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Lay a course / Sound- Spring 존재의 찬가

박경주展 / PARKKYOUNGJOO / 朴京珠 / painting   2014_1121 ▶ 2014_1127

박경주_Sound-spring1_캔버스에 한지, 염색_145.5×112.1cm_2014

초대일시 / 2014_1121_금요일_05:00pm

후원 / 강원도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강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춘천미술관 CHUN CHEON GALLERY 강원도 춘천시 서부대성로 71(옥천동 73-2번지) Tel. +82.33.241.1856 cafe.daum.net/CCART

·우리 미술에서 한지에 대한 주목은 추상회화가 본격화된 무렵과 때를 같이 하며, 차츰 시간이 경과하면서 한국미술의 특화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마도 한지를 매재로 한 일군의 작가군을 형성한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만큼 한지는 예술적인 가치로서의 사랑과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는 뜻이리라. ● 박경주 역시 한지의 우수성에 이끌려 꾸준히 작품을 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한지에 서양화의 콜라쥬 수법을 이용하여 예술품으로 탈바꿈시켜오고 있다. 그의 그림은 이전 한지작가들과 약간 차이점을 보이는데 선배 작가들이 물성위주로, 그러니까 한지가 지닌 고유함(텍스츄어, 재질감, 수수한 색조)을 최대한 증폭시켰던데 반해 박경주는 한지의 고유함도 발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표현의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 즉 선배 작가들이 단색의 주조음을 이루었다면, 그의 경우는 과감히 다색조를 기용하며 화면에는 활기찬 움직임이 포착된다.

박경주_Sound-Lay a course3_캔버스에 한지, 염색_130.3×162.2cm_2014

그러나 이런 설명보다 먼저 언급해야할 것은 그의 작품의 형성과정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한지의 표면이 아닌 옆면을 사용한다. 한지를 세워서 사용한다는 것은 한지의 섬유질을 활용하면서도 수많은 곡선으로 이루어진, 마치 물이 흘러가거나 바람이 부는 듯한 풍부한 표정을 보여줄 수 있어 더 매력적이다. 박경주는 한지를 동양화 염료로 곱게 물들여 원하는 색깔을 취한 다음에 재단한 한지의 옆면을 화면의 밑그림에 알맞게 붙여나가는 절차를 밟는다. 즉 중심이 되는 이미지에는 염색된 한지를 붙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민낯의 한지'를 붙여 화면의 구성을 얼개짓는다. 큰 면과 작은 면의 대비, 바탕과 이미지의 조화, 칼라의 호응 등이 어우러져 화면은 밝고 활기 넘치는 감정의 진폭이 울려 퍼진다.

박경주_Sound-Lay a course4_캔버스에 한지, 염색_91×116.8cm_2014

작가는 한지가 지닌 멋에 안주하기보다 그것을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하나의 통로로 삼는다. 발랄한 색깔을 넣고 특별한 형태를 취하며 리듬감을 불어넣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화면에 등장시키는 모티브는 주로 '나팔의 이미지'와 '백화만발의 화분'으로 대별된다. 각각의 이미지는 모두 상징성을 띠고 있는데 나팔의 이미지를 보면 그것은 유대교를 상징하는 소파르(Sofar)라는 악기에서 착안된 것으로 이 양각나팔은 3천년 이상 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소파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성경의 출애굽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히브리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시내산에서 머무는 동안 여호와께서 임재하실 때 나팔소리와 함께 나타나셨다는 기록에서 찾아진다. 작가도 이런 의미에서 나팔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기용한 양각나팔은 '기쁜 소식'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경주_Sound-Lay a course6_캔버스에 한지, 염색_162.2×130.3cm_2014

그의 그림에서 나팔소리는 대단히 힘차게 울려 퍼진다. 분홍, 초록 ,파랑 등등의 색깔들이 날개 짓을 하고 염색된 한지들이 리드미컬하게 파동치는 것을 보면 흥겨운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각나팔이 갖는 종교적 상징성을 색과 선과 같은 조형어휘에 실어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축제의 소리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희망의 메시지이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삶을 세울 수 있는 무언가 견고하고 확고한 토대가 필요하다. 몇년만 지나도 시효를 다하는 그런 가치관이나 신조에 마냥 자신의 인생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각나팔은 시간이 가도 우리를 배반하지 않을 견고한 토대, 즉 '우리의 바위' '요새' '강한 성'을 암시해준다. 시편기자에게 하나님은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는 최악의 순간에도, 자신과 동행하시고 힘과 위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였다. 작가가 나팔소리를 주위에 울려퍼지게 하려는 심중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표시해준다.

박경주_Sound-spring5_캔버스에 한지, 염색_130.3×162.2cm_2014

다음으로 박경주가 등장시키는 「Sound-Spring」은 그런 마음의 표현이 담긴 작품이다. 그림에는 화분에 담긴 활짝 핀 꽃들이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영롱한 색깔을 지닌데다가 한지의 굵은 선까지 합쳐져 한층 활기차고 경쾌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정물화로 본다면 그것은 그림의 절반 정도만 이해한 것이 된다. 그는 17C 네덜란드 정물화가들처럼 정물을 통해 더 깊은 의미를 실어내고자 했다. 이 작품은 마음의 상태, 즉 충만한 마음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라이너 M.릴케(Rainer Maria Rilke)가 "내겐 말로 표현하지 않은 찬가가 있다"고 했는데 이같은 측면은 그의 그림에도 잘 엿볼 수 있으리라 본다. 작가는 존재의 심연에 깔려 있는 멜로디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대상의 기쁨이 나의 내면에 집을 짓도록 허락할 뿐만 아니라 달콤한 꽃향기에 취해버리게 만든다. 고요속에 찾아온 그 향기는 우리 마음의 빈터를 채우고 신비한 치유의 힘으로 그늘진 부분을 밝고 기운차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킨다. 작가의 화분을 보면 유난히 꽃이 풍성하고 찬란하다. 그만큼 그 마음이 심적으로 고조되어 있으며 충일해있다는 표시이다. 사람이 상처를 입으면 아프다고 말하듯이 벅찬 기분에 사로잡히면 즐거움을 어떤 식으로든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게 된다. 「Sound-Spring」은 그가 심령속에 자리한 생명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누구든 그 작품을 보면 우주적인 생명의 전선에 접속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박경주_Sound-Lay a course2_캔버스에 한지, 염색_130.3×162.2cm_2014

박경주는 시각언어를 통해 소리를 담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작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박경주가 말하는 '사운드'는 음악의 그것과는 달리 신의 임재를 암시하거나 생명이 바깥으로 분출되는 움직임을 일컫는다. 우리 시대의 고민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지도 않고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20C 미술을 저수지에서 물을 다 뽑아내버리듯 종교를 빼내버리는 썰물의 이미지에 비교하였다. 이런 즈음에 박경주가 정말로 중요한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뜻깊다. 그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부재의 송가'라기보다는 '존재의 찬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 이상의 훨씬 값진 경험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서성록

Vol.20141121b | 박경주展 / PARKKYOUNGJOO / 朴京珠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