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展 / CHOIINHO / 崔仁浩 / painting   2015_0303 ▶ 2015_0322 / 월요일 휴관

최인호_이태원 엘레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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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아쉬 서래 개관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쉬 서래 GALLERY AHSH SEORAE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동광로 27길 3, B1 Tel. +82.2.596.6659 www.galleryahsh.com

파리의 언덕 ● 프랑스 파리 북쪽에는 성당을 정점으로 솟아오른 언덕이 있다. 주변에는 온갖 환락가부터 부자들의 저택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 있다. 다양한 군상들의 인종 또한 각양각색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언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직업은 그 종류가 많지 않다. 결국, 가파른 언덕에 숨을 참고 오른 이들은 화가들이었다. 왜 그들은 20세기 파리의 한복판 언덕에 힘들게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불태우려 오른 것일까? ● 그것은 저렴한 방세와 위치적인 장점 그리고 집약적이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몽마르트르 언덕의 특징이었다. 무엇보다도 적은 가격으로 시내와 멀지 않은 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생활할 수 있는 부분이 컸을 것이다. 그렇게 보헤미안의 피가 들끓던 세계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몽마르트르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가의 구역을 만들어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과 함께 자본도 흘러오는 것이기에 결국 부를 얻지 못한 예술가들은 높아 가는 방세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구역을 찾아갔다.

최인호_이태원 엘레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재_70×70cm_2014

서울의 언덕 ● 전쟁 후, 우리의 언덕은 달동네라는 개념으로 매김 한다. 특히, 서울은 전국에서 각자의 목표를 찾아 올라오는 사람들과 갈 곳이 이 한 곳 뿐이기에 모여드는 사람들(실향민)로 가득했다. 지금 서울 용산구 한남동 언덕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록, 두 다리로 걸어 올라가는 언덕이 전쟁과 가난으로 인한 슬픔의 언덕보다 아프지 않았겠지만, 각종 일거리가 즐비한 서울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저렴하게 지낼 수 있는 한남동 언덕은 그들에겐 괜찮은 입지조건이었다. 그리고 현재, 예술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이 언덕은 여전히 나쁘지 않은 조건을 제공한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은 현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21세기의 고단한 한국의 화가들이 가파른 언덕을 숨차게 오르고 있다.

최인호_흙 한 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24cm_2014

축복의 언덕 ● 힘겨운 생활고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예술가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제3세계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입국하는 새로운 한국인들(외국인 노동자)도 녹록지 않은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한남동 언덕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아랍권의 전통요리와 동남아시아 음식들 그리고 토박이들에겐 익숙지 않은 종교까지... 국내 최대의 이슬람 사원을 보고 있자면 정말 이곳이 파리의 몽마르트르와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서울의 어느 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문화 그리고 수많은 언어들을 들을 수 있을까. 각자의 꿈을 향해 다툼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상(萬象)은 오히려 전쟁과 반목으로 아팠던 우리 역사의 상처를 보듬는다. 또한, 이런 축복과도 같은 조화로운 다양성 속에서 예술가들이 얻을 영감은 얼마나 값진 소재들인가. 아무리 현재에 넉넉하지 못한 생활이지만, 예술적 자원만은 풍부한 장소이다.

최인호_만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재_72×60cm_2014
최인호_이태원 엘레지-두 남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재_91×116cm_2014

언덕 위의 최인호 ● 최인호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작업을 한다. 그가 이곳으로 작품의 짐을 꾸려 옮겨 간 지도 두 해가 되어간다. 여러 사람과 여러 상황을 대면할 기대감에 조용한 미소를 짓던 모습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는 이 언덕의 축복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좁은 골목 거리마다 작품의 소재들을 발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흑인과 백인, 환락과 근엄, 성적소수자와 독실한 종교인, 분식집과 고급레스토랑까지... 무엇하나 어울릴듯한 것 없는 조합들은 이곳에서 만큼은 익숙한 듯 조화를 이루어간다. 결국, 그 모두가 내 곁에 사는 이웃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 최인호는 이런 물과 기름 같은 언덕의 풍경을 그만의 느낌으로 표현해간다. 그의 붓은 유화제처럼 서로의 대립을 섞어 최인호의 그림으로 재창조한다. 지난 작품 속에서 소외된 자들(미친 여자, 술주정뱅이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소외된 자'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을 따돌리고 피한 것은 대다수의 우리가 아닐까... 최인호는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라는 무리(group)가 만들어 놓은 선 밖의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다. 그 또한 자기 자신이라는 무리(group) 속 무리(無理)에 맞서고 있다. 자신의 모습 속, 마음속 어느 구석 한쪽에 이미 한남동 언덕과 같은 장소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최인호_낮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재_72×60cm_2014
최인호_이태원 엘레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재_72×90cm_2014

언덕 위의 왕자 ● 그는 자신을 그린다. 코트나 셔츠를 하나만 걸쳐 입고 단추조차 채우지 않았지만, 옷깃은 세워져 있다. 파스텔 색조 연무(煙霧)는 아지랑이처럼 배경을 채우고, 우는 이에겐 울음을, 웃는 이에겐 웃음을 주는 듯한 표정을 한 주인공이 서 있다. 표정의 다양함이 희미한 모습 속에 짙게 비추어진다. 이 남루한 왕자는 한남동 언덕 위 가장 높은 듯한 옥상에서 금빛 왕관을 쓰고 있다. 왕자란 무엇인가... 왕도 가지지 못하는 젊음을 가진 내일의 왕이다. 내일은 현재를 살게 하는 원동력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리 해진 옷을 입고 있어도 내일이 부럽지 않을 현재를 사는 왕자가 그림 속에 있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조금 구태의연한 이야기보다는, 이제는 영영 잃어버렸던 것 같았던,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나(우리 모두)의 왕자를 찾은 것 같다. 나를 쏙 빼닮은 왕자는 나와 같은 표정의 시계를 지녔다. 그리고 꽃을 단듯한 왕관, 모두가 버리라고 했던 머리 위 왕관... 돈도, 밥도, 따뜻함도 줄 수 없어 던져버려 라고만 했던 그 왕관... 그것은 사라진 왕국의 부서진 반쪽짜리 증표처럼 그림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 나머지 반쪽의 증표를 맞추려 한다... ■ 최인호

Vol.20150303e | 최인호展 / CHOIINHO / 崔仁浩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