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809_토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보경_김재민이_박혜민 신혜정_임현희_정재연_조나경
오프닝 퍼포먼스 / 2014_0809_토요일_05:30pm
기획 / 신혜정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전시기간 중 주말에만 오픈합니다.
our MONSTER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 54-20번지 2층 www.facebook.com/ourMONSTER
중국 남동부 어느 시골 마을 선술집에 모여 웃고 떠들던 마을 사람들에게 어느 거지가 옆 동네 폭동에 대한 전단지를 가져왔다. 잠시 유심히 읽어보던 사제를 빼고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다. 곧 실없는 농담이 피식피식 새나오고 전단지는 깔깔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휴지조각처럼 뒹굴어 다닌다. 본문에 나오는 이 장면은 카프카 자신의 소설에 대한 명백한 조소이다. '내가 아무리 권력의 허망한 실체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정확히 써낸다 해도 소용없을걸. 너희들은 잠시 들여다보다가 곧 웃어 제낄테니 말이지.'
'지도층의 지시를 이해하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하되, 어느 정도까지만 노력하다 멈추라'는 금언에 따라 사람들은 혁명이라든지 동시대의 전쟁과는 별 상관없이 살아간다. 그 근시안적 성실함으로 바벨탑이 이루지 못한 업적을 만리장성 축조자들은 완성할 수 있었다. 결국 그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라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모름지기 백성이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황제의 명에 따라 만리장성을 건축하기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는 존재니까. 진실과 별 상관없이 살아가려는 소시민적 무관심이 실은 거대한 제국을 떠받치는 근원적 힘이었다. 카프카의 세계관은 '하급관리'라는 화자의 신분에서 드러난다. 만리장성 축조에 대한 보고자로서 그는 뛰어난 관찰력과 역사적 성찰을 보여주지만 어지럽게 힘이 얽혀있는 고급관료의 세계에 속한 것도 아니요, 만사태평하게 주어진 운명을 살아내는 기층도 아니며 그렇다고 회의와 결기로 가득한 야인도 아니다. 그는 그저 힘없고 평범한 봉급쟁이 말단 공무원에 불과한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말에서, 알기는 다 알겠는데 이도저도 못(안)하는 그의 신세가 도드라진다. ("이를 아주 자세히 비난한다고 해서 양심을 자극하지는 못할 테고 오히려 우리 발밑을 흔들리게 하는 나쁜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문제에 관한 고찰을 이쯤해서 그만 두고자 한다.(230p)")
체코에서 태어난 유대계 독일인. 아니, 독일계 유대인? 주거지, 혈연, 문화적 고국이 맞물려 모순되며 늘 고립과 소외를 살아야 했던 그의 정체성은 늘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래서인지 카프카는 엉거주춤하다. 자기 작품에서만큼은 눕던지 서던지 앉던지 암튼 자기 편안한 위치를 잡고 전능한 군주처럼 행세하는 다른 작가들과 무척 다르다. 난처한 표정으로 '나도 영문을 모르겠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며 읍소하는 투다. 그런데 그의 매력은 그 엉거주춤한 순간, 지루하도록 익숙한 세계를 생경하게 만들어버리는 데에 있다. 머릿속의 나와 실재의 내가 얼마나 어긋나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세상을 오해하고 있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서지도 앉지도 않은 자세로 세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유령처럼 통과하게 만들어버린다.
기획전시『만리장성 축조에 관한 보고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카프카의 짧은 소설을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이 글을 받아들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창작자로써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신혜정의 오픈 퍼포먼스는 인상적이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퍼포머와 자원하는 관람객이 번갈아가며 벽돌을 쌓아올린다. 퍼포머는 실제상황을 알 수 없고 관람객은 벽을 어떻게 쌓겠다는 일관된 계획이 없다. 우리의 국가는 힘을 합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알 수는 있는 걸까? 누군가 알고는 있는 걸까? 김보경의 꼴라주 작업에서 우리는 숨어있는 삶의 덫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맨 정신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엉망진창의 삶에 대해 '기만'의 힘을 빌려 안전하게 비껴가는 법이다. 김재민이는 현수막에 무덥고 습한 여름 산, 자기 허물 밖의 뱀처럼 기름하게 뒤척이는 건축구상을 사진 이미지와 페인팅으로 옮겼고 이를 통해 고립감, 무의미함 등을 표현하려 하였다. 박혜민은 미래를 향하는 만리장성 축조 홍보영상을 만들었다. 마치 허구의 장소에 대한 과장된 선전처럼 말이다. 한편 임현희는 만리장성 축조의 순간을 드로잉으로 담아 사탕 뽑는 기계에 넣어 둘 예정인데, 인생, 그것은 어느 장벽으로 갈지 모르는 랜덤이기 때문이 아닐까? 정재연은 우리를 홀려낸 어제의 기원을 캐묻듯 집요하게 기둥의 페인트를 벗겨낸다. 벗겨내고 또 벗겨내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씻음 받고자 하는 듯 말이다. 조나경은 허술하고 작은 종이장벽을 통해 현재 우리사회속의 만리장성을 떠올리게 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뜨거운 8월, 젊은 작가들이 기획전시의 창작테마로 하필 이 작품을 골라 든 것은 아마도 이 시대에 국가와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것이 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재차 숙고해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정해진 답은 없다. 인간의 고립은 몇 마디 표현으로 쉽사리 뚫리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이런 시국에 작가라는 천형을 짊어진 이들이 시대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고발하고 싶은 건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평생 벌레마냥 무기력에 묶여 살았던 카프카도 '나 이렇게 산다'고 끝없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지 않은가. ■ 김신애
Vol.20140809b | 만리장성 축조에 관한 보고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