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303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 주말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롯데갤러리 잠실점 LOTTE GALLERY JAMSIL STORE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240(잠실동 40-1번지) 롯데백화점 12층 Tel. +82.2.411.6911 www.lotteshopping.com blog.naver.com/lottejam
시린 추위를 이기고 봄이 오는 3월,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12층으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재개관합니다. 롯데갤러리 잠실점은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며 김병종, 김은숙, 이정태 3인의 작가들의 봄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 30여점을 선보입니다. 오랜 시간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의 깊이 있는 작품들과 함께 봄이 오는 소리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롯데갤러리 잠실점
그렇게 다시 또 봄은 온다 ● 90년대, 소위 '충격 예술'로 대변되는 영국의 현대미술은 이미지를 왜곡하거나 흉측하게 변형시켜 제시하는 방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각인시켰고, 이러한 표현기법은 전 세계의 트랜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yBa의 표현 방식에 금새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며 더 새로운, 보다 더 충격적인 작품들을 찾아 헤메였다. 새빨갛게 캔버스를 뒤덮은 자극적인 색감의 중국 미술은 영국의 소재주의와는 달리 파격적인 주제를 제시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가감 없이 표현하고, 서구 자본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중국 미술로 대중의 관심은 금새 옮겨간다. 중국 미술의 차세대 주자는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뒤틀리고 혁신적인 것을 예술이라고 제시할지 중국 안팎으로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몇 해 전, 느닷없이 제백석이라고 하는 화가가 등장한다.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여기저기서 회고전이 개최된다 싶더니 급기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작품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한다. 사망한지 60여 년이나 된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수묵화 작품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중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목격된다. 독일이 유럽 미술의 새로운 강자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근래 사람들이 극찬하는 독일 작품은 세련되고 차가운 기존의 추상 표현주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런 자극적인 이미지 없이 화면을 순수하고 성실하게 채운 리얼리즘 회화를 구사하는 뉴라이프치히 그룹의 젊은 예술가들이 바로 관심의 대상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대중을 자극했던 시각예술의 계보가 갑자기 역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 비슷한 현상을 우리나라의 대중문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최근 2~3년간 영화, 드라마, 패션, 음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거론되는 키워드는 '복고'이다. 그것도 꼭 엄청나게 먼 과거가 아닌 불과 2~30여년 전의 과거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말하는 '복고', 동시에 최근의 현대미술에서 보여지는 '역행'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나 회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적 감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아를 상실한 채 오로지 기계장치 속 부속품과 같은 삶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 검색과 스마트폰 만이 우리들의 감성을 대변하고 SNS만이 타인과의 소통을 연결한다. 표상과 이미지만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는 이미 1960년대에 기 드보르가 예견했던 이른바 '스펙터클의 사회'가 되어 어느덧 불쑥 우리 곁에 찾아와 있다. 그의 저서에서 드보르는 '스펙터클은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 관계에 의해 대체되는, 사회에 대한 전도된 이미지이며,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펙터클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스펙터클의 사회 안에서 일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은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탈출할 수 있는 것인가. 드보르는 아쉽게도 그런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각박한 사회 안에서 나 자신의 존재를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이미지가 우상이 된 사회 속에서 더 이상 현혹되지 않고, 진정 중요한 것을 찾는 노력만으로도 개인의 삶의 질은 현저히 높아진다고 말했다. 예술과 인문학이 위기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복고'와 '역행'의 의지는 어쩌면 생존에 대한 본능으로 우리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봄의 소리』展에 참여하는 세 명의 작가들은 표면상으로는 모두 자연을 예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앞서 장황하게 기술한 텍스트처럼 이들의 작품에서 이미지는 그야말로 표상일 뿐이다. 작가들은 자연을 그리지만, 그 안의 내용은 인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소소한 일상에 행복해 하며, 자연과 소통하며 교감하는 삶. 작가들이 자연을 마주하는 태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그것을 화폭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가 유의미함을 다시 한번 깨우치고, 삶을 되돌아 보고, 삶 속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물론 작가들의 이러한 '인간적 감성'을 되돌아 보고자 하는 태도는 관객에게 전이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 지점이 순간의 아이디어와 찰나적 재치, 그리고 충격적 비주얼로 무장한 소위 영국발 '포스트 포스트 모더니즘적 현대미술'이 삶에 대한 지긋한 성찰과 통찰을 근간으로 한 '사유적 회화' 앞에 고개 숙인 근거가 된 것이다.
김병종의 작품을 '살아있는 만물의 노래'를 듣고 보는 입장이 아닌 '살아있기에 만물과 함께 부르는 노래'로 읽는 방식은 그리 생경한 해석이 아닐 것이다. 동서양의 위인들을 아우르는 거대 담론을 제시하거나 잿빛으로 물든 교정을 거닐며 축적한 비판적 사고를 화폭에 재현했던 초기작에서 갑자기 오색찬란한 생명의 노래 연작으로 바뀌게 된 연유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여기 살아서 자연을 느낄 수 있고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삶이야 말로 의미 있는 삶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삶이다. 그래서 김병종의 자연은 시각적 영역으로서의 경관(景觀)의 대상이기 보다는 영적인 영역에서의 삶의 지속성을 의미하는 종교적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김은숙의 경우에도 앞선 예와 닮아있다. 그녀는 관찰자(작가)의 시선에 사로잡힌 자연의 특정 부분을 부각시켜 관찰자의 일상과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자연의 심미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방식이 아니다. 나뭇가지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커튼 자락은 분명 공간 안에서 관찰자가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가 숨쉬고 있음을,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커튼은 화면의 조형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 외에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주인공은 자연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 임을 복선한다. 작가 스스로가 '사소한 일상을 행복한 감사'로 여긴다고 말했다시피 그녀에게 삶이란, 그리고 행복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 중에 시나브로 개입한 자연(행복의 감정)을 인지하는 그 순간 느끼게 되는 짧은 안도만으로도 그녀에겐 충분히 벅차다. 이정태의 자연은 실경을 근거로 제작하여 작가의 필요에 의해 관념적 해체, 혹은 재가공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진경산수와 매우 닮아있다. 진경산수를 '한국화의 시초' 또는 '한국적 동양화'로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화폭의 기득권을 대상이 이끄느냐 아니면 관찰자가 이끄느냐의 차이이다. 그것이 바로 경관에 압도당해 표현하는 실경산수와 상상이나 자료에만 의존하여 표현해낸 관념산수보다 진경산수가 월등한 이유이다. 발췌된 산들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재조합이 되어 관객에게 실제보다 더욱 압도되어 다가오고, 작가의 감정이 개입된 음양 표현은 관객에게는 더욱 확장되어 이입된다. 이정태는 철저하게 작가가 화자(話者)가 되어 관객과의 소통을 주도한다. 이것이 작가가 정체성을 찾는 방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하자면, 전시 제목인『봄의 소리』는 계절적 구분만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은 아닐 것이다. 봄은 탈출이고 생명이며 움직임이다. 봄은 바람이 불어옴을 느낄 수 있고, 꽃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그러한 느낌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봄은, 차가워진 인간성을 되찾는 시기이며, 삶의 꼭대기만을 바라보고 달리는 편협한 시각이 아닌 수평적으로 주변을 살피는 너그러운 시각을 요구하는 계절이며,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느릿하게 되뇌는 순간이다. ●『봄의 소리』展은 관람객들에게 지난 겨울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보완하여 새로운 의지를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 할 것이고 나아가 잊고 살았던 내 삶의 소중한 조각들을 다시금 찾아보게 하는 따뜻한 전시가 될 것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들 중 대부분은 내일 아침에도 여전히 힘들게 방황하는 삶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춥고 외로운 새벽을 지나야만 아침이 오듯이 봄이 오는 소리는 반드시 겨울이어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인 것이다. 그렇게 다시 또 봄은 오는 법이다. ■ 윤상훈
Vol.20150303b | 봄의 소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