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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진행 / 김신애_이수빈 교육 / 유정민_한다래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_10:1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인천신세계갤러리 INCHEON SHINSEGAE GALLERY 인천시 남구 관교동 15번지 신세계백화점 5층 Tel. +82.32.430.1158 shinsegae.com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것_왜 그런지 모르지만 과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과, 거의 과일의 대명사처럼 들리는 그 흔해빠진 대상이 30개가 넘는 캔버스 가득히 펼쳐져 있다. 갤러리 안팎을 막론하고 여기에도 사과 저기에도 사과...공황상태를 야기할 법한 사과의 무리는 반복 속에 차이를 내장한 채 그렇게 관객을 둘러싼다. 사과들은 정물화의 전형적 수법이 아니라, 얼마 전 열린 전시에 붙은 '지근풍경(close landscape)'이라는 부제가 알려주듯, 공기원근법에 둘러싸인 풍경처럼 아련하다. 사과는 캔버스 틀에 약간 외곽선이 잘려져 있을 만큼 가까이 당겨져 있으면서도 멀리 있어 보인다. 그의 작품은 한국 미술계에 친숙한 또 다른 작품 스타일이 겨냥하듯이, 관객이 집어 올려 한입 베어 물고 싶은 것, 즉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극사실주의적 환영과는 거리가 있다. 고진한의 작품 속 사과는 화면 가득히 포착되어 있지만 베일처럼 드리워진 두터운 공기층 뒤편에 놓여있는 가상으로서의 위상을 숨기지 않는다.
사과는 신비한 아우라를 품고 있지만, 베일 뒤에 숨겨진 비밀이 대단한 것 같지 않다. 굳이 말한다면 공허하고 투명한 비밀이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구석구석 차곡차곡 쟁여지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텅 비어있음은 빈곤이나 박탈이 아니라, 어떤 여지 특히 변화에 대한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화면 가득한 대상은 명백한 드러남과 동시에 은폐가 있다. 캔버스라는 사각 공간 속의 거대한 사과는 단순함과 불가해함을 공존하게 한다. 사과라는 이 중성적 대상은 캔버스 네 면을 통해 약간씩 잘려있다. 그것은 대상이 한정될 수 없음을 알려주며, 한정되지 않으므로 익숙하게 알려진 것도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잘린 면은 관객의 관심을 바깥으로 환기시킨다. 그것은 그림으로만 귀결될 수 없는 바깥을 암시한다. 현실의 사과를 400배 가량 확대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오래된 기억이나 해상도 떨어지는 희미한 사진처럼, 일정한 시공간적 간격을 유지한다.(중략)
고진한이 이 전시에서 하고 싶은 회화에 대한 이야기 중의 하나는 현대예술의 도전 한 가운데 있었던 표상에 대한 거부이다. 대상과 대상이 지시하는 의미로부터 벗어난 그의 회화, 그 뿌옇게 변한 사물의 외곽선과 선에 갇혀지지 않는 색들은 150x150cm를 비롯한, 여러 크기의 바둑판같이 정사각형으로 한정된 공간 속에 불규칙적으로 분포하면서, 무한한 게임의 수를 던진다. 표상의 거부 속에서 진정한 회화의 공간이 탄생할 수 있다. 모리스 블랑쇼는 「문학의 공간」에서, '우리는 사물을 표상화하면서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며, 그것을 하나의 객체로, 객관적인 현실로 만들려고 하며, 그것을 공간의 순수성에서 끄집어내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세계 속에 위치시키고자 한다'고 비판한다. 무심한 선택인 듯 하면서도 홀린 듯이 집착하는 고진한의 대상은 잡다한 인간적 관심사와 연관된 모방은 아니다. 그것은 재현이 아니라, 순수하게 감각적인 것, 순수하게 가시적인 것의 제시이다. 이미지 자체가 언어처럼 대상의 부재를 토대로 해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인 듯함이다. 이러한 '인듯함은 의미를 무한히 풍부한 것이 되게 하고, 이러한 무한한 의미를 전개될 필요가 없는 것, 즉각적인 것이 되게'(블랑쇼) 한다. 이 텅빈 것 속에서 예술적 언어는 의미의 담지자라는 한정된 기능을 잃고, 유희 속에서 무한히 증식된다. 자크 데리다는 「글쓰기와 차이」에서 블랑쇼가 예술적 영감의 가능성이라고 상기시키는 것은 무와 순수한 부재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의미와 진리, 노동과 기술을 넘어서 침묵으로 귀결된다. 데리다는 침묵이라는 단어가 '모든 단어들 중에서 가장 퇴폐적인 단어이거나 가장 시적인 단어'라 할 때, 우리는 '미끄러져 가게 하는 단어들과 대상들을 발견해야 한다'는 바타유의 말을 인용한다.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사과는 명료한 의미로 귀결될 시선의 주파 대신에, 두터운 공기층으로 더욱 매끄러워 보이는 표면을 침묵 속에서 탐사하게 한다. 고정된 관념을 능동적으로 망각하게 하는 이러한 매끄러운 활주, 또는 계속되는 미끄러짐은 경쾌하면서도 위험하다 ■ 이선영
Vol.20140822g | 고진한展 / KOJINHAN / 高鎭漢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