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제스쳐(Gesture) : 기억을 통한 현재와의 조우

신상철展 / SHINSANGCHEOL / 申尙澈 / painting   2014_0528 ▶ 2014_0602

신상철_gesture-2_혼합재료_90×12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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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리더스 갤러리 수 LEADERS' GALLERY SOO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21(관훈동 198-55번지) Tel. +82.2.733.5454 www.gallerysoo.kr

신상철 작가는 '397세대' 작가이며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모티브는 욕망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영화 『건축학 개론』으로 대변되는 '397세대(1970년대에 출생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현재 30대와 40대 초반을 구성하는 세대)'는 1990년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그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바로 윗세대인 '386세대'가 일구어 놓은 민주화를 토대로 이룩한 사회, 정치적 안정 속에서 성장하였다. 'X세대'로 불렸던 이들은 절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기존 세대와 달리 소비도 인생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으로 여기며 이념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세대이며 현재는 한국 소비사회의 중심허리가 되었다. ● 이와 같은 성향의 397세대 예술가들은 그들이 젊은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유례없는 한국미술시장의 활황기를 목도(目睹)한다. 고고한 예술만을 논하던 시대가 저물고 자본과 예술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분출하는 시대를 맞이한 작가들은 예술과 자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욕망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이 시기에 활발히 작업한 신상철 작가 역시,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작품의 주된 주제는 자본의 사회에서 그가 가진 작가적 열망과 현대인의 소비욕망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LED, 합성수지와 같은 현대적인 매체를 통해 소비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 느끼고 열망하는 꿈과 욕구, 그리고 백일몽과 같은 환각적 경험에 의해 부재되었던 욕망을 충족시키는 작업을 하였으며, 그 표상(表象)으로서 하이클래스 자동차, 유명인 그리고 광고이미지들을 차용하여 팝아트로 구현하였다.

신상철_gesture_혼합재료_50×50cm_2014

올해 5월, 수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그동안의 작업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여 작품의 변주를 시도한다. 최근의 작업은 과거 기억과의 조우를 통한 작가 자신의 현재를 탐구하는 작업들을 다양한 도상과 해체된 기호의 조합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작가 고유의 모습을 환기하고 또한, 그가 과거에 꿈꾸던 이상과 현재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틀림, 굴절과 같은 간극을 작가적 사유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 신상철은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치는 풍경과 사물에서,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서도 과거의 기억과 만나게 되며 그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때의 감정이 선명해지면서 과거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조우한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나누는 문답법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그 성찰이 작업의 조형언어로 도출되어 현재의 작업으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신상철_gesture_혼합재료_90×120cm_2014

작가가 언급한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덧없이 사라졌다가 불현듯 되살아나고,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불완전하며 희미해진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고 전한다. 우리 생애에 이 불명확한 기억이 없다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합리적인 추론도 힘들며 일상의 간단한 행위들도 수행하기 어렵다. 이처럼 기억은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기억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과학 잡지 '사이언스'는 기억이 어디에 저장되고 어떻게 출력되는지 아는 것은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하는 문제만큼이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문제'라고 논한다. ● 그러나, 신상철은 기억이란 망망대해에서 우리가 붙잡기 전에는 그저 있다가 흘러가 버리는 것들을 호출하여 그림이라는 사건으로 만들고 있다. 어느 날 작가가 마주친 길거리 사람들과 날마다 흘러나오는 사랑노래 그리고 일상에서 수없이 대면하는 기물들, 또한, 어릴 적부터 읽고 본 많은 풍경들이 은유(metaphor)의 바다를 이루어 작가의 기억에서 그림이라는 사건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자체 기구가 없는 기억은 질료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작품으로 구현되고 기억의 심상은 다층적 의미를 지닌 메타포로 탈바꿈한다.

신상철_gesture-b_혼합재료_50×50cm_2014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인 「gesture」시리즈는 작가의 기억과 감정을 기록하거나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소재의 도상들로 인물, 글자, 일상적 도구와 같은 소재들을 화면에 조형적으로 구성하면서 반복과 변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 사물로 드러난 도상들은 서구의 사실주의자들이 대상의 곁으로 성큼 다가서서 그 표면에 시선을 고정시키던 것과는 반대로 사물에서 몇 걸음 물러나 사실의 뒤로 서서 그들을 관조하는 아시아적 감수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사물의 구체성은 기꺼이 누락되고 기억을 담은 메타포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과 진리를 예술이 관찰하고 발견하여 표현하려 하기에 예술은 그 자체로 추상적이며 그 추상은 메타포(metaphor)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산물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은유(metaphor)는 단지 눈앞에 감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심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든다. ● 세계와 몸이 관계 맺는 경험을 여러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감각이 대상을 지각할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억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의미로 다시 기억 속에 저장하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메타포는 기억 속의 것과 현재의 것 사이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다리(bridge)이자 의미의 전이(transference)이며 때로는 전이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창조(create)할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 ● 심리학에서는 기억을 정보를 저장하고 유지하고 다시 불러내는, 회상의 기능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기억은 마치 논리적 인관관계에 의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기억은 생각보다 사실적이지 못하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기억의 장소』 저자인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우리가 기억에 대해 많이 언급하는 것은 이제 더는 기억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그의 책에 적고 있다. 의식은 일반적으로 '지난 간 것이라는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며 기억의 상기는 그것과 관련된 경험이 완결되어 과거지사가 되었을 때, 비로소 생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억은 사실이 아닌 '해석'이 된다. 망각과 함께 기억은 사실을 왜곡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무의식과 관계를 맺어 기억을 무의식의 의지가 반영된 산물이라 여기기도 한다.

신상철_gesture-b_혼합재료_120×180cm_2014

다시 「Gesture」로 돌아와, 작품 속 사물들은 기억과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작가의 내적인 공간에서 도출된 작가만의 '기억의 메타포(Metaphors of Memory)'이다. 이 은유의 도상들이 보여주는 일상의 이미지들은 세상이 지각하는 범주화에 고착되지 않고 작가 개인만의 기억들과 연관을 맺으며 그 만의 조형언어로 재해석한다. 그리고 보편적 의미의 사물과는 다른 맥락으로 의미를 치환하거나 이색적인 부정교합을 시도하며 작가만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나간다. 더불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는 그들만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해석의 길을 열어 놓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상의 폭 안에서 작품과의 의미교류가 가능해지며, 보는 이들마다 그들만의 재해석된 기억을 다시 저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역시 메타포라 하겠다. ● 화면의 배경은 여러 개의 사각프레임을 반복하면서 정형화된 예술의 프레임을 따르고 있다. 지극히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것을 담아내기 어려운 차가운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수많은 직선들과 불완전한 형태들이 교차하고 반복되면서 비정형의 공간을 만든다. 분절된 사각을 배경으로 배치된 사물들은 자칫 독립된 기억만을 내포하는 메타포로 보일 수 있으나, 리듬과 운율을 지닌 선들은 이들을 유기적으로 엮어주며 자연스럽게 배경을 넘어 사물 내부까지 침투하여, 이내 사물과 배경의 구분은 해체된다. 그 관계는 '상호적'을 넘어 '삼투적'이다. 결국, 배경과 사물의 경계는 부정되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실존공간에 사물과 배경이 어우러진 하모니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신상철_gesture-m_혼합재료_50×50cm_2014

이번 전시에 새로이 선보이는 「독백」 시리즈는 작가의 현재적 고민을 더욱 극대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해체된 기호언어더미 위에 자리 잡은 형상은 그림자를 동반하며 자칫 실재와 허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림자는 어떤 존재의 흔적의 의미를 넘어 그림자와 실재(實在)의 구분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 존재하며, 불명확하고 불확실하게 보이며 때론 고독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림자는 희미한 기억과 같으며 어느 순간에는 실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작품 속 형상과 그림자의 이런 관계는 작가가 이번 전시의 주된 주제로 삼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통한 현재와의 조우'와 잘 맞물려있다. 현재성(nowness)은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 가능할 때에만 창출될 수 있다. 작가의 현재성은 바로 작품 속 형상이며 그 현재성은 과거라는 그림자를 통해 '존재'를 확실히 드러낸다. 이로써 그림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이 마음속에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뿐 아니라 의식에 수용함을 의미한다. 그림자라는 과거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분신과 대면하며 때로는 현재의 존재와 착각하고 때로는 위로하면서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인식한다.

신상철_gesture-p_혼합재료_50×70cm_2014

기호더미들로 가득 찬 캔버스 공간은 이미지들이 중첩되면서 마띠에르를 극대화한다. 신상철의 조형공간은 회화가 평면성이라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에서 살짝 벗어나 탈회화의 노선을 선택한다. 매체와 메시지, 지지대(support)와 내용(contents)이 뒤섞인 회화 자체의 존재론적 속성이 고스란히 작품메세지의 일환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또한, 회화와 탈회화, 2차원과 3차원의 장벽을 넘나들면서 서로의 통섭을 유도한다. 기호들이 중첩과 이미지의 그림자를 통해 강조된 실루엣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형상과 동등한 반열에 서게되고 그 안에서 기호와 사물, 사물과 그림자,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는 시각적 응집을 보여준다. 자칫 복잡해 보일 수 있는 심상철의 작품은 무겁지도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지도 않다. 그에게 회화란 그 자신의 삶과 동떨어지거나 단절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관계 안에 있는 훨씬 더 정합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이스라엘 종교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가 강조한 '태초부터 있었던 것은 단절이 아니라 관계'라는 문장이 그 의미를 더욱 상기시킨다. ■ 이지성

Vol.20140529h | 신상철展 / SHINSANGCHEOL / 申尙澈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