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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1206_토요일_03: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폭력의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신화 ● 역사는 기록된 사회의 기억이다. 사회의 기억은 과거의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개인에게 사건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면서 동시에 사건에 대해 느끼는 공동체의 정서를 공유하게 한다. 사건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넘어 전달되는 무엇인가가 있기에 역사는 예술의 끊임없는 주제였다. 이지유는 지금까지 제주도의 장소성, 역사성 등을 주제로 작업해 왔다. 제주도의 특정 장소와 인물에서 읽어낼 수 있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들을 탐구했다. 지속적인 문제의식 아래 이번 전시에서는 제주도에서 일제강점기 때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자의 시선에 존재하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사진집『제주 100년』에 수록되어 있는 한 장의 사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삼성혈을 측량한다는 명목 아래 세 구멍에 들어가 있는 일본 순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이 사진은 삼성혈 측량이라는 과거의 사건뿐만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제주의 정신, 신화를 유린하고자 했던 숨겨진 의도를 드러낸다. 또한 제주도 사람의 표본을 만들기 위해 사람에게 숫자를 붙여놓고 찍은 사진들은 지배자였던 일본인이 피지배자였던 제주인을 사람이 아닌 물건처럼 취급했음을 알게 해준다. 즉 제주도 사람들을 대상화하여 사진을 찍는 과정은 제주도 사람의 정신을 빼앗는 과정이었다.
이지유는 역사와 신화, 이성과 감각, 의식과 무의식, 구상과 추상이라는 대비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빼앗고자했던 제주도의 정신, 신화를 되살리고 있다. 이지유는 사진을 평면작품으로 재현하고 사진에서 받은 느낌을 손의 감각만을 의지하여 입체작품으로 만들었다. 즉 회화의 구상작품과 조각의 추상작품이 대립한다. 한지 뒤에서 색이 배어나게 하는 배체법을 사용한 서정성 짙은 화면은 참혹했던 제주의 역사를 말해준다.「2의 초상」,「5」등의 작품 제목 역시 서정적인 화면과 달리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우리의 조상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제목의 추상성은 화면의 구상성과 대비된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에게 가해진 폭력의 역사를 보여주는 회화의 구상성은 무의식의 감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각의 추상성과 대비되고 또 다시 숫자의 추상성과 충돌한다.
이지유의 작품이 그려내는 역사를 알게 되는 것과 동시에 비정형의 바탕에서 뾰족한 것이 튀어나와 우리를 찌른다. 이성을 바탕으로 기록된 역사는 구전을 통해 정신에 스며든 신화와 대립한다. 이지유의 회화작업이 역사를 바라보는 의식적인 탐구의 결과물이라면 입체작업은 신화를 바라보는 무의식적인 행위의 결과물이다. 즉 무의식 속에 깊이 침잠되어 있다 서서히 떠오르는 신화의 기억들은「무제」라고 이름 붙여진 추상형태의 입체작품들에 녹아졌다. 작가가 감각만을 의지해 만든 입체작품들은 먼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와 의식 아래로 가라앉은 공동체의 기억이다. 관람객은 이처럼 대비되는 요소들과 마주함으로써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신화를 무의식 속에서 불러일으키게 된다. 자신들의 의식 너머에 있던 제주의 정신, 신화를 재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 제목이자 전시 제목인「세 개의 기둥」은 작가가 일본사람을 대상화시킨 행위다. 일종의 복수인 셈이다. 그러나「세 개의 기둥」이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는 작가의 복수라는 것에 있지 않다. 일본인의 폭력적 사건을 의미 없는 행위로 돌려버리는 것에 있다. 이것은 역사를 잊어버리자는 것도 일본을 용서하자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기억하되 억압했던 사건이 아닌 억압 속에서도 제주의 정신, 신화가 빼앗기지 않고 지켜졌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하는 것이다. 삼성혈에 심겨있는 나무에, 기록된 역사도 의식 아래에 숨어있던 신화도 고스란히 새겨져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삼성혈의 나무들은 묘사보다는 표현적 성격이 강한 구상과 추상의 사이쯤에 놓여있는 드로잉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작품의 대립항들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대립항들은 서로가 서로를 불러일으키고 서로 충돌하다가 공존한다. 이것이 이지유가 이번 전시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공간이다.
이지유의 작품들은 제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문제라는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식민주의가 여전히 남아있는 이 세계가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이지유의 작품들은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관람객들은 이지유의 작품 앞에서 아픈 역사를 마주하면서 무의식 아래 숨어있던 제주의 정신, 신화를 다시금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작품 속에서 작가가 성찰하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 김연주
Vol.20141230b | 이지유展 / LEEJIYU / 李誌洧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