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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1203_수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4_1206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 Tel. +82.2.730.7707 palaisdeseoul.com blog.naver.com/palaisdes
미디어, 화려하고 잔혹한 무곡 ● 현재 우리는 하루 종일 어딘가에 접속되어 있다.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언제 지인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 한시라도 휴대전화를 몸에 지니지 않으면 모든 일이 마비될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인터넷, 텔레비전 등 정보매체가 전달하는 이미지는 끊임 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어느 방향으로인가 이끌고 있다. 다양한 정보와 이미지 속을 배회하다가 도착하는 곳은 소비와 망각이다. 그리고 망각은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길을 잃게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한다. 도대체 미디어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목적은 무엇일까. 이 시대에 미디어는 왜 특정한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어떤 행동지침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보다(see)'라는 동사는 이해와 깨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미디어는 '보여줌'으로써 쉽게 앎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이미지를 펼쳐놓으며 문자매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공간성 및 현장성 등을 체감하게 한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은 선택적이라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미디어는 이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중에 특정 사건을 선별하여 전달하기 때문이다. 해외를 다루는 뉴스에서 미국과 유럽의 사건들만 다룬다면 아프리카나 중동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며, 미지의 세계로 신비롭게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디어의 선택적 정보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미 전달되는 정보만 해도 일생 동안 파악하기에 벅찬 수준이며, 아주 엄밀히 말해서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아동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장면을 보면서 밥을 먹기도 한다. 사건들은 그리스 비극처럼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대리적 경험일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아서 알게 되는 것'들은 한편으로는 '허구'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찍이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라 했다. 미디어는 정보전달방식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의 내용보다는 매체의 형식에 의해 우리의 삶이 변화한다. 텔레비전이 생기면서 개인이 인지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게 되었다. 실시간으로 영국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볼 수도 있으며, 남극 펭귄의 생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미디어가 삶을 어디로 이끌어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지엽적인 정보들을 '알고 있음'에 만족한다. 스마트폰 역시 우리에게 편리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들이나 타인들과 접속하게 하여 일과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현대인은 업무 시간 외에도 쉼 없이 노동해야 한다. 임용현 작가는 이러한 미디어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작가는 영상을 전공하고 방송 및 영화관련 일을 해 왔다. 경험 속에서 미디어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체험하였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그것의 이면에는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는 미디어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언제나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디어의 전달방식 자체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무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미디어 덕분에 얻게 된 감각적, 인지적 초능력에 비해 그것을 종합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종종 과거를 배회한다. 쏟아지는 이미지들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해석에 앞서 감각하고 반응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미디어는 지난한 현실보다는 판타지나 달콤한 마취제들을 계속적으로 분무하고 있고,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현실을 가장한 허상에 젖어간다.
임용현의 작업은 미디어가 전달하는 허상에 마취되어가는 인간 군상들에게 전하는 경고다. 신경이 뇌에 지각정보를 전달하듯이 미디어는 이미 사회라는 몸체 안에 신경처럼 뻗어 있으며, 실제로 신경과 감각은 미디어와 연결된다. 직접 경험한 것 외에 세상에 대해 객관화시켜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미디어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종종 거짓까지 가장하면서 진실을 은폐한다는 것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환영에 도취되어 무뎌진 감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그 허상이 실제적인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폭탄이나 미사일 위에서 일상을 보내는 상황으로 표현하였다. 이미 말했듯이 미디어는 사회의 신경으로 우리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동과 취향과 가치관,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며 거대한 패러다임을 조종하기도 한다.
잠수함에는 'Truth', 'Criticism', 'justice'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미디어 속에서 우리의 정의, 비평, 정의가 드러나거나 숨겨지는 것처럼 단어들은 잠수함과 함께 떠오르거나 가라 앉는다. 깨진 텔레비전 안에는 총알이 보인다. 한 쪽에서 보면 그 실체가 보이지만 다른 방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라 같은 대상에 대해 존재 혹은 비존재로 인식할 만큼 실체를 파악하는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 영상매체에서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과정 속에서 정보는 선택되고 재구성되는데, 작가는 재구성된 실재 속에서 본질을 직시할 것을 충고한다. 선택과 재구성 속에는 그것을 조작하는 주체의 의도가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 그것을 읽어내지 않고는 표면적인 내용들에 현혹될 뿐, 특정 목적에 이끌어가기 위한 폭력성과 정치성은 발견하지 못한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달콤한 것, 그럴듯한 것, 쉽게 이해되는 것 이면에 숨겨진 잔혹함을 말이다. ■ 이수
Vol.20141204h | 임용현展 / LIMYONGHYUN_Jackie / 林勇賢 / media.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