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1101_토요일_03:00pm
관람료 / 1,000원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 모아 GALLERY MOA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48-37 Tel. +82.31.949.3272 www.gallerymoa.com
이상필 예술세계-오래된 동화에서 현대인의 길을 묻다? ● 피노키오가 이탈리아의 극작가 카를로 로렌지니(필명 콜로디)에 의해 태어난 해는 1883년으로 이제 1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 작품은 물론 동화의 포맷을 빌었으나 당시 유럽문학계에 유행한, 사회 풍자를 담은 우화로 기능했다. 거짓말 하면 코가 길어난다는 유쾌하고 기발한 도덕적 발상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었고 나무이자, 인형이고, 사람인 이 세 가지 각각 다른 정체성을 버무려 빚어낸 나무인형 캐릭터는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세기를 넘어서도록 빛나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데, 화가 이상필이 지금 그러한 피노키오에 몰입해 있다. 그가 재창조한 피노키오는 키치적 형태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둥근 원형으로 조각된 얼굴은 갈데없는 레디메이드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듯한 피노키오의 얼굴은 동그랗게 뜬 흰자위에 둘러싸인 생명력 없는 검정 눈동자와 입귀가 쭉 찢어져 올라간 채 균일한 흰 이를 드러낸, 탈바가지 같은 입으로 그로테스크하다. 거짓말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코는 비죽이 들러 올려져 있다. 몸뚱이는 얇은 두께의 판자를 허리 라인만 준채 평면으로 오려냈고 팔 다리 사지는 관절마디를 도드라지게 깎아 붙여 동세 표현을 살리고 있다.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인간이 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이상필의 피노키오는 몸체를 장식한 무늬에서 다분한 하나의 의도가 읽힌다. 이른바 명품이라고 불리는 상품들의 고유한 이미지들이 피노키오의 몸통을 뒤덮고 있다. 피노키오는 성적 상징이 생략돼 중성적 이미지이지만 그들을 휘감은 문양은 주로 여성들의 가방에 새겨진 기호들이다. 그런 기호와 문양들을 온 몸에 두른 채 뛰거나 달리거나 거꾸로 매달린 피노키오들은 오늘 우리 사회에 부유하고 있는'일부 여성들의 심리'속에 있는 욕망이다. 당초 가방의 문양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었든 현재 그것들은 욕망하는 부의 상징, 혹은 그로부터 비롯된 차별의 부호로 낙인찍혀 있다. 이상필은 작품의 제목을'달려라, 날아라,'스타와 같은 단말마적 직설어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확실히 이러한 단어는 외마디 비명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크고 작은 피노키오로 둘러싸인 작품'여자'에서 확연해진다. 서구성향의 세련된 미모를 가진 여자가 쓴 커다란 선글라스 유리면에 반사된 것은'스타벅스'와 상품'구치'이다. 이 둘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에둘러 구구한 해석을 붙일 필요조차 없다. 소비, 향락, 욕망이 응집된 여자의 내면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삐에로 즉 아직 나무인형에 불과한 피노키오일 뿐이다.
이상필은 그러므로 원작 동화의 메타포 중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무인형의 갈망과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는 혼란, 어리석음, 갈등, 거짓말의 유혹에 늘 휘둘리는 치기 등을 빌어왔고 이러한 부정적 성향을 밝고 화사한 색채와 간략하게 처리된 선, 목각 인형 형상화, 동화적 이미지들로 치장해 또 다른 우화 피노키오를 써내려간 것이다. 그의 재미있는 발상은 소비문화와 향락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마크를 붙여서 정체성이 흔들리는 대중심리에 의한 소비주의를 질타하며, 명품족의 허상과 욕구충족을 위한 불안함, 현대인의 공허한 심리를 꼬집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진실이 왜곡되고 거짓이 남발되어 가는 현실을 직시하는데, 그것은 마치 거짓말하면 늘어나는 피노키오의 코가 처한 위태로운 상황과 다를바가 없다. 그래서인가, 피노키오의 괴기스런 웃음은 일견 내면에 고인 슬픔이 투사된 이지러진 표정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는 그리기에서 결국 탈출구를 모색한다. 욕망의 몸통을 떼어내 버린 피노키오는 그곳에 대신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꽃잎들이 휘날리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피노키오는 자유롭고 가벼우며 무욕의 존재로 거듭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고자 한 물질적 부란 결국 허무로 귀결되며 진정한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다. 웃고 있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나무로 깎아진 허상에 지나지 않고 그 내면의 진실을 찾아야 인간이 된다는 원작의 전언을 가감없이 내보인다. 그 과정이란 실로 고통스럽고 외로운 길을 걷는 것으로 작가의 작업 역시 노정 중에 있으리란 사실은 분명하다.
이상필은 피노키오들을 우주 공간에 배치하거나 미니멀한 장소 속에서 어디론가 뛰어가기도 하고 날아가게도 했다. 이런 장면을 3D로 제작한 것도 그가 시도한 새로운 기법이다. 또 인형의 요소를 가미한 조각품으로도 제작해 단조로움을 벗어나 보았다. 주조색은 빨강과 파랑이고 중간 톤의 색들로 보라, 핑크, 녹색, 연두, 보라 등을 적절하게 채색하여 화려하고 화사하며 부드러운, 그렇기 때문에 나른한 느낌을 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 자본주의를 규정할 수 있는 색깔이 있다면 그의 채색이 의도하는 바일 것이다. 이는 또 상품의 상징 문양에 의해 재차 확인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번 작품은 현대미술의 전위적 성향을 띠고 있다. 동시에 동화속의 피노키오란 소재를 선택,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묘사하여 대중적 시선을 집중시켰다. 또한 3D 영상매체로 가상세계를 선보이며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대담하고 참신함을 더한다.
이상필은 피노키오란 익히 알려진 대상을 설정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로 화려하며 활기찬, 아름다운 형태로 연출하였지만 궁극의 화두는'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하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음이다. 그리고 그는 그 해답으로서'사랑'이라는 가장 오래된 진실을 펼쳐 들어 주위를 환기시키고 있다. 원작을 돌이켜보면 나무인형에 숨을 불어넣어준 이는 피노키오를 사랑하여 아들로 삼은 아버지 제페토이며 그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노인이다. 작가는 결국 제페토의 역할을 새롭게 해석해 적극 받아들이고 실천에 나선 것이다. 아동문학에서 주제를 선택하여 현대미술에서 선보인 대중적 인기를 받고 있는 키치적 성향을 예술과 접목시켜 색다른 재미를 더한 작가의 예술세계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리라 기대해 본다. (2014. 10. 23) ■ 정금희
Vol.20141103g | 이상필展 / LEESANGPHIL / 李相弼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