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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1:00am~04:00pm / 일,공휴일 휴관
포스코미술관 POSCO ART MUSEUM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440(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B1,2 Tel. +82.2.3457.1665 www.poscoartmuseum.org
일본 도쿄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미국 뉴욕에서 실력을 쌓은 준초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광고 사진작가이다. 더불어 그는 예술사진을 병행하는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해녀'사진은 2005년 광고촬영을 위해 찾은 제주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우연히 해녀海女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빠져 들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과 가족의 생활을 지켜내는 놀라운 모습에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틈틈히 제주도를 찾아 해녀의 모습을 촬영하던 그는 2013년 3월 제주 우도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했고, 비로소 이번 전시를 통해 그 결과물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 준초이는 '준초이식(式)'으로 해석해 작업하고 이를 세계 무대에 선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진작가이다. 특히 그가 촬영한 인물사진에는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담고 싶다는 작가의 의지와 개성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번 전시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해녀 인물사진을 보면 순간의 찰나가 잘 포착되어 있다.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주름 하나, 삶의 회한을 담은 검은 눈동자,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서 인물의 마음과 인생까지 읽어낼 수 있다. 여기에 작가는 빛의 연금술사가 되어 사진의 생명이라 일컫는 '빛'을 적재적소에 녹여 넣었다. 이러한 인물사진과 함께 해녀들의 삶의 터전인 제주 바다와 제주 풍경사진이 더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오감 가득 제주 해녀 문화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그가 제주 해녀 촬영에 전념하기로 결정했을 즈음과 거의 동시에 해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문화재청은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위해 협의체 중심으로 등재 신청서 작성을 마친 후 심사를 앞두고 있으며, 제주 해녀문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역시 힘을 더해주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이번 전시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길 기대해 본다. ■ 포스코미술관
준초이의 해녀도 앞에서 ● 약식(略式)을 단념한다. 정식(正式)이 필요하다. 정면(正面)과 정색(正色)으로 이들 앞에 정좌(正坐)한다. 준초이의 이번 역작 '해녀도(海女圖)' 앞이다. 준초이의 이 '해녀'연작과 그 배경 자체의 본연(本然)을 본다. 내 가슴의 정념(正念)이 가만히 흔들린다. ● 제주도. 제주도 바다 연안 그곳 여인의 표상인 해녀의 나날, 그 무자비한 수평선, 그 수평선 너머의 그 어디메 이어도. 그 이어도 저승에 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이승의 고난을 한 생애의 의지로 삼아 한번의 자맥질로 가라앉는 바다 밑의 절정(絶頂). 그이들의 완벽한 초상의 일부가 지금 여기에 와 있다. 준초이의 맥박 뛰노는 집중의 투사(透射)가 이루어낸 것. 숙연하다. 처절하다.
벗들, 이 앞에서 옷깃을 여며도 좋다. 다가서도 물러서도 좋다. 위대한 소재(素材)인 어머니를 위하여. 그리고 이 어머니의 관념과 일치된 준초이의 시각(視覺)을 위하여. ● 1960년대 중반의 내 제주도 체류 3년을 떠올린다. 그것은 개안(開眼)이었고 충일(充溢)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대체로 휴일 오전을 그곳 화북 별도오름(別岳峰)의 속칭 자살바위 스무길 벼랑 아래로 스며들어가 있었다. 그 은신(隱身)의 장소에서 하루 70만번이나 파도치는 그 파도자락이 파쇄(破碎)되는 생멸(生滅)로 세계의 율동과 생명의 파동을 이어가는 영겁 속에 잠겨 있었다. 그 파도의 문법으로 내 언어의 산재(散在)를 불러들였다. 마침내 파도는 나 자신이었다. 내 별명이 파옹(波翁)인 까닭이다. 그런가 하면 불면증 10년의 밤 대부분을 그곳의 밤안개 속 등대 무적(霧笛)소리에 귀기울여 보냈다. 내 언어는 그 안개의 언어였다. 준초이의 백주(白晝) 화면에 극화(劇化)된 숭고한 피사체에의 귀의에서 나는 내 지난 날을 찾아내기라도 하는가.
제주도의 아침바다는 간밤을 깨끗이 보낸 뒤 황홀한 미지로 시작된다. 제주도의 저녁바다와 그 하늘은 무수한 최후의 영웅들이 장렬하게 산화하는 낙조의 축제로 채워진다. 그것은 최고이고 최상이다. 지상(至上)이다. 그 낙조의 대국면 말이다. 제주도의 다공질(多孔質) 현무암의 돌들은 무생물이 아니라 생물의 몇 생애를 파묻은 응고이다. 제주도의 흙은 화산회토(火山灰土)이다. 씨를 뿌리고 바로 밟아주지 않으면 씨와 흙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구슬픈 사돈 같은 답전가(踏田歌)를 부르는 것이다. 이런 생존의 환경에서 전율의 천직(天職)인 해녀의 천년세월이 있게 된다. ● 준초이가 생애의 사업으로 선택한 이 해녀도야 말로 소재와 가치가 상즉(相卽)하는 살아있는 미학을 성취해 가는 바, 얼마나 놀라운 노릇인가. 몇해 전 그의 야심작 '수원화성' 작품들이 드러낸 환상성과 추상성은 이번의 연작 '해녀'에서 삶의 극한으로 빚어낸 리얼리즘의 극사실성(極寫実性)에 이르렀다.
이 사진작가는 처자도 벗도 등진 채 단독의 시간 속에서 오로지 제주도 성산포 물 건너 우도에 남몰래 헤엄쳐가서 그곳의 어머니들 아낙들과 근친화(近親化)됨으로써 그의 앵글은 핏줄로 더워졌다. ● 그에게 사진은 생이고 생활이었다. 암 그래야 하겠지. 그이들과 함께 부지런했고 그이들과 함께 물속에 들어갔고 물에서 솟아나와 터트리는 그 숨찬 휘파람소리를 그도 덩달아 내질러야했다. 마침내 그는 해녀라는 피사체 앞에서 자신이야말로 피사체의 피사체가 되어야 했다. 이입(移入)이란 뭔가. 그것의 진정한 뜻이란 둘 사이의 관계행위를 넘어 마침내 오랜 둘이 소멸된 하나의 자기대상화(自己對象化)이다. 자아와 타아의 상호환원(相互還元)이다. 어느 한쪽의 흡수는 모독이다.
사진이 처음으로 들어온 1백년 전후의 속담에서 사진은 혼을 빼간다 했다. 그래서 함부로 사진찍기를 저어했다. 이 터무니없는 미신은 그러나 끝내 터무니 있다. 그 미신은 종교 이상이다. ● 진짜배기 사진은 혼을 빼어 자신의 생명을 길어낸다. 준초이의 '제주해녀' 연작들은 그런 혼들의 결집이자 혼들의 방생(放生)이다. ■ 고은
Vol.20140518e | 준초이展 / JOON CHOI / 崔明準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