의 이성적 하이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이상적인 조화를 꾀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김윤섭
Vol.20150410j | 차보리展 / CHABORI / 車보리 / painting.photography.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