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회민 먹그림

류회민展 / RYUHOIMIN / 柳會玟 / painting   2014_0801 ▶ 2014_0830

류회민_8월의 강_한지에 먹, 과슈_144×444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_12:00pm~07:00pm

미광화랑 MIKWANG GALLERY 부산시 수영구 광남로 172번길 2(민락동 701-3번지) Tel. +82.51.758.2247 www.mkart.co.kr

미술동네가 크게 관심 가져주지 않는 그림, 이른바 한국화를 그리는 류회민. 지필묵을 붙잡고 오늘도 일상처럼 산에 오른다. 흔히 바다의 도시로 알려진 부산은 사실 산의 도시다. 도시 권역 내에 이처럼 많은 산을 품은 도시는 없다. 여기저기 터널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꼬불꼬불 길의 모양도 재미나다. 감천동 태극길을 가보라.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골목과 사람, 마을표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잘난 해운대 신도시도 예외일 수 없다. '산복도로', 흔히 '산복판에 난 도로'라고 부르는 말처럼 이처럼 부산에는 독특한 지형과 명칭 등이 여럿 남아 있다. 산꼭대기마다 툭툭 올려놓은 송신탑과 대형 전신주, 목욕탕 마다 남아 있는 높이 솟은 굴뚝은 낯선 부산도시이방인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부산이 늘 부산함은 이 때문일까.

류회민_통영_한지에 먹_142×447cm_2013
류회민_빈배_한지에 먹_145×143cm_2014

부산의 조형적 특성은, 흔히 바다의 수평선으로부터 떠올리는 수평개념이 아닌, 하늘 향해 솟은 빳빳한 수직개념이 지배적인 조형모티프로 작동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도 지치지 않고 올라가는 해운대 신도시의 주상복합 고층빌딩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들 모두를 류회민은 묵묵히 담고 있다. 「산보다 높아지는 집을 보면 슬퍼진다」(2007)라는 작품명제는 류회민이 변화하는 부산에 대해 가지는 소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단단한 부산. 산을 밟으며 만나는 유연한 부산. 그는 산과 바위를 연성의 물그림이 아닌 칼칼한 먹그림으로, 제법 단단한 바위와 질감으로 올린다. 약하디약한 한지 위에 카메라의 경조(硬調)술과도 같은 강력한 흑백대비의 시각적 질감으로 떠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류회민의 넉넉한 균형감각이 빛나고 있음이다. 허심포산(虛心抱山). 그의 작업과 일상을 일컫는 적절한 말일게다. (로컬 리뷰2013「부산發」 전시서문 중에서-) ■ 박천남

류회민_산이 아프다_한지에 먹, 콘테_90×73cm_2013
류회민_계곡_한지에 먹_73×90cm_2014

작품 「통영」(종이에 먹_142×447Cm_2013)은 2013년 초에 제작하여 성곡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Local Review 2013 부산發(2013, 3, 1~4, 28)"에 출품되었던 작품들 중 한 점이다. 작품은 순지에 먹으로만 그린 대작으로서 142×149Cm 크기의 화판 세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작품의 크기는 세로 142cm 가로 447cm이다. ● 「통영」은 통영 미륵산 정상에서 통영시가지 쪽을 부감시로 내려다보고 그린 먹그림이다. 바다와 맞닿아있는 통영시의 내만과 통영시가지 뒤를 가로로 길게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세들을 작품의 주된 요소로 포치하여 그렸다. 시가지는 크기와 높낮이가 제각각인 현대적 건축물들이 바다와 닿을 듯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미륵산 하단부와 통영시 사이에는 폭이 좁게 표현된 내만 바다가 조형적 필요에 의해 흰 여백으로 비워져 있으며 작은 점으로 보이는 배들이 물위 곳곳에 떠있을 뿐이다. 원경에는 멀리 고성 쪽의 산들이 아련히 드러나 보이며 오른쪽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 한지의 한 종류인 순지 위에 오로지 먹을 주 매체로 해서 먹색만으로 동양회화의 일루젼 효과를 얻기 위해 먹색의 유동적 흐름에 역점을 두고 작업하였다. 먹이라는 유일한 재료로서 대상을 모노톤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먹색의 변화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화면의 구성을 보면 실재하는 것과 달리 시각적 안정감을 위해 좌중간에 삼각뿔 모양으로 솟아있는 산의 봉우리와 거기에서 좌우로 뻗어 내려오는 공제선의 미려한 굴곡에 큰 의미를 두었다. 통영시가지와 맞닿아 그 바로 뒤를 수평적으로 감싸고 있는 중간의 뒷산이 실재의 풍경에서는 가장 가까이 보이는 근경이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성의 어느 산으로 추정되는 삼각뿔 모양으로 솟아있는 산을 주산으로 잡은 것이다.

류회민_개울_한지에 먹_73×90cm_2014

화면에서 바다와 함께 비워진 하늘의 공간 배치도 계산된 의도인데, 그 빈 하늘은 바로 주산의 공제선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설정해서 적당한 공간의 크기로 조화를 이루게 하였고, 그렇게 구성된 하늘공간으로 인해 주산의 포치도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구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공간 아래 주산으로부터 흘러내려 바다와 만나는 부둣가까지 먹색의 강약을 조절해 가면서 표현하여 전체적 화면구성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좌에서 우로 흐르는 먹색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화면의 하단부인 가장 옅은 부둣가와 가로로 좁게 펼쳐진 바다 앞은 미륵산 최하단 부를 좁지만 강하게 표현해서 통영시가지를 포함한 주산에 시선을 몰입할 수 있게 유도하였다. ● 수직과 수평으로 빼곡히 박혀있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 등의 현대적 건축물은 자연의 경관과 그 색감이나 조형적 특성 등에 있어서 괴리감을 보여 많은 지적을 받기도 한다. 우리니라 대 도시 주변의 산들에서 보이는 實在의 상황들이다. 산을 주제로 한 실경작업에서 이런 현대적 건축 구조물들은 작품 구성에 있어서 난감하거나 불필요할 때가 많고, 불가피하게 그려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는 자연에 대한 비판적 요소로 느낌이 전달될 수밖에 없다. 산과 산 사이에 거대하게 치 솟아오른 건축물을 보면서 자연과 환경에 해를 끼치고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현대문명의 진화된 이기를 읽게 되는 것이다. 작품 「통영」에서도 이미 實在 하는 것들의 건축물들이 등장하지만 이것은 자연과의 조화로서의 의미보다는 날로 훼손되어 가는 자연에 대한 경각심이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된 이 시대대의 직접적인 현실 반영이다. ● 사생을 통한 실경작업으로서 실재의 재현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회화로서의 감성을 소홀히 한, 마치 지역 지도와 같은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강조된 기록화나 다름없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해발 400여 M 조금 넘는 동네 앞산을 보아 온 지도 수 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그 산에 대하여 잘 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그 산을 주제 삼아 많은 그림을 그려왔지만 그림의 소재로서 무궁무진한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단순히 지역적 특색을 강조하는 기록화의 의미에 충실하였다면 그 산을 그리는 것은 한 두 작품을 완성한 후 그만 접고 다른 명산대천을 찾아 기록의 사생 길을 떠났을 것이다. 이렇게 늘 바라보는 산도 회화적 시각으로 본다면 시간, 계절, 공간이나 위치에 따라 수많은 그림으로서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류회민_길_한지에 먹_110×74cm_2013

작품 「통영」에서도 시가지와 미륵도를 연결하여주는 다리 등, 實在의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될 수 있는 한 회화적 감성에 자연스레 녹아들도록 지나침 없이 표현하고자 했다. 원래의 공간에 실재로 존재하는 사물, 즉 산등은 그 자체로서도 미적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실재하는 것이 화가에 의해 평면의 화면 안에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 방법인 점, 선, 면으로 옮겨졌을 때의 미적 의미는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이미 실재를 그릴 때 수반된 평면 위의 점, 선, 면은 그 자체로서의 새로운 기호로서의 존재감을 성립하고 종이 위에 그려진 실재의 풍경들은 감상의 감정도 본래의 것을 볼 때와 달리 새로이 전이될 것이다. 단순히 실재를 닮게만 그리고자 한다면 실재의 색, 모양, 크기 등이 실재하는 것들과 매우 가깝게 그리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그림들에서 당연히 개성은 찾기 어렵고 한 작가가 그린 듯 비슷한 결과물의 작품만이 남겨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를 재현하는 작업과정에서의 작가의 의도와 표현방식은 매우 중요한 회화적 가치를 결정한다고 본다. 그림이 독창적이거나 작가로서의 실험적 정신이 발휘되었고, 그것이 얼마만큼의 감동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 줄기차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작가한테 있어서 제일의 과제일 것이다. ● 나 역시 이러한 의식을 저변에 깔고 실재의 통영을 보았으며 그 실재를 화면에 그리면서는 또 다른 감동의 느낌을 전해주는 풍경으로 다가오게 그리고자 애를 썼다. 작품 「통영」에서의 먹색 들은 화선지의 특성을 강조한 보편적 방법인 침투와 번짐 등 발묵의 효과는 거의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물기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메마른 건필 위주로 작업해서 작은 실험성을 시도하였다. 이것은 거의 焦墨의 느낌을 넘어 마치 목탄 가루나 그을음을 발라 놓은 듯하여 기존의 수묵화에서 보던 것과 달리 매우 강렬하다. 먹은 다른 유화 등의 안료와 달라서 그 질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매끈한 평면성을 벗어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종이에 깊숙이 스며드는 造墨의 방법만으로는 거친 질감의 느낌을 전달하여 주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늘 경험하여왔다. 종이 위를 스치듯 그린 메마른 필선과 묵점 등은 운필의 속도감과 더해서 그려지고 칠해진다. 그러한 메마른 건필의 속도감은 거친 묵흔을 남겨주게 된다. 즉 중묵 담묵 등의 효과를 얻기 위해 물과의 적절한 배합을 이용하여 먹색을 조절하는 게 보편화된 수묵의 방법이라면 나의 작품들은 오로지 짙게 벼루에 갈아 논 끈적끈적한 상태의 농묵으로서 옅은 먹과 짙은 먹색까지 속도감이 수반된 운필의 가감을 반복적으로 하여가면서 화면의 입체감과 원근 등을 표현하게 된다. 그 결과 다른 매체를 이용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두터운 질감을 만들 수는 없었으나 거친 표현의 느낌만이라도 전달해 주는 시각적 착시효과는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었다.

류회민_개울_한지에 먹_53×46cm_2014

지금의 미술은 자본주의적 논리와 결부되어 흘러가고 있으며 갤러리나 화랑 등에서 대중적으로 인기 없는 판화, 한국화 등의 장르는 외면받거나 점점 설자리도 위태롭다. 미술에서 정신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미(美)는 손재주(術)에 밀려 정신성이 앞서야 할 미술이 기능적인 면만 우선시 강조되고 미(美)는 소홀히 다루게 되어 가슴으로 읽어야 할 미술의 그 깊은 의미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국화, 특히 수묵화의 오늘날의 위상은 더욱더 처참하다. 한국화의 작가 수는 물론 이미 대학에서 한국화과가 폐과 되었거나 그렇게 서서히 되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미 한국화(동양화) 전공 작가들 중에는 전통 재료를 버리고 서양화의 재료를 이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이가 부지기수이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고 본다면 예술가로서 재료의 선택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수천 년 역사의 전통을 갖고 내려온 전통 재료와 미적 정서의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그 맥이 끊길지도 모를 거라는 안타까움이 없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사회적 흐름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의 예술적 창작에 전념하는 작가들이 그래도 여전히 곳곳에서 같이 호흡한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고집스러운 정체성에 발목 잡혀서 바둥바둥 대고 있다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아트페어나 옥션을 통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그러건 말건 나는 우리나라의 산을 찾아올라 사생하고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 류회민

Vol.20140731b | 류회민展 / RYUHOIMIN / 柳會玟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