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考試院

박상희展 / PARKSANGHEE / 朴相姬 / photography   2014_0430 ▶ 2014_0506

박상희_고시원_잉크젯 프린트_125×10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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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4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Tel. +82.2.734.7555/+82.2.722.9883 www.topohaus.com

고시원 考試院 그와 그녀의 그 곳. ● '고시원'(考試院)에는 고시생이 없다. 고시원은 원래 각종 고시 및 시험을 준비하는 장기 수험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주거시설이었으나, 최근 수험생 이외의 사람들도 비용이 다른 주거시설보다 싼 까닭에 빈민층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 되었다. 고시원은 이제 역설적 이름이 되었다. 고시원은 어느새 도심 빈민들이 이용하는 쪽방이나 여인숙의 다른 이름이 됐다. 원래의 목적이 변질되어 빈민의 주거 형태로 바뀐 그곳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얽혀 산다. '수험생', '독신 직장인', '유흥업소의 종업원', '외국인 불법 체류자', '노인', '장애인',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그리고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등 도시 빈곤층이다. 이렇듯 현재 고시원은 단신 가구 형태를 보이는 도시 빈곤층의 불안정한 주거지로 자리 잡혔다.

박상희_고시원_잉크젯 프린트_125×100cm_2013

고시원은 매우 열악한 주거 공간이다. 폭 1m가 되지 않는 복도 사이로, 20여개의 방이 마주보며 늘어서 있다. 문을 열면 방 하나 크기도 3.3㎡(1평) 안팎에 불과하다. 고시원은 21세기 쪽방이다. 저 비용의 임대료만큼 최대한 많은 방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촘촘히 나누어 사람은 많고 통로는 좁다. 일부 '럭셔리한' 고시원도 있지만 일용직 노동자, 가난한 학생, 시골 출신 젊은이, 독거노인 등 보증금을 낼만한 형편이 못 되는 이들이 한 평 남짓 고시원 '쪽방'에 몸을 누인다. 도심의 이면에, 건물의 안쪽에 숨겨진 쪽방인 것이다. 요즘엔 새로운 사람들도 들어온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해외동포. 이들의 '코리안드림'은 고시원에서 자란다. 고시원은 각종 사회적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 소방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되어 발생하기도 한 곳이다. 심리적 불안정 공간 속에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그러다보니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회복지 그물망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샘이다.

박상희_고시원_잉크젯 프린트_125×100cm_2013

박상희는 불완전한 도시빈민들의 거주지『고시원』을 대상으로 작업했다. 작가가 선택한 『고시원』은 현재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서 분명 우리사회문제와 연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사회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려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내면의 불안과 그들이 욕망하는 심리적 상태를 관찰한다.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상 사물의 모습에서 그것이 놓인 흔적을 통해서 『고시원』공간에 떠도는 침묵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그렇다 해서 박상희『고시원』사진이 현재 한국 사회문제점들을 전혀 읽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언론에서 취급하는 동시대 한국사회의 수많은 문제점들과 박상희『고시원』사진이 코드화 과정을 거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사진이미지는 근본적으로 그러한 사회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주지 못한다.

박상희_고시원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13

우리는 사진의 객관성을 뉴스에 노출되고 이미 알고 있는 정보로 판단할 뿐이다. 그것은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미리 주워진 정보를 확인하고 사진에 대입하여 사실로 결론 내린 것이다. 즉, 사진 이미지 그 자체는 새로운 사실에 대한 정보를 결코 주지 못한다. 사진의 객관적 증거로 채택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사진에 찍혀진 대상이 현실의 사건과 사실들에 정확히 부합할 때 또 그 모습이 닮아있는 재현의 코드 일 때 가능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진에 반드시 적절한 텍스트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박상희의 『고시원』사진은 옆에 텍스트 대신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인물의 뒷모습이 고시원 방과 함께 나란히 놓여있기 때문에 단순히 『고시원』의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사건 중심의 보도사진의 범주를 넘어선다.

박상희_고시원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13

박상희 사진의 매력은 범죄현장을 방불케 하는 사물들의 어지러움과 사건의 단서를 추측케 하는 흔적에 있다. 주인 없는 빈방에 들어선 작가의 카메라 앵글은 사물들이 놓인 그것을 스캐닝하고 포착한다. 한 평 공간도 안 되는 그 곳, 『고시원』은 인간의 눈보다 더 넓게 포착되는 광각렌즈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고시원』사진에 찍혀진 공간은 도리어 실재공간보다 더 넓어 보인다. 그럼에도 방에 놓인 사물들은 소꿉놀이 장난감처럼 작아 보인다. 비좁은 공간은 렌즈의 원근감을 만나 뒤틀리고 기울어진 변형된 시각을 만들어 마치 설익은 잠속에서 잘 깨어나지 못하는 악몽 같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제 각각의 목소리를 품고 있다.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의 것인지? 무슨 연유에서 이곳에 놓였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사적공간을 엿보도록 노출된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물건들은 애정 없이 뒤섞기고 흩어져 정신분열적이다. 그것은 프로이드가 말하는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감정 즉, '집과 같지 않은', '편안하지 않은', 충만하게 채워지지 못하는 불안을 동반 한다. 어쩔 수없이 사물들이 놓인 흔적은 이곳이 정들 곳 없는 임시거처임을 증거한다.

박상희_고시원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13

박상희는 고시원의 폐쇄적인 특성상 거주자들의 내밀한 얘기를 끌어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거주자의 뒷모습을 선택하고 그들이 소유한 사물들을 함께 배치했다. 여기서 뒷모습의 초상사진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대신 침묵의 목소리로 고시원 방의 사물들에 달라붙어 텍스트로 기능한다. 뒷모습의 그와 그녀 앞에 놓인 방 번호(208, 303, B06)는 그와 그녀의 자신의 방임을 알리는 키워드다. 뒷모습과 방안 사물들의 배치 속에서 결합하는 두 개의 이미지는 어느 순간 서로를 간섭하는 텍스트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한다. 그 사람의 뒷모습은 자신의 방에 함께 기거하는 사물들과 닮아있다. 그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 금빛 가발, 뒤집어쓴 후드달린 스포츠웨어는 그와 그녀의 취향을 가늠하는 얼굴 없는 목소리다. 좁은 방에 아무렇게나 놓인 사물들 또한 그 곳에 거주하는 그와 그녀의 내밀한 욕망의 색깔들을 품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그와 그녀의 개별자로서의 고유한 취향을 표상하는 사물들이 아니다.

박상희_고시원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13

박상희의 『고시원』사진은 우리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자본주의가 우리의 욕망을 저당잡고 있다는 증거의 공간『고시원』에 관한 문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다루는 일상사물의 놓인 흔적을 통해서 불안한 심리적 묘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손바닥만 한 창문조차 사물들에 가려진채 함께 기거하는 그와 그녀의 뒷모습의 시선은 욕망을 움츠린 불투명한 유리창처럼 외부를 향하지 못한다. 마치 현대사회가 부추기는 욕망의 실체를 감추고 내면화 하듯이 어떤 개별자도 그곳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감추면서 드러내는 이 시선의 어긋남을 벗어날 수가 없다. 고시원은 마치 자본주의사회가 잉태한 장소 성, 그 안에 감추어진 욕망의 내장기관처럼 사물들이 방치되어 움직인다. 사물들의 흔적은 언제나 추측과 상상력을 촉발할 뿐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와 그녀의 그곳 고시원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곧 성공해 이곳을 나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사는 잠시 정들 곳 없는 임시거처 공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꿈은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누군들 이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살 수 있겠는가! 내 욕망의 거처는 이렇듯 현실에 발목 잡혀 있다. ■ 이영욱

Vol.20140430b | 박상희展 / PARKSANGHEE / 朴相姬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