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회상 Mneme in Gunsan

황인화展 / HWANGINHWA / 黃仁和 / photography   2015_0318 ▶ 2015_0328 / 일,공휴일 휴관

황인화_시간의 거리_디지털 C 프린트_63×42_2014

초대일시 / 2015_0318_수요일_06:00pm

후원 / 미진프라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사진·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 SPACE22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90 미진프라자 22층 Tel. +82.2.3469.0822 www.space22.co.kr

집 앞 시장 통에는 여전히 약국들이 많다. 신세계약국이라는 간판은 낯설다. 아, 그래. 예전엔 형제약국이었지. 약국의 아줌마와 아저씨는 동화상회 막내딸인 나를 알아보았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물물다리', '째보선창', '산 끊어진데'. 이름은 시간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의 경과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름들이 있었다. 그 이름들은 시간의 거리(距離)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황인화_시나브로 봄은 오고_디지털 C 프린트_100×150_2013

봄이 오는 수원지 너머로 소풍을 갔다. 나의 소풍날이 엄마한테도 소풍날이었을까. 해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따라 오셨다. 보자기에 삼층 찬합을 쌌고 머리는 고대기로 한껏 부풀린 채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셨다.

황인화_삶은 비스듬하다_디지털 C 프린트_100×150_2014

큰집은 구시장 철길 너머에 있었다. 아버지가 보신 신문을 매일 큰아버지께 갖다드리는 심부름을 했다. 멀쩡한 밝은 길 놓아두고 지름길이랍시고 어둡고 좁은 길로 다녔다. 여기저기 물웅덩이에 실지렁이가 가득했다. 무서웠다. 큰아버지가 아버지보다 부자인데도 신문 값을 아버지가 낸다고 외갓집 식구들이 흉봤다.

황인화_고독의 무게_디지털 C 프린트_70×47_2012

뒷집은 제법 큰 제재소였다. 나무 켜는 소리 사이로 어른들 고함소리와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섞여 들려 왔다. 제재소 마당에 어둠이 내리면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 사이 제재소는 주차장이 되어있었다. 주차장에 붙은 집 문간에 파란 발이 쳐져 있고 작은 TV가 방안을 비춘다. 구십이 넘으신 할머니가 홀로 앉아 있다. 주차비는 문 앞 상자에 알아서 넣고 가란다.

황인화_소리 없는 기억_디지털 C 프린트_63×42_2014

나는 학교에서 수업 중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여름 대낮의 해는 몹시 뜨거웠다. 경찰서 앞 큰 길이 강렬한 하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리는 텅 비고 시간은 멎고 모든 소리는 햇빛 속으로 증발해 버렸다.

황인화_탁류_디지털 C 프린트_100×150_2012

백일장이나 사생대회는 매년 월명공원에서 열렸다. 우리는 바다와 돛단배에 대해 해마다 같은 시를 지었다. 장항제련소도 그렸다. 그런데 왜 책에서는 '파란하늘' '푸른 물결'이라고 할까. 내가 본 강과 바다는 온통 흙탕물이고 똥색인데. 하얀 도화지 앞에서 내 마음은 복잡했다. 하늘과 바다를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할까.

황인화_모든 시대는 다음시대를 꿈꾼다_디지털 C 프린트_100×150_2012

장미 상회, 장미 타이어. 장미는 꽃 이름이 아니다. 장미(藏米). 미곡 저장소라는 뜻이다. 쌀 저장소가 있는 동네라서 장미동(藏米洞)이다. 우리에게 장미(藏米)는 장미(薔薇)꽃으로 읽힌다. 일제 수탈의 역사, 세월의 두께를 뒤로 군산은 지금 변신을 시도하느라 여기저기 굴착기가 분주하다. 장미(藏米)가 장미(薔薇)를 꿈꾸고 있는가. ■ 황인화

므네모시네의 거울, 『군산회상』 ● 기억의 창고는 어디에 있을까. 아니, 악보와 문자와 사진이 없었던 때에 기억은 어느 곳에 저장되어 있다가 무엇을 통하여 어떻게 되살아났을까. 봄을 앞두고 우윳빛 온기로 가득한 서해안 고속도로 위에서 생각들이 무성해진다. 길 가의 나무들은 꿈틀거리는 안개 속으로 뿌옇게 멀어지고, 간혹 빗방울들이 차창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길 위에서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는 기억을 다독였을 것이고 누군가는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가누지 못해 연신 여닫음을 반복했을 것이다. 꼭 20년 만의 군산 행은 기억의 지도를 더듬게 한다. 기억에도 지도가 있다면 분명하나의 좌표에서 시작될 것이다. 특정한 장소, 혹은 나이, 아니면 색감이나 촉감 같은 것을 기점으로 그 옆의 사람, 그 뒤의 사건, 전면에 펼쳐지는 풍경으로 이어지다 막다른 곳에서 발견하는 나도 몰랐던 나의 흔적들. 두렵고 기이한 것은 그 흔적을 마주할 때이다.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 기억이고 흔적이 아니던가.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추방되었던 것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고 망각한다는 것은 기억을 삭제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저장하는 창고이자, 잊고 있었던 것들의 거주지이고, 열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판도라상자이다. 그것은 또한 보고 싶은 것들만 가두는 프레임이고 봐왔던 것들이 안주하는 밝은 방이기도 하다. ● 하지만 쓰여 지지 않았고 찍혀 지지 않았는데도 어딘가에서 계속 웅크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 형체도 깊이도 알 길 없는 캄캄한 우물 속에서 숨 쉬고 있던 나도 몰랐던 나의 애기(愛氣)! 유년의 기억은 시간의 거리상 가장 멀리 있지만, 가장 내밀한 나의 몸속에서 삶의 위기의 순간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사랑의 통증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볼 수 없었으나, 분명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던 기억의 희미한 처소를 발견하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쓸쓸한 일이다. 그 쓸쓸함의 정체가 한 몸으로 꿈틀거리는 기억과 망각이라는 동형체임을 알았을 때, 시간은 이미 회상의 거리에 놓인다. 늘 그렇게, 나중에야, 알았다. ● 사진 책과 전시로 엮어진 황인화의 『군산회상 Mnemo in Gunsan』은 영화 속에서 떼어낸 정지화면처럼 말끔하게 펼쳐진다. 책과 전시 모두 깨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가는 여정으로, 여기저기로 이어지는 군산의 조붓한 골목길처럼 회상은 좀체 끊어질 것 같지 않다. 『군산회상』에서 작가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주변의 인물들과 사건, 배경 등은 매년 월명공원에서 열렸다던 사생대회에서 그녀의 도화지로 옮겨 온 파랗거나 푸른 그림 같다. 현실의 색깔과 기억의 색은 '파랗거나 푸른 듯'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그 땐 운동장처럼 넓었던 신작로가 지금 와 보니 차량 두 대가 겨우 비껴갈 정도로 좁다. 엄마가 입었던 한복의 색깔이 분명히 하얀색이었는데 다시 보니 벚꽃 분홍빛이었듯이. '2011년 1월 1일 늦은 오후 엄마의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면서 시작되는 『군산회상』은 그동안 작가로부터 분리되었던 기억의 파편들을 수집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일견 산만해 보이고 맥락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도 작가의 노트와 함께 보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기억으로 맞춰지기도 한다. 그/녀의 기억인데 사진을 통해서 나의 기억이 되다니. 가령 숙제를 빠뜨린 날 교실 밖으로 쫓겨나 작가가 올랐다던 '월명산'은 이름은 다르지만 나의 뒷동산이었을 것이고, 친구의 집 담장에 핀 능소화의 주홍빛은 내 기억 속에도 뜨거운 여름의 전형이었다. '초록빛 바다' 또한 나의 애창곡이고, 엄마를 따라가던 시장 통은 가장 즐거운 놀이터였다. 유년의 엄마의 자리는 언제나 '어느 화창한 봄날'로 정해졌다. 화창한 운동회, 화창한 소풍날 등 부드럽고 따뜻하고 동그랗고 포근한 빵처럼. 그 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터지는 앙꼬 같은 엄마라는 이름은 언제나 오감을 발동시키며 공감각적으로 떠오른다. 그 엄마가 돌아가신 날의 기억은 작가에게 '소리 없이' 찾아왔다. 엄마와 함께 누볐던 거리는 그날따라 '텅 비고 시간은 멎고 모든 소리는 햇빛 속으로 증발해 버렸다.' 우리는 모두 집을 떨어져 나와 서울로 올라왔고 군산에서 서울까지, 혹은 전주에서 서울까지의 긴 공백은 무겁거나 가볍게 단단하거나 허술한 채로 계속 묶여있었다. ● 엄마와 함께 찍은 낡은 흑백 사진으로 시작되는 『군사회상』사진첩은 밝고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런 봄날의 벚꽃 잎처럼 가볍고, 여름날의 능소화처럼 질긴 이야기-사진이 『군산회상』이다. 이 책은 오래 된 정원, 빛바랜 간판, 금방이라도 먼지가 일어날 것 같은 소파와 테이블, 비스듬하게 누운 길, 쓰러져가는 담장 등 매우 느리고 모호한 진행과 암시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어떤 이미지는 섬광과도 같은 순간이 포착돼 있거나, 순간과 순간 사이의 침묵과 단절의 틈도 보여 진다. 그런가하면 4~50년이 퇴적됐을 법한 건물들이 수평과 수직으로 한데 어울려있고,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이 시간의 선분으로 누워 있다. 꽃무늬 화려한 몸빼들이 장미 넝쿨처럼 휘감긴 시장 통엔 어설프게 널어놓은 빨래와 생선의 비린내, 정갈해진 적산가옥이 생생한 현재로 살아 있다. 불명료함과 낯섦이 매혹적으로 교차하며 찢어진 사진을 이어 붙인 듯한 이 조화로움. 이것이 삶의 자리를 성실하게 바라보며 찍어 낸 황인화작가의 시선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러니 보고 나면 내 주변이 자꾸만 오버랩 되는 이 사진 책-전시는 지나간 시간들 전체를 들어 올리며 먼 곳을 계속 바라보게 할 뿐이다. ● 기억과 망각이 무덤처럼 한 데 있는 사진은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불러 온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진의 본질을 죽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이미지이지만 지금은 부재하는 것이기에. 어머니의 무덤에서 시작되어 삶의 공간과 박물관의 시간이 혼재한 군산의 이미지로 마감된 이 사진집에서, 작가는 사건의 서술이 아니라 이미지로 환기시키며 배제될 수 있을 기억의 시간들을 망각의 늪에서 건져 올리고 있다. 고대 도시 델포이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리바디아'에는 망각을 상징하는 '레테Lethe'의 샘물과 기억을 상징하는 '므네모시네Mnemosyne'의 샘물이 동시에 흐른다고 한다.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하늘의 신 '제우스' 사이에 아홉 자매가 태어나는 데 바로 '무사이Mousai'이고, 이들이 사는 집이 무사이온(Mousaion, 영어로 '뮤즈 Muse', 지금의 '뮤지움Museum')이라고 하니, 음악과 예술, 기억의 기원인 '므네모시네'를 작품집의 타이틀로 채택한 작가의 의도는 사뭇 의미심장하다. 기억의 산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 박물관이라면, 지금 군산은 스스로 박물관이 되려는 듯 선택된 기억과 배제된 기록사이에서 혼돈의 국면에 처한 듯하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운 사진이 그러하듯 작가는 이 도시에 되도록 느린 걸음과 호흡으로 다가가 유년의 기억과 현재의 공간의 얽힘을 풀어내고 있다. 유년의 기억들이 대개 비슷하듯이 채집한 사진들의 형식 또한 그리 새로울 것이 없지만, 내륙의 금강과 서해안이 만나듯, 기억과 망각이 사진의 밑에서 울려오는 여운은 그윽하고 길고 깊다. 므네모시네의 거울에 비친 이 도시의 빛과 그림자들이 특별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 최연하

Vol.20150318d | 황인화展 / HWANGINHWA / 黃仁和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