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숨도 Breathing Island

김현정展 / KIMHYUNJUNG / 金賢晶 / photography   2015_0214 ▶ 2015_0228 / 월요일 휴관

김현정_들숨도#1_잉크젯 프린트_47.7×71.5cm_2012

초대일시 / 2015_0214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아월 몬스터 Our Monster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 54-20번지 2층 Tel. +82.10.7486.0109 www.facebook.com/ourMONSTER

기억이 잘 안난다. 영등포역 몇 번 출구였지. 이층으로 된 카페베네였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그 사람은 뭘 시켰더라. 이층으로 올라가 흡연실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문을 살짝 열어 놨다. 줄담배를 피우며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길 하나 듣고 있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자기 얘기들. 그래도 사람은 눈을 보고 이야기 하라고 하지 않았나. 고개만 끄덕이면서 한참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다. 심장도 빨리 뛰는 것 같고, 그 공간이 참을 수 없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처음 느껴 본 내 상태가 당황스러웠다.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와서 영등포역으로 달려가 인천행 지하철을 기다릴 때 세상에서 제일 답답했던 집이, 내 침대가 처음으로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얼른 집에 가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고 싶다...' 그 생각만이 가득했다.

김현정_들숨도#2_잉크젯 프린트_47.7×71.5cm_2012
김현정_들숨도#3_잉크젯 프린트_47.7×71.5cm_2012

지하철에 사람이 많았다. 어디든 앉고 싶은데 앉을 수가 없었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아, 내가 여기 가만히 있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도림역으로 가는 그 2-3분이 지옥 같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또 어디든 앉아야겠는데 의자가 없었다. 의자가. 신도림역에 그렇게 의자가 없었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데 다리에 힘이 없어서 구석진 곳 기둥에 기대어 쭈그려 앉아있었다. 누구든 불러야겠는데 누구를 불러야 되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가 이상한 듯 쳐다보기만 하고 도와주지 않았다. 일단 화장실로 갔다. 변기에 앉아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을 못 쉬겠어. 죽을 것 같으니까 빨리 신도림역으로 와줘." 그렇게 그 변기에서 한 10분을 앉아있었나.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순간부터 정신을 잃었다. 기억이 잘 안난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응급실이었다.

김현정_들숨도#4_잉크젯 프린트_47.7×71.5cm_2012

그 날 이후로 지하철 뿐만 아니라 버스, 택시, 기차, 자가용 모든 교통수단과 멀어졌다. 일년 반이라는 시간을 항상 집과 집근처에서만 보냈다. 추운 겨울을 제외하곤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게 나에게는 숨 쉬며 이동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돌이켜 보면 나의 10대는 매우 불안했고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관계. 그 모든 것들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감.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처럼 내 친구들, 모든 10대들이 각기 다른 불안함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불안함을 안고 있는 10대 친구들이 가고 싶어 했던 공간, 숨쉴 수 있는 곳. 어쩌면 그들이 서있는 곳이 들숨도 일지도... ● 들숨도로 향하는 버스를 올라탈 때면 습관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들숨도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릴 때 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는 그 느낌이 잊을 수 없다. 비린내와 짠내가 섞인 바다냄새, 코가 시원해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김현정_학생커플#1_잉크젯 프린트_36.7×51.2cm_2010

들숨도는 알람도 필요 없다. 6시가 되면 새벽닭이 울고 조금 더 지나면 새가 짹짹거린다. 도시에 살 땐 들을 수 없던 소리다. 씻으려 부엌에 딸린 욕실로 건너간다. 신발을 신고 마당에 나오면 할머니는 수도꼭지 앞에서 요강을 비우고 계신다. 씻고 나오면 할머니는 밭에 나가 안계시고 나는 교복을 입고 마을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한다. 7시 25분 버스를 꼭 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각을 면할 수 없다. 처음엔 들숨도 사투리가 난무하는 학교 수업이 웃기고 재밌어서 듣기만 했는데 어느새 나도 사투리를 쓰면서 친구들과 떠들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과 아버지가 사주신 건전지 MP3를 챙겨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 논밭에 묶여있는 염소와 인사하고, 윗마을 선창가로 가던 그 길이 외로우면서 즐거웠다. 갈대밭에 가서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것, 모르는 집에 소가 울면 몰래가서 여물을 주는 것을 핸드폰에 있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참 행복했다.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께서 말씀하신다. "밥 먹고 기영 씻쳐놔라."(설거지 해놔라.)

김현정_학생커플#2_잉크젯 프린트_36.7×51.2cm_2010

나는 지금 일년 반 동안 갇혀있던 생활을 마치고 용기 내어 지하철을 타고 버스도 탄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영화사 사무실에 출퇴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작은 바람에 흔들린다. 나에게 또 다른 들숨도는 어디일까. 이런 나에게 어쩌면 이 전시가 들숨도 일지도 모른다. ■ 김현정

Vol.20150214d | 김현정展 / KIMHYUNJUNG / 金賢晶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