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박지나_윤성지_이문호_이병호 이해민선_정수용_킴후
관람시간 / 09:00am~09:00pm
북유럽문화원 NORDIC CULTURAL INSTITUTE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로 992 (문호리 623번지) 테라로사 2층 Tel. +82.2.591.7787 blog.naver.com/nordicseoul
공존의 방법 ● 전시 『주문하시겠습니까』는 7명의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삶의 조건에 대해 사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북유럽문화원이라는 전시공간을 고려해서, 인간의 삶을 둘러싼 한계와 그것을 조율해나가는 삶의 방식들에 다가갔다. 점차 확산되어 가는 북유럽 열풍은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테고, 이는 삶의 가치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되묻게 한다. 신기루와 같은 북유럽에 대한 신드롬은 단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 개인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처럼 전지구적인 공감이 개인의 삶을 자극하는 요즘, 국가와 개인,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 개인과 개인이 연대하는 바람직한 공존의 방법은 무엇인가. 이 전시는 서로 다른 조건에 둘러싸여 있는 개인들의 삶을 향해 질문한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평소 박지나와 이해민선은 일상에 대한 오랜 관찰을 통해 작업을 풀어나갔던 것처럼 이 질문에 대한 해답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작품은 각자가 줄곧 작업하는 과정에서 사유해왔던 '상호작용', 즉 '공존'을 위해 필요한 관계적인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박지나의 「둘이 들고 가는 가방」(2014)은 완전한 힘의 배분을 이루기 위해 각자가 취해야 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둘이 짐을 들고 가려면 각자가 갖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들-보통 신체적,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인- 때문에 힘의 분배가 똑같을 수는 없다. 오로지 완전한 수평을 위해서라면, 결코 개인의 조건이 문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박지나는 둘이 가방을 옮길 수 있는 완벽한 균형을 상상하며 이상적인 장치를 고안해냈지만, 곧 개인의 조건들은 평행을 유지해주는 막대 바깥으로 감춰져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한편 이해민선의 「직립식물(plant erectus)」(2011-2013) 연작을 보면, 세상의 거대한 풍경 속에 놓인 삶의 상이한 조건들이 보인다. 그의 캔버스에서는, 죽은 나무막대로 살아있는 식물에 묶어 그것을 자라나게 지탱해주고, 각목이나 꺾인 나뭇가지로 지지대를 둘러 약한 식물을 보호한다. 게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하며 위태롭게 직립하고 있는 자연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완벽한 직립, 즉 완벽한 균형이라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것인지 다시 되묻게 한다. 그것이 바로 갈등 없는 이상적인 공존을 꿈꾸는 우리 삶의 피치 못할 역설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한 부분을 발췌해서 번역한 텍스트를 프린트한 윤성지의 「lies of the night」(2014)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보여준다. 윤성지는 이탈리아 소설가 제수알도 부팔리노(Gesualdo Bufallno)의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그 번역본을 기초로 다시 국문 번역한 소설 『그날 밤의 거짓말(lies of the night)』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 환경의 조건들을 의심스럽게 지켜봤다. 이를 테면 언어, 교육, 문화 등 각기 다른 사회 환경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텍스트는 어떻게 번역되고 소통될 수 있으며, 인간의 정신 활동은 그 메커니즘 속에서 얼마큼 자유로울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이병호는 실험용 생쥐를 박제했다. 작품 제목이 「릴레이(relay)」(2014)인 만큼, 실제로 박제된 생쥐는 인간처럼 서서 달리기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향방 없이 달려야 하는 이 장면은, 누군가를 향해 바통을 들고 끝없이 계속 달려야하는 경주라는 데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한계와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가 실험용 쥐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삶의 조건과 한계를 실험해보려는 작가의 속내가 있었던 건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문호의 사진 「RS」(2014)와 「UT」(2014)는 모호한 공간에 놓인 하나의 오브제를 통해 인간의 삶 본연의 철학적인 질문을 제시하고 있다. 「RS」에서는 주변의 공간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건축물의 한 부분만을 근접해서 보여주고 있고, 「UT」에서는 아예 어둠 속에 주변 공간을 숨겨버렸다. 특히 「RS」에서 보여주고 있는 공간은, 언뜻 초록색 바닥을 가진 건물의 옥상인가 싶다가도 빨간 벽을 가진 건물의 외벽 같기도 한 모호한데, 그 착시적인 공간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닮은 사다리는 의외로 각각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수용은 아예 물리적으로 상이한 공간을 결합시켰다. 철거하는 동네 한의원에서 떼어 온 창틀에다 자신의 집을 새로 보수공사를 하면서 사용하고 남은 건축자재들을 끼워 넣었다. 그가 느끼기에, 삶의 제한적 조건들은 늘 새로운 것으로 보완되고 더 완벽한 상황을 위해 불완전함은 일상에서 거부되기 십상이다. 정수용은 삶의 가치에 대한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 위로 자신을 닮은 실존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욕망과 실존의 문제 앞에서 늘 자신 없어 하는 우리의 태도와 선택처럼, 정수용은 삶의 조건 앞에 놓인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킴후는 듣기에 다소 유머러스해 보이는 제목의 작업 「과대망상 꽈배기」(2008)로 제법 어려운 개인 혹은 사물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종이 위에 잉크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나가면서 결국에는 특정한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는 그의 작업은 대상의 존재 방식을 사유케 한다. 그의 말대로, 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 무엇일 필요도 없는 것, 무언가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 무엇도 아닌 것"을 그린다. 그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통해 오히려 그 본래의 의미나 목적에서 해방될 수 있고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닌' 그 대상의 정체성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전시에 참여한 7명의 작가는 모두 "주문하시겠습니까"라는 삶의 요구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답했다. 삶은 숱한 역설과 불완전한 욕망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으므로 결국 공존을 위해 넌센스 같은 질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 안소연
Vol.20140910g | 주문하시겠습니까-북유럽문화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