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329_일요일_03: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유영주는 존재와 사물을 향하는 오래된 우리의 고정관념을 제거하고, 의미와 가치를 재배치하는 작가인 듯하다. 2015년 3월 19일부터 제주도 문화공간 양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에서는 105명의 여자들의 개별적 사연과 그들이 착용했던 브래지어 그리고 카페인과 당분, 단백질 등을 걸러낸 커피 필터가 '일반적인' 역할과 사용법에 위배되는 형태로 - 무작위적 층위를 형성하며 - 쌓여 있다.
그녀의 이러한 재배치 작업은 과거의 흔적에서도 엿보인다. 2013년도에는 아프리카 세네갈의 생 루이(St. Louis)에서 무분별하게 방치된 생활 쓰레기를 수거한 뒤 아름답고 독특한 가짜 식물(fake trees)로 만들어 공공장소에 심어두었고, 2012년에는 애써 작업한 여러 권의 드로잉북을 펼치지 않고, 7살짜리 아이의 키(123cm)만큼 쌓아올리기도 하였으며, (아마도 작가는 쌓는 행위를 즐기는 듯하다.) 전시가 끝난 뒤 남은 작업들을 쓰레기 소각용 드럼통에 넣어 불사르기도 하였다. 또한 같은 해, 영국의 맨체스터, 핀란드의 오울루, 미국의 뉴욕 출신 작가들과 함께 한국의 서울 출신인 유영주는 각각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가 다시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로 돌아와 재회하는, 즉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며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불안한 예술가들의 삶을 '여행용품처럼 작은 그림들을 꺼냈다가 다시 포장하는 수행 작업'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였다. ●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귀한 예술작품과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존재 사이의 간극, 그 틈의 부질없음 아닐까? 물론 이러한 메시지는 비단 유영주뿐만 아니라 수많은 현대예술가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지속적이고 열정적인 수행(遂行)과 궤를 같이 하기에 그녀의 결과물들은 독특하다. 머리 아닌 몸이 하는 작업들이 주는 원초적 공감과 동감이랄까. 유영주와 그녀의 작업에는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하고 묘한 감(感)이 있다.
그러면 이제 문화공간 양에 전시될 신작들을 통해 그녀의 수행을 역추적해보도록 하자. 이번 작업은 크게 네 가지 형태로 등장하는데, 1) 300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105명의 여자들을 인터뷰한 사운드 작업, 2) 개별적 인터뷰 시간을 기록한 텍스트 작업, 3) 그녀들에게 받은 속옷을 이용한 설치작업, 4) 커피필터로 만든 가짜 꽃(fake flowers) 작업이 그것이다.
1)은 서울, 경기, 충청, 제주 등지에서 만난 연령과 직업이 서로 다른 여성들에게 “당신은 어떤 여자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대답을 이끌어낸 작업으로, 영상이나 이미지 없이 5개의 스피커를 오가며 무작위적으로 흘러나오는 편집된 음성만을 담고 있다. 특이한 것은 105명의 여성이 모두 “나는 여자로서(혹은 여자로써)”라는 서두로 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개별적 사연은 105개의 지문만큼이나 모두 다르지만, '아름다움'과 '남성이 주도하는 세계 속에 거주하는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취합되는 경향을 띄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에서처럼 이를 펼쳐놓지 않고,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재배치하고, 중첩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수행을 통해, 105개의 사연은 어느덧 소리가 되고, 또 다시 청각적 추상이미지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관객 중 누군가는 사연들 중 하나 혹은 몇 개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중첩'이라는 장치 때문에 끝까지 말을 따라가는 것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이 작업에서 주된 소재는 바로 작가와 인터뷰이들이 공유한 시간과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인터뷰한 시간을 기록한 텍스트 작업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5명의 스토리를 모두 기억할 수 있는 특권은 오직 작가 유영주만이 가지는데, 그것은 300여 시간을 그들과 함께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그 소리를 반복해 들으면서 작업을 수행한 작가의 신체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별함은 유영주로 하여금 그들 하나하나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품도록 하였으며, 그 사랑의 감정은 얼핏 사소하게 흘려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공하여 다른 의미와 가치를 생성하도록 하였다. 아마도 그녀가 결국 포착하게 된 것은 말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소한 감정의 추이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목소리의 기묘한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일련의 가공과정을 통해 그들의 음성이 지닌 특별한 음역과 음파는 독특한 추상적 이미지, 즉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덧 상상 속에서 피어오르는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점은 유영주의 이러한 작업들이 의도치 않게 라캉의 '여성 이론'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논리적(남성적) 기표(말)로 설명되지 않기에 전체가 아닌 개별자이며, 고로 공백, 목소리, 균열로 존재한다. 곧 말이 아닌 목소리로 존재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신체적 성질(sex)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3)은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이 기증한 낡은 브래지어를 이용한 설치작업이다. 이 작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작가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제주 편』에 소개된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본향당의 소지'를 언급한 바 있다. '소지'는 제주의 여인들이 가슴에 얹고 기도를 올린 뒤, 나무에 걸어두었던 하얀 종이 혹은 천으로, 깊은 한과 구슬픈 사연을 담은 상징적인 물건이다. 특이한 점은 소지가 어떠한 단어나 문장도 기록되지 않은 순백의 하얀 종이라는 것인데, 이는 어떤 말도 존재와 심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들이 이미 알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마치 유영주가 105명의 사연을 말이 아닌 의미 없는 소리로 치환하면서, 그 사연의 깊이를 더욱 드러낸 것처럼 말이다. 2)에서 새하얗게 채색되어 얼기설기 엉켜있는 속옷들은 와흘 본향당의 소지가 지니는 의미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 보인다.
4)는 작가가 문화공간 양의 작업실에서 내려 마신 커피필터를 이용해 만든 가짜 꽃 작업으로, 여기서는 텍스타일 이해에 일가견 있는 작가의 감각이 엿보인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성과 논리의 세계 속에서는 소임을 다 한 쓸모없는 존재들은 폐기되거나 원재료들로 분리․추출되어 재활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원상태 그대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바로 예술작품으로 활용될 때이다. 이 작업에서도 중요성분이 모두 빠져나간 쓸모없는 커피필터는 폐기되거나 추출되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팽나무에 걸려 변색된 소지'처럼 아릿하고 처연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즉 잉여가 의미를 획득하는 독특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작품 1), 2), 3)과 더불어 연결되면서 총체적 메시지를 생성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이다.
유영주가 이번 작업에서 여성의 사연과 물건을 소재로 삼은 것은 아마도 여성에 대한 그녀의 이해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차원적으로 작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도 있지만, 과거 여성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을 하면서, 여성의 신체와 심리에 대해 농밀한 관심과 이해를 쌓은 이력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 작업들에서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대상이 비단 여성(sex)만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상징계의 질서로부터 철저히 배척된 여성(gender)과 이음동의어인 '잉여'일 가능성이 높다. 의미 없이 흘러 넘기는 누군가의 하소연, 누군가의 가슴을 감싸다가 낡아버린 속옷 그리고 체성분을 배출해낸 원두커피. 어찌 보면 이것들은 당신과 나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그런 연유로 그 의미는 새삼스레 아릿하고 처연하다. ■ 김지혜
Vol.20150129j | 유영주展 / YOOYOUNGJOO / 劉鈴珠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