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423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 문진영_박진화_백인태_이민정_이혜승_조현지_허수영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율곡로 33(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2014 그림보기』는 아무래도 기획전 전시 타이틀로는 간도 하지 않은 심심한 설렁탕 같은 제목이라는 생각이다. 어찌 보면 건강을 생각하는 요즘 짜지 않은 저염식의 제목이 마음에 들기도 한다. 본 전시는 2013년 하이트 컬렉션에서 『한국의 그림-매너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회화 기획전에서 힘을 얻어 본인이 그 동안 보아온 아래 작가들의 조합으로 꾸며본 작은 전시이다. 작가들 간의 다른 주제나 그리기 형식이 조화롭지 않은 불협화음을 내며 매력적으로 보이길 기대한다.
하루의 일상 중 어떤 것이라도 글로 표현해 주길 바라며, 작은 부분의 디테일도 좋고 "날마다의 생활"인 일상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어도 무방하다. 평소에 무엇을 먹는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글? 작가의 작업실인 여기, 그리고 아시아의 대한민국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 시대에 예술이란 이름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작가들의 그림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라는 취지로 작가들에게 다음의 내용으로 짧은 글을 부탁했다. 지금도 많은 회화 전시들이 있지만 또 다른 조합의 그림 전시들이 정밀하고 싱겁게 조립되고 해체되길 기다린다. 추상과 사실주의, 인식과 흔적, 형식과 무모함, 작은 것과 큰 것, 속도, 본 것과 기억되는 것... "풍경과 나 사이에는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의 얼룩을 통해 풍경이 보인다. 유리창에 붙었던 스티커 자국을 통해서 바다가 보인다. 내가 보는 망막과 대상까지의 사이에는 여러 겹의 막이 있다"
어떤 그림을 보고 그 여러 겹의 막을 생각하는 것이 화가의 의무인 양 내 작업노트에 적어놓았다. 자주 기억되는 그림은 좋은 그림일까? 무엇인가 불편한 것일까? 희한하게도 그림 속에서 큰 붓질은 하늘도 되고 모래도 된다. 이것이 회화다. 아마도 그 시답지 않은 유일성 때문이겠지만 손으로 그린 그림은 영원할거라고들 한다. 화가들은 그 유일성만 믿으며 작업하면 되는가? 포스트모던 후기라는 현재 우리의 작업은 영상, 입체 만들기, 세대를 표현하는 작업, 설치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겨우살이처럼 개념을 펼치는 방식만이 세련된 것일까? 좋은 추상은 어떤 것일까? 정말로 그림만 그리면 판매가 되는가? 회화는 모두 장식인가? 회화의 어법은 이미 진부한 종말인가?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숫자는 왜 이렇게 많은가? 호크니David Hockney는 이 시대에 그림으로 어떤 주장을 하려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고, 나는 그림으로 어떤 주장을 하려면 다시 한 번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느냐고 자문한다.
이혜승의 그림은 그리기의 원초적인 시원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 첫인상이었다. 그는 공간과 자연을 분리해서 작업을 진행하며, 이번 전시에는 지평선이 끝나는 이국적인 풍경을 그린 그 림이 나온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자연이나 공간의 공통적인 느낌은 묵시적이다. 소실점을 향한 그림 풍경 속으로 나는 하염없이 들어간다. "내장은 불확실한 생을 표상하고 뼈는 죽음을 표상한다." 하루키Haruki Murakami의 「메타포적 인체모형」이라는 에세이에 쓰여 있는 글처럼 플레이스 막에서 본 이민정의 크지 않은 그 그림은 그렇게 파랗게 그림에서 뼈가 빠져 나가고 남은 껍질로 이루어진 그림으로 읽혀졌다. 다른 그림들에서도 여러 가지 상상을 기웃거려보는 와유의 느낌이 있다. 적극적으로 읽어내는 것보다 심심하게 기웃거리는 것처럼 그림의 이곳저곳을 서성인다.
부산에서 손으로 당뇨 환자를 위한 빵을 만들고 있는 문진영의 손으로 그린 그림은 그가 만나는 환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에게 이전에는 없었던 사회속의 관계성을 최소한 회복시켜주는 긍정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를 바란다. 세월과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이에 개의치 않고 화면을 채우고 그려나가는 밑도 끝도 없는 그의 슈퍼 울트라 마이크로 초 추상성은 무엇일까? 그 예민함을 잊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허수영의 '책 한권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다 그리기' 작업은 무모한 듯 회화의 한줄기 빛이었다. 그러나 그 무모함은 아득해지고 그림이라는 강력한 전류가 자장이 되어 자신의 방어기제가 된다. 그것으로도 훌륭했는데 한 화면에 사계절을 그리고 또 그리고를 반복해서 자신의 붓질을 지우고 있다. 그의 행위는 지나가고 그림만이 남는다.
박진화의 죽도록 빠른 기계적인 손놀림은 거대한 서사, 긴 대하소설 같은 크기의 그림과 드로잉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몸짓, 드로잉의 무수한 선과 그림의 현란한 색채와 커다란 화면에서 붓질의 쪼개지는 세계를 본다. 나는 그의 그림에서 엄청난 속도를 읽는다. 그의 캔버스는 생각이 혼합되는 장소이며 물감이 생으로 섞이는 팔레트다. 조현지의 상상력은, 결코 꾸며진 것이 아닌 자유롭고 거침없는 드로잉의 제스쳐나 헛짓들은 불확실한 삶에 대한 저항과 부대낌을 이겨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다 미래와 현재에 대한 불확실로 살아간다. 확실한 것은 미래도 아니다라고 한다. 저 부러운 자유로움은 오로지 그 자신의 원동력이다.
백인태는 영수증 종이에 자신에게 다짐하는 경구 같은 글귀들을 써넣는 낙서작업과 기억에 의한 담담한 작은 수채화를 그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새벽의 푸른 형광등 빛 밑에서 쓰인 글들은 유머러스하며 처연하다. 그 상황이 영화의 장면처럼 상상된다. 또한 얼굴을 성형하듯 자신의 살갗과 근육을 벗겨내 해부학적인 표현으로 자신과 우리의 상흔을 위무하듯이 표현한다. ● 화가에게 무기는 그림일 텐데, 우리는 화가들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나?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무기를 내려놓지 말자.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한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미완의 시대』) 그림 또한 그렇다. ■ 김지원
Vol.20140427a | 2014 그림보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