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가지다

영은미술관은 8월 2일부터 8월 31일까지 영은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유혜숙 개인전_『시간을 가지다』 를 개최한다. 그 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오던 작가의 국내 3번째 개인전이며, 흑연을 비롯한 검정색 질료들을 작가의 방식으로 깊숙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대표작들을 선보인다.

유혜숙_untitled_195×390cm_2008~9

작가 유혜숙의 작업 과정과 작품, 그 속에 내재된 의미와 축적된 질료들은 모두 '시간' 으로부터 기인한다. 흑연으로부터 시작된 초기 작업부터 현재까지도 줄곧 그의 작업들은 충분한 물리적 시 간을 요한다. 그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가져다 준 그 대상이 다른 것으로 스스로 전이될 때까지 작가는 그리기를 반복하고 그러한 과정 가운데 작품 속에 담긴 주제와 담론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이끌림을 받는 사물이나 생각이 있을 때 작가는 온전히 느낌 그대로 순발력 있게 시 작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인내와 지구력 그리고 시간을 요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많은 이들이 작가 유혜숙을 일명 '머리카락 작가' 로 기억하고 있다. 가로*세로 2m*3m에 이르는 거대한 머리카락 덩어리를 마주하면 지독히 세밀한 선들과 섬세한 표현에 압도되며, 과연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소요 시간마저 궁금해진다. '머리카락'이 상징하는 일반적 의미로는, '성(性)적인것, 성(聖)스러운 것, 불결한 것, 식물적 혹은 동물적 의미의 일부분' 을 떠올릴 수 있는데, 작가에 게 '머리카락'은 위에 나열된 의미보다는, 드로잉 행위 과정 속에 표현의 응집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또는 검은빛 넓은 화면 속에 무수히 찍힌 '점'들은 우주 속 무한히 펼쳐진 은하수를 연상시킨다. 2010년 이후, 특정 형태나 이미지에 대한 작업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작가는 커다란 테이블 위에 지류를 깔고 연필로 무작정 찍기 시작하였다. 이 역시 상상 이상의 지구력을 요하는 예술 행위이며, 무의식을 자각하지 못한 채 시간 속에 내재되어 있던 자아(自我)가 자생적으로 표출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행위 과정을 통해 의도치 않은 '점'들의 강렬한 힘과 다양한 독백을 느낄 수 있고 서로 마주보는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이미지가 생성됨을 바라볼 수 있다.

유혜숙_ untitled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76.2×50.8cm_2013

유혜숙_ knock, knock, knock_사운드_00:14:12_2013

"나는, 그저 그리는 순간들에 매료되었고 그리고 있는 순간인 현재의 행위들이 화면을 채워져 나갔으며 그것들은 각자의 언어로 결합하듯 스스로 조합되어 전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었다. 나에겐, 대상도 결과도 아닌, 현재 내가 지각하고 반응하여 행위에 이르는 시간들이 작업의 목적이 아닐까.. 그리는 행위와 그 시간, 더불어 그것이 다다른 낯선 곳.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만나는 또 다른 호기심과 질문. 그리고 또다시 그리는 행위. 그리고 현존하는 시간. 문제는 시간이다." (유혜숙)

유혜숙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 technic mixte_165×240cm_2004

유혜숙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 연필_195×130cm_2003

유혜숙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 연필_300×200cm_2003

연필에서 은하까지 '시간'에 의해 생성된 표현의 결정체와 무한 공간들이 보는 이들의 또 다른 시간의 회상을 유도하며 우리 삶의 아련한 단상들을 연상시킬 것이다. ■ 영은미술관

Vol.20140804e | 유혜숙展 / YOOHYESOOK / 柳惠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