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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716_수요일_06:00pm
주관,기획 / 사진미디어공간 포톤 후원 / 파낙스 그룹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예술지구 P ART DISTRICT P 부산시 금정구 개좌로 162(회동동 157-6번지) ADP 1,2관 Tel. 070.4322.3113 www.artdp.org
고독한 수행자의 실재 ● 조습은 야만적 현실을 특유의 유머와 야유가 뒤섞인 화면으로 표현해온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없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데, 이처럼 강한 시각적 잔향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고상함과 진지함, 그리고 난해함을 한 번에 전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대한 야유를 유치함과 천박함, 그리고 냉소와 모독의 극단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런 성향의 작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습의 위상은 매우 특별하다. 아래 작업 노트는 어떤 글보다도 가장 정확하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나의 작업은 후기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주체의 이성적 응전이 불투명해지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성과 폭력, 논리와 비약, 비탄과 명랑, 상충되는 개념들을 충돌시키면서 현실의 이데올로기에 구멍을 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충돌지점에서 뜻밖의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한 주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쾌하면서 불온한 상상력을 통해 내가 연출하고 있는 것은, 이성적 주체의 안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호 이해의 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가로 질러야만 하는 어떤 불모성에 대한 것이며, 그 불모성 속에서도 꿈꿔야 하는 새로운 주체이행과 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조습)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모두「달타령」시리즈이다.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달타령」연작은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세계와는 형식상 확연하게 다르다. 이 작품들은 시간적으로는 '밤'을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상징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공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앞서 언급한 대부분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과거와 현재, 사건과 재연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달타령」연작에 보이는 공간은 이러한 기능보다는 현실적 공간 그 자체가 강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작가의 표현대로 현실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념적' 공간이기도 하다. '비무장'은 말 그대로 '벌거벗은' 지역이자 생각이 잉태되기 전 '태초의'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 마리 '학(鶴)'으로 분해 이 공간을 헤집고 다닌다. 앞서 작가의 작업에 대한 주요한 개념으로 '아이러니한 주체'와 더불어 '불모성'의 개념을 이야기 한 바 있다. '아이러니한 주체'는 작가의 작품이 단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다의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으로 이해 될 수 있다면, 최근 작가의 작업의 변화를 가장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불모성'이다. '불모성'의 사전적 의미는 - 1) 땅이 거칠고 메말라 식물이 나거나 자라지 아니함. 2) 아무런 발전이나 결실이 없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이다. 작가가 '불모성'의 의미에 천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역시 홍경한의 언급에서 의미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후 작가의 작업은 국가, 반공, 민족, 권위와 같은 한국의 표피적 도상에 대한 조롱과 풍자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란 우리네 일상에 침투한 거대한 시스템일 수도 있고, 좀처럼 드러나진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탐욕스러운 권력의 촉수 일 수도 있다." (홍경한)
사실 작가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 임팩트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개념은 작품 이면의 의미들이다. 작가의 작품은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사건들이 충격적으로 와 닿지만 작품의 의미구조는 그 표면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만들어 진다. 다시 말해 이한열을 연상하는 순간 붉은 악마가 제시되면서 이한열과 붉은 악마사이의 공백을 작품에 대한 해석이 채워지는 방식이다. 시청 앞이라는 공간과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연출 등 다양한 조형요소들이 겹겹의 레이어로 등장하면서 해석은 끊임없이 미끌어져 가는 그런 구조라는 말이다. 당연 그 해석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실 작가가 지시하는 대상은 작가의 화면 전면에 등장하는 그곳이 아니라 작가 혹은 우리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일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불모성'을 이야기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달타령」을 통해 이제 정직하게 그 존재에 대한 정면승부를 시작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미술비평가 최범은 조습의 전시 서문「밤의 시간과 벌거벗은 생명들」을 통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그 동안 조습에게 현실은 기본적으로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주체의 내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의 발생은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작업은 외부로 부터가 아니라, 내부로 바로 진입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의 내면으로 향한다. 객관적 현실로부터 주체의 내면으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도달한 그곳은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의 조습의 시선을 빨아들인 하나의 소실점이며, 그 시간대는 조습의 25시일 것이다." (최범)
이렇게 되면 작가가 '비무장지대'를 헤집고 다니는 알리바이가 성립되어진다.「달타령」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과거 자신이 해왔던 전략을 일부 수정하고 마주해야 할 '실재'를 정면에서 응시하고 있다. 처연한 밤의 풍경들과 여전히 해학적인 등장인물들의 대비는 이전의 작품에서 보였던 특유의 야유와 유머가 뒤섞인 화면이 아니라 강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만든다. - 물론 이러한 비애감은 작가의 작품 전편에 흐르는 것이기도 하다 - '처연'한 밤 풍경,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학'을 통해 작가는 어쩌면 불모의 땅을 헤매는 인간의 원형적인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조습 특유의 인물들을 제외하고 보면 그 풍경들은 장엄한 레퀴엠이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태초의 공간으로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달타령」연작들은 "유쾌하면서 불온한 상상력을 통해 내가 연출하고 있는 것은, 이성적 주체의 안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관객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조습식 블랙유머의 최종판처럼 여겨진다. 인간존재에 대한 '불확실성' 혹은 '불모성'을 처연하게 각인시키면서 드러내는 어떤 것. 그것이 바로 작가가 바라보고자 하는 그 어떤 '실재'의 모습이 아닐까? ■ 이영준
Vol.20140715c | 조습展 / JOSEUB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