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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628_토요일_03:00pm
제 4회 갤러리이레 신진작가 공모 당선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1:00am~06:30pm
갤러리 이레 GALLERY JIREH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48-12 (법흥리 1652-405번지) Tel. +82.(0)31.941.4115 www.galleryjireh.com
떠도는 그림자들 ● 매번 바다는 앞으로 밀려온다. 매번 바다는 뒤로 물러간다. 파도가 칠 때, 바다는 황금빛 기와를 내민다. 파도가 잦아질 때, 바다는 안쪽으로 휜 주머니 모양의 어둠을 뒤로 밀어낸다. 환영과 혼돈 사이에서 실계는 마치 장난치는 어린애처럼 나타난다. 심리적인 동요는 상상으로 인지되는 만큼 그 영향도 제멋대로이다. 나타나는 실재계 내부의 시간은, 이 세상이 환상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세대라는 씨실과 변모라는 날실이 설명할 수 없는 성급하고 동일한 도안을 그려나간다. 요컨대 기분 내키는 대로 장난을 치는 이 어린애는 같은 말은 되뇌는 요설(繞舌)의 노인이다. 그것은 옛날부터 고양이가 쥐를 노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반복이다. 불시에 우리를 덮치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익히 알던 무엇이다.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들 中) ■
귄터 안더스에 따르면 팬텀이란 가상도 실제도 아닌 제3의 존재층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복제영상을 가리키고 텔레비전이나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서 잘 나타난다. ● 과거 미디어가 없을 때에는 인간은 세계를 세계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때 세계는 원본이었고, 그래서 자기 경험의 바깥에 있는 것 은 보고 들을 수 없었다. 오늘날은 모든 일들을 미디어를 통해 보고 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의 대부분은 가상도 실제도 아닌 애매모호한 것으로 변해 가고 있다. 이제 세계는 가상도 아니고 실제도 아닌 관념 즉, 팬텀으로 구성되고 이 팬텀은 매트릭스에 따라 조직된다. 그야말로 표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대중-인간에게 세계가 매트릭스의 총체성 속에서 전달 될 때, 세계를 대신하여 표상의 총체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세계는 오직 그것이 그들(시청자, 관객)에게 각인된다는 의미에서만 그들의 세계다. 디지털 미디어는 현실의 팬텀을 만들어 내는 데에 그치치 않고, 그 팬텀으로 현실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사회적 중요성을 '그것이 미디어에 나왔느냐, 안나왔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어떤 사건의 복제형태가 원본의 형태보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할 때, 이때 원본은 복제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이제 텔레비전이 현실을 닮는 게 아니라 거꾸로 현실 자체가 텔레비전 속의 가상의 모델에 맞추어 자신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근대철학에서 인간은 자기 앞에 주어진 대상(Object)을 인식하는 주체(Subject)였다. 다시 말해서 주객동일성과 사유와 실재의 일치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는 더 이상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고 그에 의해 만들어진다. 여기서 '대상'이라는 말은 의미를 잃고, 그에 따라 그 상관자인 주체의 개념도 무너진다.
미디어를 통해 흔히 보는 유명인이나 여러 가지 사물들은 우리가 어쩌면 실재론 한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에 관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예컨대, 작가 본인도 미국이란 나라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미국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것 처럼, 디지털 미디어는 나와 세계 사이를 연결해주는데 없어서는 안 될, 말그대로 미디어(중간자)가 되었다. 디지털미디어에 구현된 이미지(텔레비젼, 컴퓨터등)에 노출된 여러 가지 몽타쥬(특히 유명인)들을 우리나라의 전통적 재료인 자개를 이용해 표현함 으로써 관객들에게 낯선 느낌을 전하고 싶고 올드미디어인 자개로 새로운 형식의 매채성을 역설적으로 찾고자 하였다. ● 미디어에 노출된 이미지라는 느낌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자개 파편조각을 좀 더 촘촘히 잘라 수많은 자개 파편덩어리가 일련의 모니터나 브라운관에서 나타나는 노이즈나 픽셀로 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장식적이고 전통적이며 공예적 언어인 자개가 디지털 미디어로 적절히 치환됨으로써 디지털 미디어는 미완성된 채로 전달되어 수용자가 완성해야 할 일종의 모자이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김일중
Vol.20140628f | 김일중展 / KIMILJUNG / 金一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