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1108_토요일_05: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풍경의 흔적-점, 선, 면 ● 풍경은 주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현듯 다가왔다 사라진다. 일상이라는 무감각을 관통하는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추이에 따라 감정과 상황의 변수로 인해 이미-항상 변화한다. 온전히 붙잡아 놓을 수 없는 '현상'이기에 시대를 초월해 많은 작가들이 그 낯선 장면에 끊임없이 천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소유할 수 없는 지금-여기의 풍경은 그 앞에 선 작가-주체에 의해 형태를 얻고 색을 입으며, 한순간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우리를 현실의 이면으로 데리고 간다.
애니메이션 작가 정현정은 제주의 풍경 안에서 서성거린다. 영상 작업「점, 선, 면」(2014)은 작가가 7개월이라는 레시던시 기간 동안 외부인으로서 (혹은 내부인으로서) 일상화된 제주의 감각을 해안/공업단지, 야자수/공업단지의 분리와 병치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흑백의 배경 위로 출몰하는 야자수와 해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공업단지는 우리가 알던 그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섬을 비껴간다. 영상에서 상이한 시차를 두고 기록된 야자수 잎의 나부낌, 물결의 파동과 빛이 투영된 표면, 공업단지의 건축적 단면은 얼핏 보기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하지만 쉼 없이 중지와 재생을 반복함으로써 부재하는 시간을 메우고 있다. 이는 제주의 지금-여기가 과거와 무관하게 현재만으로 충만하다는 환상을 교묘하게 비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업은 전체적인 세부 묘사가 생략된 채 점, 선, 면으로만 구현된다. 즉 작가는 형태적 유사성에 입각한 실사(實寫)에서 출발하지만, 작업 과정 중 풍경에 동원되는 모든 구성체를 최소한의 조형적 요소로 환원시켰다. 가령 해변은 점들의 집적으로 물과 그 바깥이 연결되고, 야자수는 선들의 진동으로 생(生)이 지속되며, 공업단지는 면으로 둘러싸인 채 유동한다. 그 최소화된 풍경 속에서 자연은 분절적인 유기적 형태로 자본제적 인공물과 같은 층위에서 섞이고 흩어지며 존재를 현시한다. 따라서 '점, 선, 면'은 하나의 전체적인 풍경을 이루는 견고한 요소이면서 그것들 각각의 다양한 방향과 흐름을 직조해내는 변이체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제주를 형성하고 있는 삶의 맥락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것의 이질성을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그리고 영상 아래로 깔리는 음향은 파도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빗소리, 공업단지를 드나드는 자동차 소리, 익명의 말소리, 의도치 않게 삽입된 잡음까지 뒤엉켜 그 구분이 모호해지며, 영상의 흐름에 따라 변주된다.
이렇듯 작업은 '자본 속의 제주'라는 독특한 공간을 구성해 낸다. 그 안에서 해변, 야자수, 공업단지는 제주라는 명징한 공간을 불확실하게 만들며,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실상 언제부턴가 자본제적 요소들이 삶을 이끄는 조건으로 기능하며, 제주에는 불안의 감각과 삶의 의지가 교차와 비약을 이뤄내고 있다. 관광휴양사업, 외지인들의 부동산 매입, 대형 마트와 패스트푸드점은 이미 제주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순응이 달갑지만은 않은 듯 작가는 영상에서 공업단지를 그것의 엄청난 속도와 파급력에도 정지 상태에 가까운 미동으로 상징화하며, 그에 반해 해변과 야자수는 어느 지점에서든 (공업단지 뒤로 밀려나는 장면에서도) 약동하는 생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자본으로 폐색된 풍경을 견제하는 작가의 제스처이며, 그럼에도 풍경은 망각되고 재배열될 것을 알기에 지금-여기의 제주를 기억하고 간직하려는 그의 '순수한' 욕망이기도 하다. 이는 작가가 제주에 '대해' 말하기보다 제주 '안에서' 겪어낸 감각을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태도와도 공명한다. 단출한 점, 선, 면으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시간을 지탱하며, 애정과 그리움으로 제주의 공간을 번안해 낸 작가는 이로써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풍경의 잉여 혹은 결핍 앞에 도착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풍경을 소유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일 것이다. ■ 이빛나
Vol.20141113i | 정현정展 / JUNGHYUNJUNG / 鄭賢貞 / animation.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