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312_목요일
주최 / 대한불교조계종 주관 / 불교신문_불광미디어 기획 / 주식회사 마인드디자인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문화재청_한국관광공사_한국불교종단협의회_조계사_한솔제지
관람료 / 3,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 SETEC 서울 강남구 남부순환로 3104 (대치동 514번지) 2관 Tel. +82.(0)2.2187.4600 www.setec.or.kr
공(空), 상(像) ● 공(空)은 '비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시간과 공간도 초월하며, 색깔도 냄새도 형체도 없기에 이거다, 저거다 하고 명징하게 말할 수도 없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공을 우주 전체가 작동하는 원리라 하여, 인간이나 짐승이나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공생(共生), 공심(共心), 공용(共用), 공체(共體), 공식(共食)하며 본래 하나로 돌아간다고 보고 있다. 즉 그 '비어 있음' 안에는 이미-항상 나와 타자가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팔정도(八正道)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로 보라."는 '나'라는 고정관념, 즉 내 몸에 배어있는 습에서 벗어나 매 순간 나와 둘이 아닌 삼라만상을 보라는 일상적 실천에 대한 강조라 할 수 있다. 가령 깨어 있을 때와 잠들었을 때 의식이 다르고, 음식을 먹기 전과 먹은 후 몸 상태가 변하며, 앉아 있을 때보다 달릴 때 숨이 가쁘다. 그뿐만 아니라 처한 상황에 따라 표정과 행동도 달라진다. 이처럼 끊임없이 외부(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매번 낯선 '나'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다시 말해, '나'라고 내세울 수 있는 실체란 어디에고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나'는 특정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상징 언어로 정의할 수도 없는 무명씨(無名氏)이며,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는 '혼종체'로 현현(顯現)한다.
이러한 혼종성(hybridity)은 동시대 예술에서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며, 과거에 고급 예술(순수미술)로 간주되었던 회화나 조각의 범주를 넘어 예술 밖 분야와의 협업을 시도해 이질적 문화와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Dreaming Reality-실재를 꿈꾸다』展은 일종의 혼종성의 양태로 불교의 공 사상과 현대 미술의 접점을 가늠하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를 구성하고 있는 작가 왕지원, 유승호, 김신일은 불교적 이미지나 사상을 도입할 뿐 아니라 기계적 융합을 시도하고, 문자와 그림 사이를 넘나들며, 영상의 조각적 설치라는 방법론을 통해 지금-여기의 '나'를 "바로 보"려는 태도를 취한다. ● 작가 왕지원은 사이보그 신체를 만든다. 그중에서도 『생각에 잠겨있는 기계 보살Pensive mechanical Bodhisattva』(2010)은 반가사유상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언뜻 그것은 반가사유상을 그대로 떠낸 것 같지만, 그 앞에 잠시 머물러 있으면 그 순백의 매끈함이 뚝뚝 끊기며 곧 기계로 연결된 지점들이 보이고, 마침내 반가사유상의 온화한 미소 대신 작가의 얼굴이, 반가사유상의 우아한 손과 발 대신 신체 기관의 부재를 드러내는 의수와 의족이 눈에 들어온다. 더구나 이 반가사유상은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동반한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자신이 기계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작품 앞에서 불상의 숭고한 이미지를 자동으로 떠올리게 되며, 심지어 어느 사찰의 신도는 이 작품 앞에서 삼배를 올리기도 했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가 오래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 일부가 마비되는 경험을 하면서 초월적인 신체에 대한 상상, 신체의 유한성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때문에 작품에서의 반가사유상은 작가의 욕망이 투사된 분신이자 세속적(탈속적)이고 혼성적(무성적)인 도상으로 구현됨으로써 우리의 인식 범위 바깥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므로 왕지원의 작품에서 반가사유상은 더 이상 반가사유상도 반가사유상이 아닌 것도 아니다. 단지 익숙하지만 낯선 에너지가 규정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 반가사유상 안팎을 순환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비의적(秘儀的) 형태는 작가 유승호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미술사 책에서 봐왔던 동양의 산수화를 환기시킨다. 실제로 작가가 그린 산수화는 북송대의 궁정화원이었던 곽희의 「조춘도(早春圖)」나 조선 초기의 화원인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와 같은 대작 산수를 모사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이 작품에 다가설수록 그 완벽한 산수화는 예상치 못한 문자의 출현으로, 더구나 '원작'과는 전혀 다른 문맥의 전개를 통해 철저히 분화되고 무화된다. 작품 『둥doong』(2007-2011)은 멀리서 볼 때는 험준한 산세를 그린 산수화지만,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둥'이라는 의성어로 환치된다. 그 순간, 길고 긴 작가의 노동(작업) 시간이 휘발돼 버리는 느낌이 든다. 이는 더 이상 지시 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부정/공포/허무의 감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둥'들은 100.2x83.5cm의 화폭 안을 부유하며, 더 이상 곽희도 안견도 아닌, 그림도 글도 아닌 측정 불가한 심연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유승호가 보여주는 산수화는 산수화가 아니다. 우리의 사유를 교란시키며 지식을 무용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정해진 프레임을 탈주하며, 의미화 바깥의 보이지 않는 운동과 상태, 형상을 사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실어증 환자의 발화 안에서 우리는 내면에 고착된 상(像)을 찢으며 길을 잃는 수밖에 없다. ● 앞서 살펴본 작품들이 이미지 또는 관념의 충돌을 통해 '실체'에 대한 전복을 꾀한다면, 작가 김신일은 대상의 형식 변화를 통해 우리의 인식과 판단, 결정을 유보시킨다. 작품 『활성 마취Active Anesthesia-the full of square』(2007)는 거대한 벽을 두고 전면에는 30분의 1프레임으로 지나가는 광고가 나오고, 후면에는 그 광고의 이미지가 오롯이 빛과 색으로 환원되어, 그 안의 모든 언어와 사물이 녹아내린다. 이러한 극단적 현상의 공존은 1960년대 후반 미니멀리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차가운 물성과 중립적인 형태 안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김신일의 미니멀리즘적 외현은 세계와 자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실존 감각에서 기인한다. 작가는 광고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표-Mind, Moment 등-를 접합하고 분리하여 그것의 고정된 형태와 속성을 가로지르는 탈의미화, 탈중심화, 탈맥락화를 감행한다. 그것은 완전히 투명할 수 없는 세계와 언어에 대한 자각이며, 동시에 존재의 무한한 잠재태(virtual)를 육화하려는 작가의 욕망이기도 하다.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영상 작품 「절하다Bow」(2001)에서는 흰 바탕에 아무 색도 없이, 압인 자국으로'만'-그러나 그 압인의 과정은 일정한 압력으로 수차례 새겨야 미세한 윤곽(요철)이 생성되므로 기실, 인고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겨우 존재를 이루는 자(아마도 작가)가 절을 올린다. 정면을 향해, 관객을 바라보며, 쉼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그 행위는 존재 간에 (관객과 작가, 여기와 저기, 삶과 죽음..) 상호 침윤과 잠식의 순간을 바라는 존재의 염원으로 읽힌다. ● 이렇듯 작가 왕지원, 유승호, 김신일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질적인 감각과 형상은 스스로를 혼종적 존재로 자임하며,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비)언어를 주조하려 한다는 점에서 불교의 공(空) 사상과 공명한다. 이러한 (비)언어는 체계의 보편성 안에서 통용되는 실용적 도구가 아니라 사물과 현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 몸을 몇 번이고 바꾸는 수행의 산물이다. 때문에 존재는 자신을 인간에서 사이보그로 전환하고(왕지원), (무)의식의 분열상을 재생하며(유승호), 지금 이곳의 현실이 중첩된 이중적 풍경을 구축해 낸다(김신일). 그리고 이러한 꿈/환상/헛것의 형태는 다층적인 존재의 결로서 각인된다. ●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전시에 참여한 세 작가 모두 불교 신자가 아니며, 그렇다고 종교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작품을 지향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교적 이미지 혹은 사상을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선택하거나 그러한 의식적 접근 없이도 자신의 작품이 불교적 시선과 닮아있음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앞에서도 기술했듯, 불교의 공 사상이 특정 개념으로만 가능한 언어가 아니라 모든 (불)가능한 언어가 등가적으로 교환되며, 상생하는 구조를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수한 형식 실험을 관통해 세상에 나온 작품들을 단순히 인위적 가상, 미학적 제스처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실존적 선택과 결단으로써 '나'를 지우면서 '나'를 형성하는 세 작가의 자기 갱신적 행위(작품)는 '살면서 죽고, 죽으면서 살아가는' 공의 궁극적 지향, 실재적 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빛나
누군가 읽어주지 않는다면 종이 위 검은 자국일 뿐인 이 글자들처럼, 만물은 서로를 통해 의미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생겨난 의미들이 정의로 굳어지고 단단한 실체를 이루는 순간, 고는 시작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불교는 고정된 실체를 부정하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관계 속에서 파악하라 말해준다. 자신 앞에 놓인 모든 존재와 그 무한성에 스스로를 활짝 열어놓으라는 뜻이다.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자기개방성을 타고난, 혹은 지켜나갈 의지를 품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불교와 현대미술의 접점을 가늠하고자 기획된 붓다아트페스티벌 현대미술특별전 『Dreaming Reality: 실재를 꿈꾸다』에 김신일, 왕지원, 유승호 세 작가를 초청했다. 본 전시에서 만물을 실체로 파악하는 꿈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깨어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김해다
부대행사 『Dreaming Reality: 실재를 꿈꾸다』 비평 워크숍 일시: 2015. 02. 11 (수) 오후 1시~9시 장소: 각 작가의 스튜디오 참가자: 작가 (김신일, 왕지원, 유승호), 비평가 (명법스님, 양효실, 이빛나), 진행자 (김해다)
Vol.20150316d | Dreaming Reality: 실재를 꿈꾸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