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91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유나이티드 갤러리 UNITED GALLERY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02길 41(역삼동 616-12번지) Tel. +82.2.539.0692 www.unitedgallery.co.kr
어둠을 향한 멈춤이 아닌, 생(生)을 위한 춤 ● 우리는 매일 전쟁을 한다. 나 자신과 싸우고, 타인과, 어떤 사건들과, 오늘을 이루고 있는 이 세계와 싸운다. 어딘가로 도망치듯 망각을 위해 인간과 도시는 각종 소비재들을 산화시킨다. 사람들은 낮을 잊기 위해 밤을 기다리고, 밤을 잊기 위해 새벽을 기다린다. 그런 시간들, 이쪽의 세계에서 저쪽의 세계로 넘어가며 사라지는, 커다란 화염처럼 어떠한 증거도 남김없이 나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시간을, 우리는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세계를 하나의 나무토막처럼 불길 속에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 그 내면의 혼돈과 혼란의 정점에서 실 날 같은 희망을 바보처럼 꿈꾸기도 한다.
황성근 작가가 말하는 이러한 희망이란 '파괴'에서부터 출발한다. 새로운 세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완전하고도 완벽한 몰살, 그 치열한 전쟁 속에서 발생하는 '파괴의 미학'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는 섬멸과 창조, 해체와 응집, 전쟁과 평화, 정체와 발산, 함구와 소통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파괴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에 대한 '변화를 위한 장치'를 심어- 폭탄으로 형상화했다. ● 폭탄은 독단적이며 권위적인 권력을 말하는 파시즘과 연결되어 자신과 대립되는 것을 모두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무거운 정치적 성향이나 폭력적인 세계관을 넘어서 '파괴를 통한 새 출발'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는 폭탄이 지나간 자리 위의 '무형(無形) 속에서 피어나는 유형(有形)의 세계', 꽃으로 발현되는 사소하지만 가치 있고, 작지만 강한 인간의 신념과 신의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강력한 의지만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지켜낸다고 생각한다.
황성근 작가의 「plawar」 (plastic + flower + war) 작품 시리즈 속의 꽃을 들여다보면 꽃은 완성된 형태로서의 꽃이 아닌, 어딘가 해체되어있고 흩어진 형태로서의 꽃이다. 꽃의 조각들은 저마다의 기억과 시간을 안고 그 형태가 조금씩 왜곡되고 생략되어 있기도 하지만, 한걸음 멀리 떨어져서 보면 다시 조화를 이루며 본연의 모습보다 더 잘 어우러진다. 이것은 우리의 상처입고 파괴되었던 자아와 조각난 인생의 시간들이 각각의 다른 모습과 얼굴로 존재하지만, 결국 희망이란 이름 속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그는 이렇게 세상을 향한 희망과 아름다움, 절망과 몰락 속에서 욕망되는 긍정의 코드를 꽃으로 나타냈다. '폭탄 속의 꽃'은 전쟁 속의 평화처럼 서로의 본질이 아이러니한 충돌을 일으키지만, 그 본질과 본질이 서로를 향해 뒤섞이고 의미와 의미가 충돌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낸다. 고민 없이는 진리를 찾을 수 없고, 고통 없이는 안락을 알 수 없듯이, 폭탄과 꽃은 이런 반증의 과정을 통해 '세계의 재창조'를 이뤄내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폭탄 위에 관객에게 건네고 싶은 짧은 문구들을 적어 꿈에 대해, 오늘의 인생에 대해, 변화라는 힘과 가능성에 대해, 때로는 모험과 변혁을 일으켜야하는 삶의 소중함에 대해 직설적으로 또는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어떤 이에게는 웃음이 되기도 하고 한숨이 되기도 하고 고민이 되기도 하고 해답이 되기도 할 것이다. 모두가 다르게 그것과 소통하지만, 관객의 시선과 생각이 그곳에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메시지는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지만,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어딘가를 향해 발을 딛는다면, 그의 움직임은 춤이 되고 희망이 되고 세상 저 너머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침묵을 깨고 이루어진 발화의 짧고 강렬한 순간처럼, 작가는 세상을 향해 꽃을 품은 폭탄을 터뜨리는 것이다. ● 그것은 그것 자체로 완결되어 있지만, 열려있거나 혹은 열릴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세계를 향한 움직임이다. 우리 모두가 읽어보고 싶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페이지 속의 뒷이야기처럼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삶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몇 번이고 파괴되고 무너지면서도 희망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황폐하고 망망대해 같은 삶의 경계선 위에서 황성근 작가는 꽃 한 송이를 들고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이제껏 누군가 수없이 믿어오고 속아왔던 '희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주기 위해서. 아니면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도 어쩌면 내일은 안녕, 할 거라고 말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 임경희
Vol.20140919c | 황성근展 / HWANGSUNGKEUN / 黃成根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