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Jay Flow_Artime Joe_Hong3_JINS BH Mad Victor(Mad Victor_XEVA+Mad Victor_SEMI) SPIV_DIMZ_4B_NANA_Sixcoin_IMAONE * 본 전시의 참여작가의 이름은 Street name으로 표기함.
주최 / 경기도_(재)경기문화재단 협찬 / (주)카텔크리에이티브_(주)스티그마_이뮤나이즈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한국메세나협회_(주)뉴에라캡코리아
관람료 성인 / 4,000원(단체_2,000원) 학생,군인,청소년 / 2,000원(학생단체_1,000원) 무료 / 7세 이하,65세 이상,장애인,국가유공자와 그 배우자,인솔교사 1인 할인 / 경기도민 25%(중복할인제외) * 단체_20인 이상
관람시간 / 10:00am~06:00pm / 둘째,넷째 월요일 휴관 *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경기도미술관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36(초지동 667-1번지) 2층 기획전시실 B,C존 Tel. +82.31.481.7007~9 www.gmoma.or.kr
경기도미술관은 2014년 7월 한국의 그래피티를 소개하는 전시를 통해 그래피티가 갖는 여러 가지 양식과 의미들을 이해하고, 한국 대중문화 속의 그래피티가 갖는 문화적 요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계기가 될 전시를 준비하였다. 그래피티라는 제도권 밖의 예술이 미술관이라는 제도권 안에 전시되고 관람객에 의해 예술 지표적 평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언제인가부터 미술관은 미술의 제도권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미술관 내의 미술작품들은 암묵적인 관념의 보호를 받는다. 생각해보면, 미술은 미술관 이전에 존재했다. 미술계 내의 제도들에서 미술이 무엇인지, 적어도 중요한 미술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다. 또한 이러한 권력을 통해 고급미술과 저급미술 사이의 구분, 즉 무엇이 대중미술과 대립하여 동시대 미술의 역사에서 가치를 가지는가를 지시하는 구분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미술관의 승인된 공간 밖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표현의 형태들은 가치 절하되고 무의미한 것이 된다.1) ● 이처럼 미술관은 제도권을 상징하는 하나의 거대한 권력장이 되어 미술관내의 작품들을 보호하고 여타의 미술에 대한 제도권 밖의 미술로 규정한다. 사실 그래피티가 미술관내에 진입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이 또한 미술관의 새하얀 벽면을 내어주기 보다는 하나의 가벽을 세워 그래피티 작가들에게 그려지고 전시이후에는 폐기되는 실정이었다. 이번 경기도미술관의 그래피티 전시 또한 전시기간 이후에는 폐기될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미술관의 권력의 상징인 새하얀 벽면을 작가들에게 내어주고,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담아냄으로써 그저 이벤트적 전시가 아닌 공간을 점령하는 전시로 기획하고자 한다. 어쩌면 그래피티 작가들에게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로 인식되는 미술관에서의 전시 그 자체가 미술권력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래피티 작가들은 이러한 도전에 스스럼 없이 웃고 즐긴다. 그들이 행하고 있는 그래피티라는 씬(Scene)을 좀 더 확장한 것이지, 제도권이나 권력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다. 이러한 그래피티 정신이 일정한 영역을 지키려는 여타의 예술과는 다른 그들만의 '놀이'로 인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술에서의 성공은 관중(관람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미술은 다른 예술과는 다르다.(중략) 우리가 보는 미술작품은 선택되어진 소수의 화가들의 작품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소수 그룹의 사람들이 전시를 기획하고 홍보하고 구입하며 미술작품의 가치를 성공을 결정한다. 이 세상에 과연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뱅크시) 위의 말처럼 우리는 박제된 작품을 통해 감동이라는 미명 아래 규정화된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래피티 작가들의 작품은 거리에서 허물없이 관람객과 소통한다. 관람객이 낙서라고 치부할지라도 적어도 꾸밈없이 순수하다. 거추장스러운 미학적 관념이나 설명도 없으며, 그저 일대일의 화면이 존재할 뿐이다. 경기도미술관의 전시는 이러한 순수성을 최대한 보존하자는 의미에서 작가들에게 공통된 주제도, 동시대 미술의 담론도, 현대미술의 이론적 의미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참여 작가들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미술관으로 옮겨 자유로운 유희(遊戱)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관람객 또한 이것도 예술인가, 낙서인가를 평가하기보다는 그들이 즐기고 있는 공간 속에 그래피티 리듬에 집중하고 소통하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가 한 말처럼 "누군가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곳에 작업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이다. 그래피티는 미술관의 공간에 제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예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참여 작가들은 미술관이라는 특정한 공간적 해석보다는 그래피티가 점령한 또 하나의 공간이라고 본다면, 경기도미술관이 그래피티의 또 다른 성지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래피티 존 ● "벽은 그냥 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이다. 그걸 꼭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그래피티 작가들에게 거리의 벽은 캔버스이며, 도화지이다. 하지만 자신의 소유가 아닌 타인의 소유이기에 그 면적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자신의 표현을 위한 일정한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종종 사회적 불법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제한된 공간, 시간과의 싸움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종종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은 그래피티 작가들 사이에서 테크닉(technic) 2) 으로 비유되며, 일종의 레벨(level) 3)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전시장의 그래피티 존은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제한을 파괴하고 작가 스스로 제한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한한 작품성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그 어떠한 스킬이나 레벨에 대한 의식 없이 제도권의 미술관이 제공하는 새로운 제도권을 공급할 것이다. ● 알타임 조(Artime Joe), 매드빅터(Mad Victor_Xeva, Mad Victor_Semi), 식스코인(Six-Coin), 제이 플로우(Jay Flow), 진스비에이치(Jins B. H.)는 제한되지 않은 전시장 공간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영역을 확정할 것이다. 작가들 스스로 경쟁과 협력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하나의 거대한 그래피티 존이 형성된다. 한 편으로는 그래피티 작가들에게 전시장의 벽면은 거리의 무한한 공간에 비하여 협소하고 비좁다. 마치 야생의 생명체를 울타리에 가두어 놓은 상황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울타리마저 자신들의 영역으로 즐길 줄 아는 작가들은 거리의 마술사이며 관람객을 이끄는 스트릿의 메시아(Streer messiah)가 될 것이다. 그래피티 존은 살아있는 하나의 거대한 존재로 관람객에게 리듬과 움직임을 선사할 것이며, 그래피티가 태생적으로 갖는 원초적 율동감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터널=성지, 그리고 새로운 성지 ● "이것은 그래피티도 스트리트 아트도 예술도 아닌, 다른 어떤 행위다." 서울 압구정에서 한강공원으로 진입하는 지하보도는 언제인가부터 그래피티의 성지로 명명되었다. 국내의 그래피티를 한다하는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점령해야 하는 곳이며, 그곳에 자신의 작품이 오랫동안 남는다는 것은 그래피티 세계에서 '전설'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누가 명명하지도 규정하지도 않은 그들만의 공간인 셈이다. 거리를 자유롭게 거닐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래피티 작가들에게는 다소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터널에 자신이 작품이 존재해야만 자유롭게 거리에서의 그래피티가 가능하다는 의미는 곧 이 성지(城地)에 자신만의 그래피티가 남아야 한다는 성문법(成文法)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작품이 덮어지고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진행형의 그래피티 공간이다. ● 이번 전시에는 언제나 수직으로 서있는 벽면을 벗어나 천정과 바닥까지도 잠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며, 미술관이 제시하는 새로운 성지를 덮는 시간이 될 것이다. 터널에 참여한 4B, NANA, Hong3은 그래피티 존의 작가들과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전 공간의 작가들이 거대한 공간을 잠식하는 협력과 독립성을 보인다면, 터널의 작가들은 서로에 대한 영역보다는 엉키고 섞이며, 또는 흩어지는 이미지를 통해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어우러짐을 보여준다. 바닥에서 벽면을 통해 천정까지 덮어진 그들의 이미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다음 공간에 대한 이끌림을 유도하며, 그래피티가 갖는 양식중 하나인 스탠실(stencil) 4)과 라인작업이 소개된다. 그래피티 같지만, 그렇지 않은 현대미술의 한 부분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스트리트 존 ● "거리의 예술은 거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피티는 '길거리'라는 특정적인 장소 상황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며, 관객과의 원활한 접근성을 통해 시각적인 메시지로서 역할한다. 관람객(거리의 시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공감대 형성은 길거리미술인 그래피티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중들로부터의 공감은 주류에 있던 예술관계자들을 통하여 비주류 예술 취급을 받던 그래피티 아트를 갤러리와 대형 미술관의 길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2010년 뉴욕(MOMA)과 LA의 대형 프로젝트 전시로 기획되었으며, 세계적으로도 그래피티가 단순한 길거리 낙서가 아닌 예술 영역으로 진입 가능한 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 하지만 그래피티가 미술의 제도권 영역에 진입하기 이전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마케팅과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미 1990년대 세계적인 힙합문화를 선도하는 패션업계와 스포츠 브랜드에서는 그래피티가 아주 유용한 전략으로 존재한다. 특히나 힙합문화를 표방하는 그래피티는 힙합 패션의 태동기부터 스포츠웨어와 접점을 형성하는데, 힙합과 스포츠의 역동성과 활동성이 동일한 목적을 가지며, 유명 힙합뮤지션의 의상과 함께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된다. 사실 그들의 패션은 대중을 위해 연출되었다기보다는 실제 거리의 그래피티 작가나 애호가들의 평상복 차림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놓은 것이다. ● 비록 힙합 패션이 상업적 이미지와 함께 발전한다는 것이 비록 미국 사회 아프로-아메리칸들의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담론이었다고 하더라도 멋진 것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힙합 패션에 포함된 저항적·반항적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래피티가 표상하는 저항적 문구와 이미지로 덮어진 티셔츠하나에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하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거리에 낙서된 그래피티 전도사이며, 건물의 벽을 대신하는 것과 같다. ● 이번 전시의 스트리트 존은 이러한 힙합으로 상징되는 그래피티가 실제적으로 재현되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살아있는 그래피티라는 것과 그래피티가 존재하는 영역에 대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 공사장 팬스에서 공중전화부스, 그리고 소비된 몬타나 스프레이는 그래피티가 보여주는 거리, 즉 실제 소비되고 있는 거리를 보여준다. 일본의 이마원(IMAONE), 딤즈(DIMZ), 스피브(Spiv)는 자유로운 거리의 오브제를 활용한 그래피티를 선보인다. 특히나 그래피티 존의 파노라마 형식의 작품들과는 달리 거리의 기물 자체가 그래피티 작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실제적 거리에서 숨을 쉬고 있는 그래피티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카이브 존 ● "그래피티 배경에서 그래피티의 중심이 되다." 그래피티는 세상의 모든 물건을 '힙합스러운', 혹은 '힙합인' 것으로 무장시킨다. 단순한 물건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순간 더 이상 흔한 물건이 아닌 힙합을 즐기는 전사가 되게 한다. 그러한 양식은 왠지 힙합스러운 양식이 되고, 그 물건을 소유한 사람은 타인과는 구별되는 개별성을 갖게 된다. 힙합문화를 좋아한다면 그래피티가 그려진 혹은 만들어진 물건을 가져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판매의 대상을 찾는 단계에서 생산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상품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사람이 상품에 맞추어진 양식을 갖는다. 특히나 역동적이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갖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에 빠지지 않는 것이 그래피티 양식이다. 거리를 상징하고, 거리의 주인인 현대인에게 그래피티는 그 이상의 만족감을 담아낸다. ● 현대의 그래피티 작가들은 이러한 요구에 충실한 디자이너이며 동시에 기획자가 된다. 획일적으로 생산된 제품에 작가는 자신만의 태킹과 패턴 그리고 이미지를 무장시켜 상품이 아닌 예술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들은 현대미술의 상업적 편견이나 예술적 가치평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실제로 그라피티를 느끼고 함께 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 우선적이다. 그래서 현대미술보다 더 노골적으로 상품에 자신들의 이미지를 접목하며 스스럼없이 즐겨 사용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카텔크리에이티브(catel creative)는 그래피티 작가들에게 기업적 이미지보다는 그래피티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인식되며, 상품적 가치를 그래피티 중심의 사용자에게 전담하는 역설적 자본주의 기업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소수의 마니아를 위한 출발이 기업의 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그래피티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소수의 사용 목적이 대중적인 편의로 발전한 단면을 보여준다. 단순한 벽의 낙서를 위해 제작된 스프레이라면 분사의 압력이라던지 혹은 칼라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문제이다. 결국 이는 그래피티가 낙서가 아닌 스스로를 알리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표현의 다양성을 위한 고민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즉 그래피티는 더 이상의 낙서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반증(反證)으로 증명하고 있다. ● 2014년 7월 경기도미술관의『거리의 미술_그래피티 아트』전시는 그래피티가 단순한 유희적 문화라는 것에서 출발하여 예술의 한 장르로 분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 전시이며, 동시에 미술관이라는 제도권 공간이 제도권을 버리고 거리의 미술을 수용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전시이다. 이는 그래피티가 특정한 공간에만 존재해야 한다는 인식을 넘어서 동시대 문화적 가치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 논지와 더불어 부정적 사회인식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래피티는 여전히 그저 낙서로, 거리의 골칫거리로 남게 될 것이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다양한 표현방식을 동반한 그래피티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래피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대중들의 이해도가 필요하다. 경기도미술관의 전시가 이러한 대중과 그래피티 작가들의 소통의 시간을 갖는 상징적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최기영
* 주석 1) 수잔 레이시,『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2) 단 시간 내에 자신의 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통해 그래피티 스킬이라 칭하며, 그래피티 안에서는 Booming 을 자유롭게 하는 기술로 인식된다. 3) 미국에서 시작된 그래피티의 스킬은 B-Boy의 댄스배틀과 같이 서로의 테크닉과 리듬감을 경합하는 양식이 있다. 이에 그래피티 문화 안에는 그림을 그리는 기술, 속도가 일종의 대회처럼 우열을 가려 정해지는 레벨이 존재한다. 4) 디자인기법의 한가지로 종이에 어떤 물체의 모양을 그린 다음, 그 그림 부분을 잘라내어 구멍을 뚫고, 그 위를 잉크나 그림물감을 묻힌 롤러(roller)로 문질러서 물체 모양을 표현하는 방법. 연속적인 무늬를 표현할 수도 있다. 한편 잉크나 그림물감 대신 크레용을 사용하기도 하며, 또는 종이 위에 쇠그물을 놓고 잉크나 그림물감을 뿌리는 브러싱(brushing) 기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 전시 이벤트-그래피티 작가 상품 증정 기간 : 전시 기간 중 장소 : 경기도미술관 참여방법 : 전시 기간중 경기도미술관 홈페이지 공지 상품 : (주)스티그마 그래피티 레터 티셔츠_(주)뉴에라 그래피티 작가 에디션 모자 이뮤나이즈 참여작가 페이퍼토이_경기도미술관 전시기념 반다나(손수건) 증정 * 상기품목은 제한된 수량으로 이벤트 추첨에 의해 지급될 예정이며, 추후 홈페이지에 공지된 이벤트 참여자들에게 지급 예정
Vol.20140707g | 거리의 미술-그래피티 아트 Art on the Street-Graffiti Ar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