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424_목요일_04:00pm
참여작가 2014년 선정작가 / 백승아_양유연_이시원_이자용_이지영_이현호_전병윤 畵歌전 역대작가 / 권인경_김신혜_김윤아_김은술_박미진_윤정원 이주희_임희성_최현석_허현숙_황나현 특별초대작가 / 김은형_오숙환_이정배_임채욱_정종미_조환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석가탄신일 휴관
(재)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한원빌딩 B1 Tel. +82.2.588.5642 www.hanwon.org
동시대를 사유하는 컨템포러리 한국화 ●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지각하는 자이다. 모든 시대는 그 동시대성을 체험하는 자들에게는 어둡다. 따라서 동시대인이란 이 어둠을 볼 줄 아는 자, 펜을 현재의 암흑에 담그며 써내려갈 수 있는 자이다." - 조르주 아감벤 ● 컨템포러리의 물결 위에 지금 우리시대는 물질 · 인지자본의 홍수 속에서도 언제나 갈증을 호소한다. 전에 없던 새롭고 신선한 것,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한 것, 단 번에 시선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것들이 우위를 점하면서 가치는 매일 전복되고 있다. 창조는 혼성모방이나 차용과 혼동되며 유행을 낳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노는 관습의 세계는 이벤트를 갈망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경쟁이 되는 이 세계에서 오늘의 새로움은 곧 내일의 진부함으로 금새 퇴색된다. ●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경쟁사회에 돌입하면서 문화예술의 생산, 교류도 전지구적 차원으로 진행되어오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응의 속도와 폭은 더 즉각적이고 넓어졌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비평관점, 새로운 예술양식에 대한 갈망은 20세기 이래 최고조에 달하는 것 같다. 20세기말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느슨해지기 무섭게 21세기 첫 10년이 지나면서 시각예술은 또 다른 이즘으로 동시대를 규정하기도 한다. 하나의 이즘이 비판이론에 부딪히면서 제3의 이즘으로 대안을 형성해왔던 변증법적 전개방식은, 이제 유사한 담론이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반복되는 동시대 미술흐름의 곡선에 적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 20세기 말부터 회자되었던 컨템포러리 아트의 성격규명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21세기인들은 세기의 첫 10년을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post-postmodernism), 포스트-컨템포러리(post-contemporary), 얼터모던(altermodern) 등으로 지금 사는 시대, 혹은 바로 어제의 성격을 빨리 규정하고 싶어한다. 내일의 유행 선도, 새로운 기술개발 등으로 미래를 선점하려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의 논리는 문화예술영역에서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내일 전개될 예술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오늘에 대한 평가는 신속하지만 미완의 것일 수밖에 없다. ● 한국화라는 기표의 그림들은 동시대적인가 세계 각지에서 전개되어온 현대미술은 단선적인 양식사와 담론의 생산을 중심으로 한 서구 미술사에서 벗어나 그것이 포함하지 못했던 지역, 동시대 여러 층에서 형성된 소수의 미술양식, 운동 등이 재검토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즉 독립적이고 단절적으로 전개된 현대미술의 역사는 이제 동시대성이라는 포괄적 틀에서 통합하여 사고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미술은 오늘날의 복합적인 시간적, 공간적, 지역적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방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동시대 미술도 마찬가지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것이 국제적인 관계망 속에서 읽혀져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전 세계의 정치, 경제는 하나의 연쇄적인 사슬망으로 구성되듯, 한국의 동시대미술도 그러한 세상의 본질,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동시대미술은 세계 전체에 대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특정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 동시대미술의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국이라는 지역의 미술, 그 속에서도 한국이라는 지역을 기반하여 역사적으로 변모해온 한국의 동양화, 혹은 한국화라는 기표의 그림들을 살펴보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 그림들에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양식, 새로운 개념, 그러면서도 보편적 공감을 얻어내려는 컨템포러리의 욕망을 찾아낼 수 있을까? ● 현대 동양화, 한국화에 대한 그간의 전통성과 정체성 논의들에서 얻어지는 결과는, 그 이름의 범주 안에 가둘 수 없을 것 같은 매체를 포용하고 이 장르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동시대적 감각과 공감의 획득이라 할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매체의 선택이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한국을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하고 이 지역의 문화코드나 정서, 사회 갈등과 모순, 삶의 방식과 제도, 정치, 권력과의 관계 등 이 시대를 사는 예술가의 섬세한 시선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전제 속에서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매체의 실험에서 이제는 형식보다 개념, 주제의식을 탄탄하게 갖춘 작가개인의 해석과 그에 따른 표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독자적인 표현의식에서 동양적인, 한국적인 재료나 감각은 저절로 발현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한국의 DNA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동시대미술에서의 寫意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의 세계는 서구중심에서 벗어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며 합리주의의 사고방식, 직선적,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찰나적이면서도 윤회적인 동양적 시간개념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동양적 사유가 새로운 시대의 대안적 사고방식으로 등장하게 된 데에는 아시아의 경제성장과 문화적 교섭을 배경으로 주체와 타자, 중심과 주변, 진보와 퇴보 등 사회를 구분짓는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더 이상 미래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데 그 주요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이후 작업의 주요한 원리가 되어 온 개념주의는 미술이 시각적 유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하나의 창이자 표현의 매체라는 본질적 기능을 보다 직설적으로 내세운 것이며 여기에는 창작 주체의 세상에 대한 자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객관 세계, 사물에 대한 주체의 자각, 인식을 그림의 주요한 원천으로 삼는 방식은 이미 동양미술에서 오랫동안 추구해온 지점이다. 특히 중국 송대(宋代) 이후 적극적으로 전개되어온 문인화(文人畵)는 사실 위주의 서양회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회화적 표현으로 주체의 철학과 인격, 지식을 주요 성분으로 하고 있다. 그림의 외적 조형보다는 객관대상의 정신과 본질, 나아가 작가 주체의 문화적 소양과 기질을 표현하는 "사의(寫意)"는 문인화의 주요 개념으로, 동양 회화가 추구하는 정신성을 상징하는 표현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 '의(意)'는 문인화가 추구하는 시화일치(詩畵一致), 시정화의(詩情畵意)와 같이 시적 정취나 풍정(風情)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한 의기(意氣)는 자연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독자적인 해석에서 발현된다. 풀 한 포기에서 유토피아, 혹은 시대의 어둠을 읽고, 그것으로 자연 전체, 세계 전체를 환원하려는 옛 문인들의 철학과 미의식에서 시대를 꿰뚫어보려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태도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 이 시대 가속화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시대를 재빠르면서도 깊숙이 관망하려는 욕망은 이 시대 미술의 역할이다.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이 정의한 동시대성이란 "거리를 두면서도 들러붙음으로써 자신의 시대와 맺는 독특한 관계"이자, "아주 정확히 시차와 시대착오를 통해 시대에 들러붙음으로써 시대와 맺는 관계"이다. 동시대인은 시대와 너무 완전히 일치하는 자들, 모든 점에서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는 자들이 아니라 시대의 어두움을 먼저 볼 수 있는 자이다. "참으로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지 않는 자, 자기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자, 그래서 이런 뜻에서 비시대적인·비현실적인 자"이며, 바로 그들은 예술가이다. ● 본 전시는 한국화 장르의 지속적인 성장을 지원하고 신진 한국화 화가의 발굴이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화가(畵歌)_그리기의 즐거움』 전 5주년 특집으로, 2000년대 이후 매체와 주제의식 등 표현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지금의 한국화가 동시대미술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의 위치를 진단하고, 현재 동시대미술이 지향하는 글로벌리즘의 공간 속에서 소통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매체의 힘은 무엇인가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올해 선정된 신진작가 7명의 작품세계를 통해 젊은 세대의 감성과 실험이 반영된 작품을 살펴보며 역대 화가전 참여작가 11명의 작품들에서는 그동안 (재)한원미술관의 신진발굴 성과와 그들의 깊어지는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화의 양상을 짚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특히, 현재 화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초대작가 6명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통해 동시대적인 미술로서 한국화의 방향을 제안해 본다.
선정작가 7인의 작품세계 ● 백승아와 이시원은 몸에 대한 사유를 각기 물화된 대상과 심리적 자화상으로 그려낸다. 작가 백승아는 카메라의 시선이 아닌 자신이 바라보는 몸에 대한 다양한 각도를 한 화면에 제시하고 있다. 자신을 구성하는 신체를 하나의 대상이자 대지로서 바라보는 태도는, 다시점을 통해 자연 전체를 조망하려는 산수화의 삼원법 원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와 달리, 울퉁불퉁한 신체의 굴곡과 먹의 번짐과 스밈으로 사라질 듯 나타나는 실루엣으로 표현된 이시원의 회화 속 몸은 사회구성원들의 마음 속 불안을 표현하고 있다. 각자의 지위와 역할이 요구되는 생활인으로서의 인간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충족되거나 그렇지 못할 때 발생하는 갈등이 뒤틀린 신체의 몸부림으로 나타나고 있다. 몸으로 드러나는 심리적 표정읽기, 객체화된 신체에 대한 이들의 탐구는 세상을 표현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예술가 본연의 태도로 보인다. ● 현대인의 개인적 상처와 사회 속에서의 압박감 등 불안한 심리의 표정은 양유연의 그림에서 익숙하지만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벽의 균열된 틈, 흐린 창가, 주변의 일상 등 무심코 지나치는 권태로운 생활의 단편에서 환상을 읽어낸다. 몸의 상처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습하고 초라한 풍경에서 현실이 아닌 우주를 보게 된다. 이러한 역설적 표현은 주변과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예술적으로 서술하는 작가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 작가개인의 심리를 풍경에 은유하는 방식은 이자용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메마른 언덕 위에 고개 숙인 사람들, 광활한 눈밭의 풍경, 안개 속의 집, 자욱한 먹구름을 머금은 집 등과 같이 그의 화폭에 등장하는 공간은 한없이 쓸쓸하고 외롭다. 특정한 주제보다 작가 개인 삶의 은유는 신진의 솔직담백한 태도로 보인다. 대상에 대한 해석이 있기 이전에 철저한 관찰과 기록은 화가의 주요한 몫이다. ● 이현호는 자연풍경을 마주한 꾸준한 시선 속에서 발견되는 질서와 미묘한 변화를 채색물감으로 층층이 쌓아올린다. 그의 화면 속에서 대상은 실제보다 더욱 밀도있는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다. 화면에 들어 찬 하늘, 나무, 들에서 느껴지는 대자연의 고요하고 느린 변화는 초고속 사회의 숨막히는 풍경을 사는 현대 도시인의 이상향일 것이다. ● 세상을 보다 원거리에서 조망하는 작가의 시선은 이지영의 작업에서 풍자적으로 나타난다. 고대 동양산수의 고졸한 표현방식을 차용하여 사회와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다루는 작가는 무릉도원과 같이 형상화된 산수를 사실 인공의 조경으로, 그 속에서 유희하는 인물들을 획일화된 표정과 동작으로 묘사함으로써 사회적 욕망을 양산하는 구조적 틀 속에서 존재하는 현대인을 풍자하고 있다. 고대의 양식으로 현실세태를 묘사하는 이러한 방식에서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현대 한국화의 유쾌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 한 시대의 표현양식이 동시대의 내용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음은 전병윤의 회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양화라는 용어가 탄생한 근대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시대양식, 즉 일제 강점기 일본인의 입장에서 장려된 향토색이라는 식민주의 회화방식에서 다룬 수동적이고 원시적인 이상향으로 묘사되는 조선의 풍경을 현 한국사회의 다문화가정에 적용하고 있다. 적막한 자연을 배경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이주 여성의 모습과 아버지-지배계층인 한국인 남성-의 부재는 일제 강점기 향토색 회화에서 원시적으로 그려진 농촌의 여성과 소녀, 소년 등 수동적인 이미지의 피지배 공간을 묘하게 데자뷰시켜놓았다. ● 이들 7인의 선정작가를 통해 현대사회에 대한 작가의 외적, 내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으며 더불어 한국화에 대한 구속을 벗어나면서도 그 범주 속에서 자유로운 시도를 읽을 수 있다.
역대 참여작가 11인의 작품세계 ● 한지라는 전통의 바탕 위에 현대적 감각의 동양화를 그려내는 작가들을 조명한 제1회 『화가_그리기의 즐거움』에 출품한 권인경, 김신혜, 박미진, 윤정원, 황나현 작가는 2010년 본 미술관 전시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들이다. 권인경은 아크릴 물감이나 콜라주,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이미지들로 작가의 주변을 둘러싼 소소한 일상의 사유와 경험을 시각화하고 있으며, 김신혜는 생수병의 라벨과 같은 상품 이미지를 전통산수화의 형식과 오버랩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전략에서 그려지는 이상세계와 전통 산수화의 이상향을 대비시킨다. 박미진은 살아있는 생명체인 인물과 나비를 마치 박제된 나비처럼 평면에 고정하여 그려냄으로써 인공적인 미의 허상을 일깨운다. 그 익명의 이미지는 작가내면에 형성된 허구적 형상이다. 윤정원은 국화로 대표된 태양이미지와 날개를 결합한 특정 도상의 연출을 통해 우주의 경이로운 존재감에 관한 감동과 시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국화와 새, 별이라는 이질적인 생명들의 공존을 통해 생성과 소멸의 상징성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황나현은 자연의 일부이자 그 자체가 바로 자연인 얼룩말을 통해, 자연을 갈망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원초적 회기 본능을 가진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다 ● 재료와 기법을 넘어서는 실험성과 참신함을 보여주고자 한 제2회 『화가_안과 밖의 표정』에서는 김윤아, 김은술, 임희성의 작업을 통해 신진 한국화가들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윤아는 익숙한 도시풍경을 색다르게 표현함으로써 차가운 도시를 화려한 색으로 물들인다. 작가 내면의 창을 통해 낯익은 풍경은 낯선 세계로 변모한다. 김은술은 어린시절의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의 소풍이나 여행과 같은 추억을 버스, 건축물에 넣거나 쌓아 올림으로써 순수한 동심의 세계관을 그림에 유쾌하게 담아낸다. 임희성의 풍경은 콜라주처럼 잘려진 형태로 묘사됨으로써 그것이 차가운 수직의 콘크리트 도시의 느낌을 반영하는데, 잘려진 풍경에서 이 시대의 감성이 상징화되었다. ● 제 3회 『화가_고전은 숨쉰다』에서는 전통의 방식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작가들의 실험적 태도에 집중하였다. 최현석은 궁중기록화의 기법, 특히 부감법과 사실성을 계승하여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기록은 작가의 관점이 반영된 주관적 사실이며 이러한 작업은 매스미디어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을 풍자하는 작업이다. 제 4회 『화가_사유의 방식』에서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느린 사유와 간결한 표현으로 작가의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한국화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주희는 뚫린 공간 속으로 먹을 중첩시키고 채색안료를 뿌리는 스텐실 기법을 통해 익숙한 일상의 장면을 '낯선 풍경'으로 연출하였다. 허현숙은 유년기를 보냈던 기억 속 동네풍경을 새롭게 구축하여 자신만의 도시 계획도를 부감기법으로 구성한다. 이들의 작업은 현재와 과거의 풍경을 느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려냄으로써 작가 자신과 관객의 감성을 치유한다. ● 역대 화가전 참여작가 그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한국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그들 마음 속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이제 신진에서 더욱 성장한 그들의 다음 노래를 기대해본다.
초대작가 6인의 작품세계 ● 김은형은 오페라에서 받은 영감을 기반으로 오페라가 지니는 시각적 재해석을 현대미술의 복합적 양상에 적용한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서 주는 시각적 상상력과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서 나오는 장면을 드로잉하여 종이조각이나 벽화로 표현해 온 작가는 드로잉이라는 즉흥성을 통해 작가의 예술적 역량을 일필일기(逸筆逸氣)로 보여준다. 오페라는 서사적 구조 속에 청각과 시각적 이미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오페라의 서사적 감동과 더불어 그 이미지들이 남기는 시적 정취는 장르의 다원화가 이루어지는 동시대 미술의 양상과 닮아있으며 동양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시도는 신선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 이정배의 작업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산수화가 어떤 형태와 색으로 귀결되는가를 연구"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하나의 이상향으로 존재해왔던 산수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구조물로 훼손되거나 그 속에 욕망으로 가득찬 인간의 모습을 채움으로써 "분열된 산수"를 형상화한다. 국가안보라는 미명 하에, 혹은 멋진 풍경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으로 설악산은 온갖 구조물로 채워진 하나의 '스튜디오'가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자연 조망권을 경쟁하는 고층의 주상복합빌딩으로 채워지는 도시 속 자연의 모습을 통해 변화하는 지형을 묘사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욕망화된 풍경과 전통 산수화가 지향하는 이상적 풍경 간의 대비를 통해 작가는 진정한 인간의 이상향을 발견하고자 한다. ● 임채욱은 작가가 여행하면서 발견한 이상적인 산수의 풍경을 한지에 인화하여 작품화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은 언제나 인간의 정복욕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그 기운을 통해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느끼게도 한다. 작가는 산을 미적 형상으로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대상으로 의식한다. 따라서 그의 시선에 포착된 산의 모습은 전지적 시점에서 기운생동하는 자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가벼운 한지의 특성을 이용하여 인화된 사진을 구겨서 부조형식으로 전환된 그의 사진에서 굴곡진 산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임채욱의 작업은 회화와 사진의 경계에서 더욱 강렬한 현대적 진경(眞景)을 추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수묵의 심오한 깊이감을 통해 대자연의 형상을 시적으로 형상화해온 오숙환은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된 수묵실험을 통해 현대 한국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장본인이다. 대지와 하늘의 추상적 변이를 수묵이 지닌 정신적 깊이와 감성을 이용하여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내고 있다. 자유로운 먹의 운용을 통해 빛의 세계는 물론, 시간과 공간이라는 우주를 구성하는 추상적 개념을 중진의 원숙한 기운을 담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직 수묵만으로 현대적 감각을 살려낸 그의 수묵화에서 동양화가 추구하는 정신성을 보다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정종미는 한국의 벽화와 불화, 민화 등 전통회화에 나타난 조형 언어를 현대화하는 작업은 물론, 콩즙과 들기름을 주재료로 한 독특한 채색 기법으로 현대적 산수를 시도하였으며, 한지를 새롭게 해석한 「종이 부인」시리즈로 새로운 한국화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신윤복의 미인도에 대한 자신의 감동을 작품에 담았다. 한지의 우아한 색채감을 통해 미묘한 여인의 성정을 표현한 「미인도」는 욕망과 절제, 눈빛의 우수와 신비감 등 그가 원화에서 느낀 세밀한 감각을 한지의 다양한 색으로 표현하였다. 그에 의해 재탄생된 미인화는 성형으로 얼룩진 이 시대의 미인상과 외모지상주의에서 잃어가는 진정한 미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준다. ● 조환은 만들기를 통한 그리기 작업으로써 대상에 대한 관점을 더욱 확장시키고 역으로 그리기의 본질을 발견한다. 조소작업으로 재탄생한 추상적 산수와 사군자는 필묵으로 이루어진 추상성보다 더욱 강렬함을 준다. 용접조각으로 이어지는 행위의 과정 속에서 작가는 동양화의 기본적인 점과 획에 대한 근본적 깨달음을 발견한다. 또한 그의 작업은 그려진 가상의 실재와 실재하는 오브제 사이의 간극을 오가고 있다. 회화 밖에서 회화를 발견하려는 이러한 메타적인 시도를 통해 작가는 "본래의 지필묵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개별성을 더욱 심화시키려는" 작업이 더욱 명료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 오랫동안 한국화의 영역에서 분명한 작업 의식을 구축해온 중진작가와, 보다 실험적인 청년작가로 구성된 이들 특별초대작가들을 통해 현대 한국화의 컨템포러리한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컨템포러리의 물결 속에 일렁이는 파장을 끊임없이 수렴하며 여기에서 이들의 작업에서 한국화의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동양화의 주요 개념 중에서 대상의 본질과 세계에 대한 깨달음, 그것을 우의적으로 표현하는 '사의(寫意)'라는 예술적 태도는 과거에 사멸한 개념(死意)이 아닌, 오늘날 한국화를 동시대적인 시각에서 평가할 때 주요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두운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끊임없이 현재를 벗어나려는 동시대의 예측불가능한 역사를 읽어내려는 지적, 감각적 욕망은 사의적 태도에서 발현된 이들의 작품을 통해 이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재)한원미술관
Vol.20140424f | 그리기의 즐거움_畵歌(화가):寫意(사의)찬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