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4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3 GALLERY3 서울 종로구 인사동 5길 11 (인사동 188-4번지) 3층 Tel. +82.2.730.5322 www.gallery3.co.kr
어느 날 MAGNOLIA 태양이 젖었다. 레몬 빛 땅위로 젖은 태양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그 대지에 거대한 푸른 산이 차올랐다. 나는 그것을 '푸른 상'이라 가리켰다. 이 순간을 각인하는 푸른 상을 보며 봄으로 걸어간다.온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움직였다. 그리고 물을 뿜었다. 그리고 태양에 잠기었다. 가슴에 품고 타오르는 생각들과 따스한 온기에 누웠다. 감미롭고 나른하며 느린 리듬에 초대를 받았다. 한가로운 태양과 그토록 신비로운 고요함과 어렴풋한 냄새에 취했다. 깊은 거울을 들여다보니 세상은 뜨거운 빛 속에 잠들어 있었고 거기엔 모든 것이 있었다. 물기 있는 공기 속에 나비가 그리는 궤적과 현기증이 아닌 일랑임에서 시간이 흐른다. 나는 럼과 레몬과 물과 설탕과 그리고 박하를 마신다. 그때 그 속이다. 비로소 낮에 잠들었다. 나는 봄으로 다가간다. ■ 이자영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한 작업들에는 풍경을 다룬 것이 많다. 그 풍경들에는 내가 직접 가 본 곳과 책의 화보에 사진으로 소개된 곳이 뒤섞여 있다. 풍경을 그리는데 있어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보편적인 경험과 기억에 의해서, 화면에 칠해지는 물감에 상당히 즉각적으로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면의 위쪽에는 하늘색을 칠하고, 아래에는 그보다 살짝 어두운 색을 칠한다고 해 보자. 아래에 칠하는 색이 푸른색 계열이라면 바다를, 황토색이나 녹색이라면 벌판을, 회색이라면 도시의 일부를 각각 연상하게 될 것이다. ● 회화를 오로지 자기지시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모더니즘 운동의 시도는 매우 흥미롭지만, 그것이 위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인간의 지각과 기억을 환기시키는 친숙하고도 놀라운 그림의 힘을 압도해버릴 정도로 의미심장한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오히려, 회화에서 사람들이 찾아내고 개발해낸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이 과연 그렇게 상호배타적인 것인지, 작업을 하면서 문득문득 곱씹어보곤 한다. 푸생의 역사화, 벨라스케스의 초상화, 베르메르가 그린 인물과 실내(室內), 세잔의 풍경화 등은 거의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 그것은 그 그림들이, 마치 시간의 흐름을 동결시킨 것처럼, 순간과 영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임을 최근에 깨달았다. (물론 정지해 있는 이미지들은 모두 그런 상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를 우리의 의식에 새롭게 환기시켜주는 이미지는 결코 흔치 않다.) 세계 경험의 통로인 시지각의 영역과 회화의 내적 논리라는 기술(technique)의 영역을 동시에, 기존의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탐구한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 경험세계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초월하는 이 역설이 회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지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를 이 지점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기발하고 희귀한 소재와 형상보다는 주로 우리의 주변에 있는 것들, 즉 친숙해서 별로 생각하고 따져볼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친숙한 것들의 낯설음'이라는 초현실주의의 낡은 모토는, 세계에 대한 한층 더 근원적인 직관을 암시할 수 있다. ■ 임동승
정상곤의 화면은 들끓는 질료들의 혼돈 상태를 드러낸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유동적이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감이나 흔들림, 눅눅한 습기와 끈적임, 떨림의 상태로 자욱하다. 격렬한 운동감이 느껴지고 시간의 흐름과 그 풍경을 대면했을 때 파생되는 감각의 멀미들이 밀어닥치는 듯하다. 흡사 영상적으로 진동하는 화면이자 디지털적 감성이 아날로그적 그리기와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유화물감을 녹이는 용매제의 과잉은 화면 전체를 습하게 만들어놓아 화면 안에 놓인 물성들은 고정되지 못하고 부유한다. 물감을 묽게 흘리고 번지고 빠르고 격렬하게 붓으로 긋고 칠하고 문질러댄 자취들만이 가득하다. 필연과 우연이 공존하고 이미지와 질료가 넘나들고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하고 표면(껍질)과 깊이가 뒤섞이는,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회화다. 몇 겹의 층을 이루는 표면의 흔적이 얼핏 산과 바위, 폭포와 나무, 풀들을 떠올려준다. 그것들은 대기감 속에 아득하게 펼쳐져있고 습기와 바람, 훅 하고 덤벼드는 숲의 눅눅한 내음, 물소리 등을 환각적으로 안겨주는 편이다. 그림을 이루는 존재론적 조건인 물질과 용매재, 그리고 물리적인 법칙의 순응과 함께 몸놀림, 그림 그리는 매 순간 개입하고 반응하는 몸의 감정, 감각의 층차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흔적으로 가득하다. 경험했던 자연풍경을 기억하고 그림 그리는 순간 창문밖에 자리한 자연풍경을 바라보면서 파생되는 감정들을 수렴해서 매순간 펼쳐지는 물감의 물질적 기호들로 그려내고 있다. 나는 오래전에 그가 제작했던 일련의 석판화가 떠올랐다. 그 회화적 자취로 흥건했던 석판화 스타일이 현재의 풍경화에 오롯이 환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중략) ● 그는 캔버스에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그가 경험한 날것의 풍경, 그 풍경의 살과 내음을 표현하는 그만의 회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것은 있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으로 세계를 세우는 일이다. 기존 풍경화/회화라는 코드를 부단히 벗어나거나 갱신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상곤은 여전히 전통적인 매체인 캔버스와 유화, 붓을 통해 그리고 아날로그적인 그리기를 수행 하면서, 저 역사적인 풍경화를 다시 그린다. 그러나 그는 풍경을 다시 읽고 스타일을 문제 삼는다. 납작한 캔버스 표면에 감각의 줄질을 한다. 그래서 화면위로는 감각의 묘선들, 혼잡한 감각들이 이룬 붓질, 색채, 질료덩어리, 몸의 놀림들이 지나가고 얹힌다. 그가 칠한 색과 질료덩어리는 단지 윤곽선으로 이루어진 내부를 채우거나 장식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순수 상태의 회화적 사실을 구현해낸다. 자기 몸의 감각으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 세계/풍경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토록 얇은 표피위에 무한한 깊음을 갈망하면서 말이다. ■ 박영택
Vol.20140430f | 풍경하다 Nowhere Land-이자영_임동승_정상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