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 조각전

전준展 / CHONJOON / 全晙 / sculpture   2014_0502 ▶ 2014_0615 / 월요일 휴관

전준_소리-우연과 필연 사이_철단조_46×98×25cm_2009

초대일시 / 2014_0502_금요일_05:00pm

후원 / 경기도_남양주시

관람시간 / 09:30am~06:30pm / 월요일 휴관

모란미술관 MORAN MUSEUM OF ART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246-1번지 Tel. +82.31.594.8001~2 www.moranmuseum.org

소리를 조각하다Ⅰ. 이번 모란미술관의『전준 조각』展은 지난 50년간 견실한 조각정신으로 작업해온 작가의 조형미학을 또 다른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전준은 긴 시간 동안 작업을 해 오면서 특정한 하나의 틀에 얽매여 안주하는 법을 몰랐던 작가이다. 그저 조각의 길에 전력을 다해 걸어가거나 달려왔을 뿐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정영목이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듯이, 전준은 "이 시대의 전천후(全天候) 조각가"이다. 이렇듯 전준은 조각의 가능성과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다양한 형식으로 치열하게 모색해 온 작가이다. 그러기에 한국 현대조각의 흐름에서 그의 조각은 주목할 만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이후 제작된 작품을 위주로 그의 조각에 내재한 설치미술 개념을 고찰해보고, 이에 따라 그 미학적 함의를 가늠해 보는데 중점을 둔다.

전준_소리_동판 용접_120×90×30cm_1986

Ⅱ. 전통적인 조각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조각에서도 여전히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난해한 문제이다. 그런데 전준은 이러한 난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내용에 형식이 있고, 형식에 내용이 있다는 것을 조형적으로 실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준 조각의 매력이 있다. 삶, 자연 그리고 생명의 근원적인 울림, 그 소리에서 형식이 생겨나고, 또한 그 형식 자체가 다시 이야기가 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일련의 연작들「소리-탄생과 소멸」,「소리-우연과 필연사이」,「소리-존재의 의미」등이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작품들이다.

전준_소리-탄생과 소멸_나무, 동_134×86×53cm_2012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전준은 오랫동안 "소리"를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그가 천착하고 있는 "소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전준의 소리가 단지 오감 중의 하나인 청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의 소리는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 미각, 후각, 촉각 등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오감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소리"는 삶의 이야기 그리고 자연의 친화성을 담아내는 은유이다. 그러니까 그의 소리는 단순히 물리적 파동에 따른 결과로서의 소리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들 속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심상들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인 것이다. ● 전준의 소리는 고답적이지 않다. 또한 형이상학적이거나 관념적인 관조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추상적인 현실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을 쉬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리이다. 고즈넉하게 때론 치열하게 아우성치는 삶의 소리이다. 전준의 작업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곳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가 단지 결과를 보여주기 위한 작업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작가임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소리도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울려나오는 것이리라. 주제가 억지로 덧붙여진 빛바랜 조형적 감각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빛나는 조각정신이 이러한 소리를 만든 것이다. 전준이 작품 제목에서 자주 사용하는 탄생, 소멸, 우연, 필연 등과 같은 말도 바로 이러한 과정에 대한 조형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전준_소리-존재의 의미_스테인리스 스틸_200×600×750cm_2013

Ⅲ. 전준은 작업에서 다양한 재료들, 예컨대 대리석, 철, 브론즈, 오석, 나무 등을 사용한다. 물론 이처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는 작가가 드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조각에서 재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재료의 미학적 특징을 조형적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재료는 단순히 조각을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재료 그 자체의 조형성, 달리 말하자면 재료의 미학적 차원으로 변용된다. 재료가 주제가 되고, 주제가 재료가 된다. 이런 이유로 그의 매스는 인공물이 아니라 자연물처럼 느껴진다. 재료의 미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조각의 가능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을 새로운 지평에서 탐구할 수 있는 추동력이 된다. ● 재료의 미학은 철조, 석조, 목조뿐만 아니라 전준의 회화, 드로잉, 에칭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회화적 평면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그 평면성이 조각과 맺는 존재방식이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회화 작품을 보자. 재료의 미학에 근거한 조각의 공간과 매스가 평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현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그의 조형적 시도를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조각 재료에 대한 미학적 차원의 이해는 자연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조형적 실마리가 된다.

전준展_모란미술관_2014

Ⅳ.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걱정스러웠던 것 중의 하나는 전준의 작업을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작품을 선정할 경우 전체적으로 산만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작업장을 방문하고 작품을 선정한 후 몇 번에 걸쳐 디스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다양한 조형성을 보여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조형미학이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작을 제외한다면, 전준 조각의 대부분은 추상조각에 속한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서구의 현대조각사에 등장했던 사조로서의 추상조각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의 조각은 추상적인 형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니라 일상과 자연의 아름다운 순환의 계기를 본질적으로 포착하고 이를 추상형식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념의 포장을 뜯어내고 내밀한 조각적 언어로 생명의 울림, 그 소리의 형상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추상조각이다. 관념적인 유희가 아니라 촘촘한 삶의 결들로 구성된 추상조각인 것이다. 전준의 추상조각이 보여주는 이러한 특징을 충분히 고려하여 이번 전시는 설치미술의 관점에서 개별 작품들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조형적 공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준展_모란미술관_2014

모란미술관의 다섯 공간에 설치된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조각의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작품들의 고유성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공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가의 조형적 태도와 형식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목조, 석조, 회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소리-탄생과 소멸」(2011),「소리-탄생과 소멸」(2005),「소리」(2002) 등은 작가의 "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프렐류드이다. 1전시실에 설치된 철단조「소리-우연과 필연사이」(2007-2009) 연작 그리고 에칭「소리-내재율」은 섬세하고 감각적이면서도 치밀한 조형성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2전시실의「소리-탄생과 소멸」(2012) 연작은 공간과 매스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연작과 함께 설치된 회화 작품(「소리-묵시」(2004),「소리-예감」(2005),「소리-숨」(2001, 2007) 등)은 조각적 소리, 그 울림이 갖는 함축미를 선과 색의 감성적 구성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아래층 3전시실의「소리-존재의 의미」(2013)는 주관과 객과, 부분과 전체, 개인과 사회 등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텅 빈 듯 보이는 매스는 공간에서 응축된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4전시실의 석조 작품「소리-탄생과 소멸」(2005) 연작에서는 소리의 근원을 모색해 온 작가의 견고한 작업 정신이 새롭게 환기된다. 이는 벽에 걸린 회화 연작「소리-예감」(2001)으로 인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전준展_모란미술관_2014

Ⅴ. 이번 전시에서 알 수 있듯이 전준은 형태 그 자체의 틀이나 결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소리"의 조형성을 찾아 나서는 과정의 작가이다. 그러기에 작품에는 일상과 자연의 소리, 그 울림의 미묘한 순간을 조형적으로 포착한 흔적이 발견된다. 전준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있는 것과 없는 것, 사라지는 것과 생겨나는 것, 끝나는 것과 시작되는 것 등과 같은 순환을 삶의 이야기를 담은 소리의 조형성으로 승화시켜 관객에게 들려준다. 그의 조각에는 일상과 자연의 숨결을 오감으로 느끼게 하는 조형적 힘이 표상되어 있다. 그 힘은 묵직하고 곧으면서도 또한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발현되는 조형성에서 나온다. 이번 전시가 전준의 조각이 불러오는 삶의 울림, 그 소리를 관객들과 공유하는 즐거운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 임성훈

Vol.20140502h | 전준展 / CHONJOON / 全晙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