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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510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희 GALLERY HEE 경남 양산시 하북면 초산리 산22-44번지 한송예술촌 17-51 Tel. +82.55.383.1962 www.galleryhee.com
부서지기 쉬운 너를 감싸 안은 단단한 마음 ● 맑고 푸른 물빛을 닮은 인물들이 덤덤한 표정으로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는 조용한 실내. 전시장에 들어서서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을 스치는 미세한 움직임이 만들어 낸 소리, 인물과 마주하며 지속되는 묘한 정적의 시간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알 수 없는 정적.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인물들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인 듯 보이지만, 이들의 몸짓이나 동식물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의구심을 자아낸다. 마치 숲의 정령처럼 신화나 토템에 기초한 인물과 자연의 상관관계를 묘사한 것일까. 단순한 듯 보이지만 결코 그 의미를 쉽게 내어 주지 않는 인물의 초상. 김나리는 두상과 흉상이라는 전통적인 인물조각에 기초를 두고 인간의 내면,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오고 있다.
우선 그의 작업은 인간의 심리와 내면에 숨겨진 잠재력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인체의 사실적 표현에 주안점을 두었던 전통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전통적인 인물조각이 그러하듯 그의 작업은 실제 등신대로 제작되어 보는 이의 감정이 인물의 표정에 자연스럽게 이입되도록 유도한다. 다양한 재료와 새로운 기법으로 무장한 현대조각의 전개 양상 속에서도 그는 유독 전통조각의 가장 익숙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주어진 삶에 향한 관조적인 자세로 개인의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 눈앞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과연 누구이며, 왜 이들은 하나같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가. 김나리의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의 얼굴표현을 비교, 관찰해보면 유독 비슷한 생김새의 인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 본인의 얼굴과 많이 닮아 있는 모습으로 보아 이것은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빚어낸 일종의 자소상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자소상은 일반적인 자소상과 달리, 꽃과 나무, 물과 번개, 사슴과 선인장 등 자연물의 형태와 결합하여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집 사슴」, 「사슴과 나」는 사슴에 관련된 작가 개인의 경험을 소재로 한 작업으로서 시각적인 서사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업 중 하나다. 작가는 인간에 의해 희생된 사슴의 죽어가는 눈을 바라보면서 느낀 인간의 잔혹감과 죽음의 참혹함에 대한 반응으로서 죽어가는 사슴의 눈을 감겨주거나 식물과의 접합을 통해 새 생명을 부여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참고로 작가의 작업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선인장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잘려진 상태에서도 다시 살아나거나 접목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선인장의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인식이 이와 같은 형상을 탄생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상의 기저에는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사고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세상에는 인간의 세계, 동식물의 세계, 영혼의 세계 등 여러 차원의 세계가 존재하고, 이들은 같은 시공간 속에 공존하면서 서로 간에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여러 세계가 중첩되어 있는 삶의 틈 사이로 작가 스스로가 택한 소통의 방식이다. 고통받는 인간의 삶을 어루만지고, 안타깝게 희생된 동물을 위로하고, 이를 꽃과 나무의 생명력으로 치유하는 일.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에서 인간과 동물, 식물간의 경계는 모호하고, 작품 속에 나타난 인물은 현실세계가 아닌 영혼의 세계에 머무르는 정령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가 보는 세상 안에서 각각의 세계는 서로가 깊이 결속되어 있고, 그 안에서 작가는 세계 간의 평형(equalibrium), 내지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개입을 자처하는 일종의 매개자이다.
자연과 합일된 형태의 인물 외에도 김나리의 작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인물상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무표정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보편적 인간의 얼굴이다. 얼굴의 옛말 '얼골'은 인간의 얼 혹은 넋이 깃들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김나리의 작업에 나타난 인물의 얼굴은 작가 개인이 그간의 경험을 통해 겪은 인물들과의 관계 내지는 사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인간사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되새김되어 특정한 내면의 상태로 압축되어 나타난 결과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상처받기 쉬운 인간 내면의 모습을 표면이 갈라지고, 부서지고 떨어져나간 얼굴에 담았다. 「부서지기 쉬운」이라는 제목의 연작은 인간의 얼굴에 표면이 갈라지고 터져버린 고목의 결이나 금방이라도 가루가 되어 으스러질 것 같은 메마른 땅, 강한 비바람에 모든 꽃잎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만개한 꽃의 모습을 대입시킨 작업이다. 앞서 언급한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과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이 만나 하나의 물리적인 형과 색을 입어 독립적인 형상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인간의 외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내면의 모습은 때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는 입자가 거칠고 큰 조합토의 질감과 인물의 곳곳을 매만진 손자국을 그대로 드러낸 채 굳어진 인물의 피부 위로 보이지 않은 내면의 모습을 실체화한다. 이렇게 정신에 살을 입히는 과정은 최근작 「완벽한 거울-너의 그림자」에서 극에 달한다. 인간의 말끔한 겉모습 아래 숨겨져 있어서 정체를 알기 힘든 내면의 세계가 맑은 수면 위의 물그림자처럼 흘러나온 모습이다. 아름답지 않게 일그러져 있고, 흡사 산고의 고통마냥 일그러져 있는 표정이다. 그 모습은 마치 불편한 감정을 쏟아낸 후 마음의 평온을 찾은 듯한 인물의 표정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완벽한 거울은 내면에 숨겨진 감정들의 참모습과 대면할 용기를 지닌 자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혼의 거울과 같다.
심연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솔직한 모습과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현실세계의 모습과 달리 다듬어지거나 정제되어 있지 않으며, 때론 추악하거나 공포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김나리의 작업과정은 이러한 내면세계와 덤덤히 마주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인양 오랜 시간 마음을 갈고 닦는 수행의 과정과 그 모습이 무척 닮아 있다. 그의 작업에 있어서 수행이란, 다양한 요소들 간의 불균형적 관계를 해소하고 사회에 의해 희생된 인간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인간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희생된 자연 앞에 참회하는 시간과 다름없다. 이를 위해 그는 보이지 않은 실체에 흙으로 살을 붙이고, 이를 천천히 건조시키고 다듬어 불에 굽는 과정을 반복한다. 무형의 관념에 살을 입히고 비닐을 씌워 6개월 동안의 자연건조를 거쳐 속살을 파낸 후, 다시 자연건조하여 굽기까지 약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은 마치 작품 속 대상이 살아왔을 현실세계의 삶을 함께 되돌아보면서 끝을 마무리하는 의식, 영혼을 위로하는 일종의 제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인고의 시간을 요하는 수행의 과정에서 작품 속 범인(凡人)의 얼굴은 어느새 작가 자신의 얼굴과 닮아간다. 그는 타인의 삶과 영혼을 어루만지는 과정에 개인의 삶을 투영해봄으로써 본인의 내면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확보해나간다. 이것은 또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주제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보편성을 얻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김나리의 작품에서 감정의 기복을 읽을 수 없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듯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인물상이 현재의 삶, 현재의 모습을 다시 되돌아보게끔 보는 이의 마음을 이끄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진심을 담아 세상을 쓰다듬는 과정에서 만난 솔직한 얼굴들. 부서지기 쉬운 내면의 세계도, 상처받은 세상의 모습도 고통스럽긴 하나, 그에게는 내면의 솔직한 모습과 또 한 번 마주하고 마음의 평정과 균형을 찾기 위해 떠난 수행 길에서 만난 좋은 벗이다. 진실로 향하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회,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사라진 사회의 한 복판에서 작가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공생의 원리를 이해하고 주변의 삶을 보듬는 시선을 잃지 않는 것, 꾸밈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솔직한 내면의 모습과 마주하는 것만이 진실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묵묵히 일깨워주고 있다. ■ 황정인
Vol.20140510b | 김나리展 / KIMNARI / 金나리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