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1222_월요일_01:00pm
주최,주관 / 샘표식품(주)
관람시간 / 10:00am~05:30pm / 주말,공휴일 휴관
샘표스페이스 SEMPIO SPACE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이섭대천로 58(매곡리 231) 샘표식품 이천공장 내 Tel. +82.2.3393.5590 www.sempiospace.com
자연으로부터 생성되는 추상적 자연 ● '콩 세 알'. 예부터 콩을 심을 때는 세 알을 함께 심었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하나는 땅속 벌레 몫이고,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이며, 나머지 하나가 사람 몫이라고 생각했던 때문이다. 사람과 짐승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함께 나누고 살아가야 하는 이웃이자 구성원으로 생각한 자연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생각의 발로라 할 것이다. 류춘오의 그림은 자연을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자연을 보며 깨닫는 생명과 순환의 원리와 자연을 대하면서 생겨나는 상념과 감정을 화폭에 형상화해 온 것이다.
초기부터 그의 화면에는 구체적인 자연물은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자연물을 암시하는 잎이나 열매, 혹은 식물의 형상이 간략한 선이나 색면 형식으로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결국, 화면 전반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재질감을 달리하면서 여러 차례 중첩된 색면들과 일부 선으로 이루어져, 구성적인 양상을 띠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근작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있는 그의 작화 방식으로, 그의 작업은 자연을 보면서 생겨나는 정서,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이입된 자연이 형상화된 상징적 공간이다. ● 이는 작은 풀잎조차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었던 작가의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자연스럽게 그림 안으로 흘러들어왔던 것이다. ● 한동안 꽃이나 식물, 그밖에 사람의 형상과 일상의 소품 등이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그 바탕에 채색이 중첩된 화면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변형하면서 오브제를 사용하는 등 변화를 모색해온 그는, 근자에 이르러 일견 초기의 작업과 유사한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형상은 거의 사라지고 다시 몇 개의 선이나 색면이 간략화된 사물의 형상을 암시한다. 단색조였던 초기에 비해 적, 황, 흑의 원색을 주조로 한 강한 색면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그 색면들 또한 이전의 균질함을 벗어나고 있다. 아울러 덧붙이거나 찍고 긁거나 닦아내는 방식으로 화면의 구조는 보다 역동적이며 다채로움을 더한다. 이렇게 변화된 그림들은 이전보다 더욱 안정적이고 정제된 그의 화면 운영을 보여준다. 초기 이후 자신의 작업을 이루기 위해 지속해온 모색과 실험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연과의 교감을 형과 색으로 표현함에 자신이 가야 할 길에 하나의 길을 얻은 듯이 보이는 것이다.
마주하는 자연이 인간의 내부에 일으키는 것은 삶과 연관된 상념이나 감정뿐만은 아니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현상 뒤에 존재하는 자연의 원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고, 삶을 이해하는 눈을 넓히며, 그를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보다 깊게 하는 온갖 소통이 그 안에 포함될 것이다. ● 선과 면, 그리고 색은 화면을 이루는 기본 요소들이다. 류춘오는 그것들을 화면에 무수히 입히고, 덧붙이고, 올리고, 때로는 덜어내면서 자연을 표현해간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자연을 닮기를 바란다. 진지하고 꼼꼼하게 그 요소들을 화면에 쌓고 배치하는 이유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에게는 작업 하나하나가 또 다른 하나의 자연이고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면서도 근작에서는 인위적인 완벽함의 한계나 덧없음에 대한 깨달음을 풀어 놓는다. 이전에 추구해온 화면의 완전함과 공교함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함'이니 인위의 덧없음이다. 농교성졸(弄巧成拙)이라 하고 한편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고도 하니, 이 역시 그가 자연과 마주함을 통해 얻은 지혜라 하겠고 한편으론 이제 그의 연륜이 낳은 지혜라고도 하겠다.
작가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 작품 제목을 줄곧 '근원(origin)'으로 삼고 있다. 자연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그에게는 수긍이 가는 제목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미술가의 조형행위의 본질은 자연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라고 볼 수 있다. ● 그의 작업실에서 문득 "그림은 작가 자신에게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던 내게, 그는 그림은 그 사람의 세계이기도 함을 확인하게 하였다. 서로 다른 무수한 자연의 존재들을 통해 자연의 본성을 보듯, 그의 작업 또한 이렇게 미술의 본성을 보이는 많은 개별 가운데 하나로서 존재하고 있기에 그의 그림 또한 우리에게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더하여 주는 것일 게다. ■ 박정구
Vol.20141222c | 류춘오展 / RYUCHUUOH / 柳春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