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김창규의 대리석 조각 ● 대리석 조각. 그것은 서양미술을 받아들여야 했던 우리의 기억 깊숙이 남아 있는 서양미술의 원형 중 하나이다. 작은 흠결도 찾아낼 수 없이 완전하고 이상적인 그 인체미의 결정체는 이미 기원전 고대 그리스에서 완결되었고, 로마인들은 그것을 대리석으로 모각하였다. 이천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같은 이탈리아 사람 미켈란젤로의 시대에 그 유명한 「라오콘」은 다시 빛을 보았고, 그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돌에서 형상을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그 말은 일면 대리석이라는 재료가 전제되었기에 가능한 '신념'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단한 화강석으로 불상을 쪼아내야 했던 신라의 석공에게는 쉽사리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그 조각상들은 석고상으로 화하였고, 지금도 조각을 배우는 학생들은 흙을 들고 그림을 배우는 학생들은 연필과 목탄을 들고 그리스 이래의 '미의 현신'을 모방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조화와 균형, 그리고 비례를 잘 갖춘 신체가 아름답다는 생각에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겠지만, 배움의 시작부터 미의 모범을 여전히 인체에 두고 따르며 숙달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얼마나 유효하고 타당한 것일까... 우리는 지금도 이상적인 신체를 통해 영원한 정신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으며, 그런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필요한 기술을 숙련하고 제작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조각가 김창규는 자신의 이력 후반기부터 대리석을 재료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까라라에 교환교수로 머물면서 그곳 대리석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부터 서로 대비되는 이질적 요소를 균형 속에 조화시키는 작업을 해오는 가운데, 자연석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함께 사용해서 작품을 진행하던 무렵이었다. 이미 조각의 재료가 되어 있던 산업제품이나 단단한 우리나라의 돌을 주로 사용하던 그에게 이탈리아의 대리석은 매우 흥미로운 재료였으며, 나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매우 강렬한 조형적 의욕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대리석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조각은 아주 오래전 그곳에서 완결된 바 있는 이상적인 인체는 아니었다. 재료의 속성을 최대한 발현하되 이제까지 추구했던 자신의 조형관이 담긴 무엇이어야 했던 것이다.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조각의 극단까지 형식적 실험을 이미 오래 전 거쳐 온 이력을 가진 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그러한 그가 근자에 보여주었던 작품은 구(球)나 물방울, 또는 직육면체 등을 결합하여 거의 완전한 좌우대칭 구조를 가진 대리석 조각이었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획되고 절단된 석판과 안쪽을 파낸 구체를 접합하고 최대한 공을 들여 마감한 외관은 마치 주물을 떠 다듬은 듯 정밀하고 매끄럽다. 무르지만 조밀하고 차진 대리석의 물리적 속성이 발현되고 있으면서도 기하학적으로 환원된 조형요소들을 대칭과 대비의 구성 속에 조화시키는 그의 조형적 관심이 반영된 작품들이다.
이번 개인전에는 그러한 시도를 보다 집약적으로 담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에 비해 크기가 커진 수도꼭지를 주요 모티브로 삼아 화병, 혹은 기둥 형태의 구조물이 받침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형식이다. 이전까지 그에게서는 구체적인 형상의 표현은 볼 수 없었다. 물방울도 하나의 형상이라면, 그것을 포함해 수도꼭지가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한 형상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여정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재료로 돌을 선택했다는 것과 구체척인 대상의 재현이 나타났다는 것은 재료와 기법 모두에서 전통적인 조각으로 이행하였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산업 생산물을 재료로 하는 환원적 양식이 주류를 이루었던 1970,80년대의 그것, 즉 그가 조각을 시작했던 시절의 그것으로부터 전면적으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보여주고 있는 재현은, 대상의 모방이라는 의미에서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재현이라는 말이 표상하는 것의 형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수도꼭지나 물방울은 하나의 대상의 재현이라기보다 조형예술의 오랜 기능인 재현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조각은 어느 사이엔가 극단까지 밀어붙여졌던 모더니즘 조각을 전통적인 조각과 화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화해라기보다 전환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문제제기의 한 양상이라 해야 할 것이지만.
그의 작업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LED램프이다. 지난 전시에서 속을 비워낸 대리석 안에서 희미한 빛을 내던 광섬유가 LED램프로 대체되어 보다 강한 빛을 투과한다. 이 램프는 하단의 밝은 색 대리석 안에만 설치되어 밝았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면서 어둑한 전시장 안에서 상단의 수도꼭지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역시 그의 초기 작품부터 유지되고 있는 상반되는 두 요소의 대비와 조화, 또는 균형이라는 조형상의 기질적 특성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해서 대리석 속에 들어 있는 '형상'을 말끔하게 꺼내 놓은 듯이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조각이 '공간'에 부유하듯 존재를 드러낸다. 분진과 튀는 물을 막기 위해 어부인지 잠수부인지 알 수 없는 차림으로 작업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에서 대리석이라는 재료, 그리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이 표현할 수 있는 극단까지 철저하게 밀고 가려는 그의 철저한 근성을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대리석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에. 대리석이 이상적인 인간의 형상을 만드는 데에만 적합한 재료는 분명 아닐 것이다. ■ 박정구
Vol.20140423f | 김창규展 / KIMCHANGKYU / 金昌圭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