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509_금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화~금_02:00pm~08:00pm / 토~일_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SPACE WILLING N DEALING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225-67번지 B1 Tel. +82.2.797.7893 www.willingndealing.com
최승훈 개인작가의 작업으로서의 작품을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개인 작가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는 것은 필자에게도 독특한 경험이다. 언제나 듀오 작가로서 활동해왔던 '최승훈+박선민'이라는 타이틀이 미술계에서는 긴 시간 동안 당연시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 또한 기획자로서 항상 이 두 작가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을 보아왔기 때문에 윌링앤딜링에서 전시를 의뢰했을 때 작가들이 얼마간의 고민을 거쳐 이렇게 따로 작업을 해 보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를 제안해 오자 나는 이것이 내심 반가운 제안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다. 기성 작가들이 특히 윌링앤딜링에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되 다른 공간과는 다른 아이디어와 실험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을 반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함께 논의하면서 작업을 만들어나갔던 서로의 분신과도 같은 파트너인 박선민 작가와 분리되어 자신만의 방식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작가에게도 무척이나 흥분되고 설래일 수 있는 실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최승훈 작가의 개인전은 영상, 사진이미지, 텍스트 등 세가지 형식으로 구성된다. 영상 작업은 하나의 풍경, 촬영 당시에는 사용하고 있지 않아 정지되어 있는,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 사진 각각을 다시 영상 화면에 담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 이미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이미지는 그 전체가 시선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세부적인 부분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는 속도감을 드러내며 매우 빠르게 세부와 세부를 잡아내다가 천천히 시선을 이동하여 재빨리 그 시선의 머무름에서 빠져 나오는 등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속도감과 진지하고 느린 관찰적 태도 등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단지 신체의 반응을 따라가는 화면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작가의 손에 이끌리듯 듯 나의 눈은 속절 없이 이를 좇게 되며, 이 시선의 주도권은 고스란히 최승훈 작가의 것임을 계속 인지하게 된다. 나는 이 작업을 보면서 작가에게 '남성적인 작품'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대상을 철저하게 대상화하는 지배적인 시선의 주체가 강조되는 이러한 태도를 전통적으로는 '남성적'이라는 표현을 써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항상 보여주었던 감각과 감성의 정교한 표현을 당연시했다가 뜻밖에 마주한 의외성에서 보여주는 강인함을 통해 이 작가가 남녀 듀오로 활동했다는 새삼스러운 구분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화면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전체로 바라보던 구조의 부분을 들여다 보면 이 구석 구석의 장면들은 개별적 이미지 자체로 인식된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부분으로서가 아닌 온전한 이미지로서 화면 속을 채우는 순간 영상 속 시선이 갑작스럽게 전체의 일부로 돌아가게 한다. 이렇듯 이미지들은 전체와 부분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이미지의 구조적인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사전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잘 드러나고 있다. 사진 컷을 다시 촬영하는 방법과 실제 공간의 촬영 간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간과 공기를 빼버렸습니다. 현상을 빼버린 현상이죠."라고 말한다. 특정 공간으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로서의 이미지라는 의미이리라.
라이팅 박스에 제작되는 사진 작업은 공간에 매달게 되는 설치 형식을 띠는데 이는 마치 영상이 공간 속에서 부유하듯이 보이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장치는 주변의 영상 작업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두운 공간 속에서 서로 비슷한 밝기를 뿜어내며 전체적인 풍경 속에서 영상과의 구분을 없앤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관객들은 전체적인 풍경을 최초로 마주한 후에 전시장 안쪽에서는 이 사진 작업들로 인해 또 다른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두 개의 다른 이미지가 라이팅 박스의 양면에 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양면의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같은 대상이다. 가령 하나의 분수 이미지이지만 한쪽에서는 물이 바깥으로 뿜어져 퍼져 나가는 장면이고 다른 한쪽은 안쪽 방향으로 물을 뿜는 이미지이다. 두 개의 상반된 현상은 분수의 풍경을 다르게 보이게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미지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영상에서 보여주었던 부분과 전체를 번갈아 보여주고 있는 시선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두 개의 현상은 하나의 속성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 두 개의 속성으로 인해 이미지는 부분적으로 분절되는 효과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은 텍스트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텍스트 작업은 마치 낱말 맞추기처럼 일종의 놀이와 같은 형식을 보여준다. 이는 특정 낱말을 거꾸로 읽었을 때에도 특정 의미가 있는 단어이며 동시에 반대의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찾아내고 있다. 가령 "유치한 상식"이라는 글자는 "식상한 치유"라는 글씨와 함께 움직인다. 이 두 개의 단어는 같은 음절을 공유하되 그 순서가 바뀌어 있고 동시에 그 의미 또한 – 어느 정도의 오차범위를 가지기는 하지만 – 서로의 연결성을 찾을 수 있다. "결연단절"과 "절단연결"이라는 이 단어들 역시 그 모양새나 의미 면에서 이러한 법칙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글자들은 화면 속에서 서로 맞닿아 있으며,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그 모양을 비틀고 있으나 서로의 접점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미화하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그와 상대적으로 뭔가를 폄하하게 되더라"라는 작가의 일종의 고백에서 시작된 또 다른 작업 「미화 폄하」는 "미화"라는 단어와 "폄하"라는 두 개의 단어가 화면 속에서 겹쳐진 채로 번갈아 가며 그 진하기를 달리하며 드러난다. 마치 서로의 그림자처럼 결코 단어 하나만이 화면에 떠 있는 법이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들은 어떤 한가지를 지칭하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을 염두에 두게 되는 다중적인 표현에 대한 의식을 깨우고 있다. 「미술마술」이라는 작품은 작은 극장 속에 설치 된 영상 장면인데 "미술"이라는 글씨와 "마술"이라는 서로 다른 단어가 나란히 나열되었을 때 우리의 의식이 이 두 개의 영역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있으며 이에 동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너」는 음절 속 기호 하나가 지속적으로 움직이면서 '나는 너', '너는 너', '나는 나' 등의 끊임없이 자신과 타자 사이에서 인식 변화를 겪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치 상호 연상작용의 놀이를 들여다 보듯 이 텍스트들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인 의미와 기호의 상호 작용을 자극하게 된다.
앞서 '남성적'이라고 표현했던 최승훈 작가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의외성은 아마도 '최승훈+박선민'의 작업에서 풀어내 왔던 두 작가의 공통의 이야기들을 비껴가는 방법론과 개념들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이미지를 통해 감각을 고무시키고, 텍스트를 통하여 새로운 감성으로의 접근법을 시도해 왔었다. 이들의 작업에는 모종의 스토리의 연장선상에서 서술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었고 이를 통해 남겨지는 잔상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기억해 내듯 감각의 연장을 유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지금껏 보아온 이미지들처럼 직관적 감각을 들여다 보게 하되 더욱 미시적으로 접근 가능한 논리성을 함께 수반하고 있다. 이미지들은 이미지 자체로 분절되었다가 연결되었다가 하면서 이미지 자체의 시각에서 수반되는 의미화로서의 인식을 더욱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드러나는 것은 협업 과정에서 분담하고 있는 역할로 인해 100% 발현될 수 없었던 개인의 목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이 양면성과 이중성 등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작업은 기존의 작업들에 근간을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작가도 인정하였듯 그의 작업 속에는 '최승훈+박선민' DNA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초'의 시도는 우리에게 모험심을 자극하며 더욱 자신감을 드러내게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한다. 이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기운을 끌어내게 되고 활력의 요소가 되며 그 과정을 즐거움으로 이끈다. 최승훈 작가는 박선민 작가와의 다음 작업의 협업을 위하여 자신을 극도로 개인적인 감각 속으로 밀어 넣어서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처음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보편성의 획득은 주관의 끝에 가서 섰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그의 '최초'의 시도는 다음 협업 단계에서 더욱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임에 틀림 없다. ■ 김인선
Vol.20140510e | 최승훈展 / CHOISUNGHUN / 崔昇勳 / video.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