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1128_금요일_06:00pm
워크숍 / 2014_1213_토요일_04:00pm~06:00pm
참여작가 이완_김재범_박재영_임상빈_함혜경 김아영_조영주_박준범_송호준_구민자
기획 / 고동연 후원 / 서울문화재단_성북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공휴일 휴관 * 12월21일 오픈
스페이스 오뉴월 Space O'NewWall 서울 성북구 선잠로 12-6(성북동 52번지) Tel. 070.4401.6741 www.onewwall.com
작가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가 스스로가 자립하도록 애쓰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기관이 공정하게 심사하면 해결될까? 사회가 예술을 더 사랑하게 된다면 해결될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그렇게 되면 예술가들이 더 진정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예술가의 성공은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 위의 질문들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질문 자체는 유효할 수 있으나 궁극적인 답변이란 애초에 주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이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심지어 관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우리 시대에도 예술이 지닌 실험적인 가치는 일반 사회구성원들에게 아직도 낯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상적인 예술적 가치를 특정한 경제적 가치로, 사회적 존재감으로 환원시키는 일이 작가들에게 어떤 때는 버겁고, 어떤 때는 치사하고 어떤 때는 스스로에게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 그래서 전시 서문의 제목을 '예술가가 된다는 것과 연관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Answer to the Ultimate Question about Being Artists)'이라고 붙였다. 이 문구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 따온 것이다.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인 주인공은 은하수를 여행하던 중 자신이 지구에서 실험의 대상 정도로만 간주하였던 쥐가 만든 컴퓨터로부터 ‛우주에 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듣게 된다. 쥐는 10년간의 데이터를 모아서 "Deep Thoughts" 라고 불리는 컴퓨터에 입력시켰고 우주, 삶, 그리고 과학의 모든 열쇠를 풀어줄 해답을 42로 규정하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블랙 코미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가 황당한 것만은 아니다. 일단 42라는 숫자도 웃기지만 그 답이 틀렸다고 반증할 만한 방법도,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질문에 대하여 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황당한 질문에 황당한 답변이 나왔다고 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차피 증명될 수는 없지만 히치하이커에게 너무나 절실한 질문이었기에 그 질문 자체를 던져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존재해가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질문들을 던져야 할까?
전시의 발단 ● 전시는 2013년 7월 기획자가 우연히 작가들에게 그들의 일상을 자세히 물어보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점차 기획자는 작가들의 삶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궁금증을 지니게 되었고 작가들의 삶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이 대화들을 전시, 기록, 책 등의 방법으로 보다 넓은 관객들과 소통할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다. 물론 작가들에게 생존, 삶, 궁핍, 그러면서 버텨나가기 등의 문제를 묻게 된 배경에는 이 같은 문제들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획자나 비평가들에게도 생존의 문제는 똑같이 절실하다. 길게는 1년 반, 짧게는 지난 8개월(기금이 결정된 시기부터) 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들 중에는 뻔한 것들도 있었고 좀 특이한 것들도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단체로 한 목소리가 되기도 했고 어떤 순간에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만약 일차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아티스트 피는 이러한 질문에 중요한 열쇠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 중에는 아티스트피의 각종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해주는 이도 있었다. ● 우리의 궁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굳이 누가 누구보다 더 궁핍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지만) 과연 궁핍의 정도가 어느 정도 되어야 정말 궁핍한 것인지 정말 맥이 빠지지만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가도 있었다. 그리고 아예 그러한 부족의 상태가 작가들로 하여금 일반인들과는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들보다 더 자유롭다는 측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보다 더 꾸준하게 자신만의 목적을 지니고 삶을 꾸려간다는 '작가적인' 자긍심을 이야기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물론 자긍심이 '경제적인 생존'이라는 문제를 뛰어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 또한 예술가의 경제적 자립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요건임에는 틀림없다.
전시의 구성원들 ● 과연 궁핍한가? 무엇 때문에 궁핍한가? 혹은 궁핍한 삶이 문제일까? 위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제기되기도 하고 멈춰지기도 하고를 반복하였다. 아무래도 단체행동을 자제하고 복잡하게 이 문제를 접근해보려는 입장인 데다가 특정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 기획자와 그룹전에 참가한 작가들에게 이 문제는 중요하기는 한데 답을 찾기에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는 참여작가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국내 미술계에서 타자라고 여겨질 만한 위치에 놓인 작가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한 몫을 하였다.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10명의 작가들은 얼핏 잉여, 생존의 단어들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이들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덜 타자적인 위치란 투명하게 그들의 경제적인 자립도를 산술화해서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에게 생존의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정서적, 미학적인 복합적인 상황에 관한 것이라면 미술관의 그룹전에 빈번히 포함되고 있는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작가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외 주요 레지던시를 거치고 국내 미술계의 젊은 작가 우대정책의 수혜를 본 이들이 다시금 생존 문제에 대해 다른 세대들이 해주지 못하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단체행동을 하기에는 이전 세대에 비해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이지만 그들이 받은 많은 혜택만큼이나 한국 미술계의 곳곳을 경험한 이들이 생존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30대 중후반, 그리고 40대 초반의 작가들은 세컨드 잡을 갖거나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꿈꾸기도 한다. 이들은 세컨드 잡이 일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오히려 세컨드 잡을 통해 예술적 소재의 폭이 넓혀질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석연치만은 않다. 혜택을 받은 만큼 더 많이 불려 다니면서 이들은 미술계의 비평적 기준들이 매우 임의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국제 교류나 혹은 미술과 과학의 융합 등과 같은 키워드들이 얄팍한 미술계의 권력이 되고 있음을 기금신청을 할 때나 미술관 전시를 돌아다니면서 실감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의 경우 독특한 기술적인 문제들에 봉착하기도 한다. 영상은 쉽게 복제되고 있는 반면 그것을 다양하게 재생하고 설치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줄 기술자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 이러한 문제점은 이번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 영상작업을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결코 간과할 만한 소소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응답하라 작가들』에 참여한 작가들도 생존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창작 의욕이 꺾이는 상황들도 수없이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잘나가는 30대 작가들에게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소박한 대답 ●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 서로 가끔씩 카톡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제안들이 나왔다. 과연 단체행동이 필요할 것인가? 그러는 와중에 미협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외국의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겪게 되는 저작권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무엇인가 보다 현실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생존 키트를 만들어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작가로부터 젊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선언문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기획자는 유사한 주제로 대학원 재학 중이나 대학원을 나온 지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과의 인터뷰와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우리들의 입장이나 전략을 차별화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궁금해하기도 비판적 입장에 귀기울이기도 했다. ● 그러나 솔직히 말해 전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우리는 앞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명확한 해답도 갖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기획자의 입장에서 특정한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배제해가고 있다. 대신 우리 미술계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레지던시의 플리마켓, 각종 마켓, 자립의 기예와 같이 작가들이 만드는 협동조합에 대한 워크숍, 그리고 연관된 전시들, 졸업생들의 전시에 등장하는 선언문들이 반가울 따름이다. 더불어 단체 행동과 선언문도 좋지만 효율성이나 파급력을 논하기에 이 문제가 너무 미묘하다는 사실도 주지시키고자 한다. 이 문제는 한국 미술계가 지닌 병폐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구조로부터 야기된 부분도 있지만 더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질문'에 해당한다. 특정한 집단의 관심사나 사회적 갈등구조, 체계로만 축약되기에 이 문제는 너무나도 '궁극적'이다. ● 이제 기획자의 소박한 전시 목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뻔한 이야기지만 더 많은 작가들이 더 자세하고 솔직하게 보다 치밀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더 다양하게 소통되고 이해되며 오해되는 것, 이것이 기획자가 바라는 바다. 왜냐면 궁핍, 생존이라는 맥 빠진 단어를 아예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닥친 상황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말하고 부딪쳐야 한다. 실질적인 언어들로 표현하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들이 진행되어야 하는가? 중요한 질문에는 언제나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니, 애덤스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아예 질문 자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되면서 질문을 던지는 이를 허무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답이 주어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자신의 상황을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동일한 질문을 다르게 해석하고 접근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더 없는 관용을 지녀야 한다. 이것은 작가 개개인의 유사하면서도 다른 삶의 모습들과 입장들이 특정한 정책, 미술계 내부의 권력, 그리고 선입관들에 의해 희석되지 않고 최대한 다양하게 투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고동연
Vol.20141124i | 응답하라 작가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