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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920_토요일_03:00pm
관람료 / 1,000원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 모아 GALLERY MOA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48-37 Tel. +82.31.949.3272 www.gallerymoa.com
'회색 숲'이 말하는 '시(詩)적 메타포' ● 1985년부터 시작된 30년 화업을 정리하는 작가 최용대의 이번 개인전에는 2000년대부터 가시화된 주제인 '숲(La Foré̂t)'에 대한 재해석이 깊이 자리한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부단한 실험이자 가시적 결과물이다. 그것은 비단 최근의 관심사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1992년 첫 개인전 이래, 회화, 오브제, 설치의 조형언어를 통해 탐구해 왔던 시(詩), 꿈, 자연, 인간과 관련한 주제들의 연장 선상에 위치하는 정수(精髓)로서의 무엇이다. 1990년대 6년간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1999년 가진 개인전에서 그는 그간의 작업 세계를 다음처럼 언급한다. "나에게 있어 / 그림 그리기란 삶이라는 실존(實存)과 / 죽음이라는 삶의 부재(不在) 사이를 / 이어주는 이음줄에 다름 아니다. / 하여 / 내 모든 그림은 /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들이다." ● 이러한 작가의 진술은 오늘의 작품세계에 이르게 만든 하나의 화두(話頭)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비구상, 추상의 시기를 거쳐 일련의 '숲' 시리즈에 이르는 최근의 전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에는 실존과 부재가 그리고 삶과 죽음이 대립하는 '사이의 세계'가 정초된다. 이 세계는 양자의 이원적 대립에 대한 화해를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음줄로서의 시(詩)적 언어'를 창출한다고 평가할 만하다.
단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세계를 '시적 언어의 세계(1992-1999)', '사이 세계(2000~2008)', '검은 숲과 회색 숲의 세계(2009~ )'로 대별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구분에 근거할 때, 그의 최근작은 '회색 숲'의 세계라 할 것이다. 그것은 검정색 안료와 흰색의 아크릴물감이 교차되면서 만들어진 마술적이고도 신비로운 '검거나 흰' 세계이다. 이 세계의 근저에는 사물/배경, 주체/객체, 인간/자연의 이분법의 구조주의적 성찰을 무너뜨리는 '허물기로서의 붓질'이 실행된다. 보라! 상이한 물질이 뒤섞이면서 만들어내는 회색톤의 신비로운 마술적 효과는, 그의 작품을, 안개가 뿌옇게 드리워진 풍경 또는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의 풍경 혹은 반대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의 풍경 등으로 신비롭게 창출해 낸다. ● 그뿐 아니라, 신비의 지층(地層) 위에 검은색 안료를 수직 방향으로 그린 단순화된 나무들의 형상은 물감과 안료가 굳기 전에 실행하는 작가의 수평적인 붓질을 통해서 이내 해체된다. 기(氣)를 모은 듯 빠른 속도로 실행되는 이러한 붓질은 나무를 배경 속으로 잠입시키고 배경을 나무의 내부로 침투시킨다. 아울러 그것은 개별체로서의 나무(木)를 보편자의 숲(林, 森)의 양상으로 효과적으로 발현하게 만든다. 각기 떨어져 있던 나무들이 마른 붓질을 통해서 서로의 속살을 나눠주고 받음으로써 '숲'이라는 군집으로서의 자연의 정체성을 비로소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선명하게 '보이는' 나무를 해체하고 흐릿하게 만들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자, 거꾸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유추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숲'이지만 인간 세계에 대한 거시적인 하나의 메타포(métaphor)이기도 한 것이다.
나아가, 2000년 프랑스에서의 5회 개인전에서부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양자를 매개하는 공간으로 개입시켰던 화면 분할의 쉐이프드 캔버스(Shapéd Canvas)는, 최근작에서 하단의 '여백 아닌 여백'의 공간으로 구체화되면서 '충만함'과 '비어 있음'의 미학을 동시에 선보인다. 하얀 물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이 역설의 공간은 '존재/부재'가 맞붙은 채, 이원적 대립 요소를 이을 뿐만 아니라 단절된 이미지와 언어들을 재생하고 복원시킨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사이 세계'를 완성하는 침묵의 공간이자, 작가와 관객을 만나게 하는 '대화의 창'으로 훌륭히 기능한다. ● 이렇듯 그의 작품은 '삶/죽음', '작품/관객' '이미지/텍스트' 사이를 매개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지속적으로 모색한다. '인간/자연'의 소통은 초기작의 표현주의적 화풍으로부터 오늘날의 '숲' 시리즈라는 정제(精製)된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있어 동일한 미학적 관심사였다고 할 것이다. 자신 안에 육화(incarnation)된 자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인간/자연'의 소통과 상호작용을 천착해 나가는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인간은 더 이상 주체와 객체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와 또 다른 주체의 만남으로 회복된다. 그의 작품에 있어, 주체와 객체의 벽을 허물고 양자를 주체 간의 만남으로 탐구하는 그의 '사이 세계'에 대한 미학적 인식과 조형 언어는 그의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전한 미덕이다. 그것은 마치 한 편의 시이자. 하나의 시적 메타포이다.
작가 최용대는 오늘도 '회색의 숲'으로부터 발원하는 '들리지 않는 메시지'와 '보이지 않는 무엇'을 모색하면서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이야기하는 그의 '여백 아닌 여백'은 이러한 수평적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을 위해 마련해 둔 넉넉한 공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곳에서 그는 오늘도 '쉬이 보이지 않는 의미의 그물망'을 시를 짓는 마음으로 직조하고 있다. 가슴 울리는 시적 메타포와 느릿느릿한 명상의 걸음으로 말이다. ■ 김성호
Vol.20140922h | 최용대展 / CHOIYONGDAE / 崔龍大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