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42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192 GALLERY 192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이화장길 86-24 Tel. +82.2.745.0180 www.gallery192.com
고독을 사랑한 철학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 가장 생명력 넘치는 것이 가장 야성적이다. 나에게 미래와 희망은 잔디나 경작지, 도회지나 마을 안이 아니라 탁하게 물을 머금은 습지에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야성과 습지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 난 '인간에게 있어 야성이란 가장 순수한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머무르게 되었다. 탁하게 물을 머금은 습지 또한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순수함의 본질은 야성이며, 야성적일 때 생명력이 넘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았던 이태원은 야성이 가득한 낯선 곳이기도 하다. 다문화적인 코드와 거기에 나타나는 소외문화, 저항문화 등의 집합체이며, 미군이 떠나간 거리에 다양한 계층과 인종, 성이 뒤섞여 사는 해방구로서 민족정체성이 아닌 인종정체성에 대해서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낯선 곳이다. 이러한 이태원의 낯섦 또한 익숙함에 점차 무뎌질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 낯섦은 나의 야성에 꽈리를 틀고 있지 않을까? 이렇듯 나의 작품은 이태원의 낯선 풍경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 낯섦이란 나를 중심으로 생성되는 불안감과 낯이 익지 않은 환경, 아우러지지 못하는 나의 모습, 이런 것들로 정의되는 하나의 형용사이다.
400kg이 넘고 시속 60km로 질주하는 말은 과거에 인간의 교통수단과 전쟁의 도구로 길들여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말이란 존재는 원래 나뭇잎을 먹는 고양이만한 크기의 동물이었다. 초원이 생성되면서 초원의 풀을 바탕으로 진화한 자연의 상징물이다. 사람들의 교통수단으로 길들여지면서 우린 하늘에 떠있는 구름처럼 말의 모습 또한 익숙함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의 입장은 다르다.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말의 모습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이미지의 상징일 뿐, 자연을 누비며 바람처럼 달렸을 말의 자유와 야성은 어느새 인가 사라졌으며 말은 인간의 도구로 인식됐다.이러한 말의 모습은 현실과 사회질서에 길들여져 야성을 잃고 사는 나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 캔버스에 표현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바다를 누비는 자연의 상징이다. 우린 가끔 이러한 상징들을 등급이 주어진 식생활에 필요한 도구로만 인식할 때가 있다. 나는 이러한 상징들의 조합을 낯설게 인식하고, 시간과 과정이 만들어낸 익숙함에 숨겨져 있는 낯섦을 보여주고자 한다. ■ 김상현
Vol.20140425b | 김상현展 / KIMSANGHYUN / 金尙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