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42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임수빈은 이번 전시에 갑각류와 패류의 이미지가 혼합된 묘한 생명체의 형상을 한 작품들과 마치 갑옷을 입은 것 같은 돌고래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금속 느낌이 나도록 도색하기도 하였으나, 이번 전시에 그가 사용한 주된 재료는 한지다. 흙으로 만든 작품들을 한지를 종이죽같이 해서 떠낸 것이 아니라, 그는 한지를 새끼줄과 같이 꽈서 안 틀에 그 꼰 줄들을 세심하게 정리하여 각각의 작품들을 떠냈다. 이번 전시 제목 『난맥』은 이 꼬인 한지 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갑각류와 패류는 온 몸을 덮고 있는 단단한 껍질로 인해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런 '甲殼과 貝'라는 명칭의 의미와 한지라는 재료의 느낌이 더해져 그의 작품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작업노트를 통해 우리는 그가 작품을 완성하여 전시할 때 오로지 결과물인 작품만을 남기고 사라지게 되는 오랜 제작과정을 기억하고자 흔적을 남겨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이 생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임수빈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 형상의 영감을 패류인 앵무조개, 어류인 아로와나 arowana, 그리고 수중 포유류인 민물 돌고래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앵무조개와 아로와나는 모두 살아있는 화석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앵무조개는 고생대, 약 5억 8,0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하여 대멸종을 거쳐 현재의 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아로와나는 골설어 骨舌魚, bony tongue라고 하며 지구상에 약 3억 년 전 곤드와나 대륙 Gondwana에서부터 진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석물고기이다. 민물 돌고래는 지구상에 약 5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아마존 강에서 새로운 종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양쯔강에서 2,500만년을 살아온 돌고래는 산샤三峽댐의 건설로 멸종되고 말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현생 인류보다 오래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온 생명체이며, 특정시기에 진화된 형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류는 그 역사가 4, 5백만 년에 불과하다. 그들과 비교해보면 인류는 참으로 미미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조각가 임수빈이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애쓰는 것과 함께 이번 전시작품 형상의 기원을 알게 되면서 필자는 그가 왜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강박증을 갖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유년기를 "잦은 수술과 사고로 몸에 상처가 많았다."고 회상하였다. 그는 "상처들은 흉터로 변해 몸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이런 나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결점을 가려주고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다는 욕구에서 갑옷에 연민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서 갑각류와 패류가 혼합된 새로운 생명체는 갑옷을 상징하며,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갑옷으로서 신체를 보호하는 것과 마스크와 같이 자신의 본 모습을 가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유년기 때 두려움은 시각적으로 들어오고 몸에 직접적인 자극으로부터 받는 것이었다면,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때는 존재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루하루 전쟁터 같은 현실 속에 살아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점점 작아진다고 느낀다. 그리고 실제로 현실에 놓인 나를 보면서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지내던 유년기의 나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넓은 세상에서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나를 보게 된다."고 스스로 분석한 것을 통해 성인이 되며 그의 두려움은 유년기의 감각적인 두려움에서 실존적 두려움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느낀다'고 말한 것을 통해 그것은 현재진행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임수빈은 왜 한지를 사용하였을까? 한지는 종이이면서도 여러 겹 배접하면 종이답지 않게 단단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지로 소반 같은 생활용구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한지를 새끼줄처럼 꽈서, 그 줄들로 자신이 만든 형상들을 꼼꼼하게 성형해 냈다. 그는 한지의 물성에 주목하며 "한지의 성질은 가벼우나 한편으로는 묵직하기도 하다.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약하지만 반대로 질긴 성질을 가진 모순적"인데, 이러한 성질이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한지를 꼰 것은 "한 줄의 매듭은 삶을 살아가면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완성작 하나에 사용된 여러 개의 매듭은 그 숫자만큼의 임수빈의 삶의 기억들이 담겨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수빈의 작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먼저 그의 작업의 기본적 형태가 갑각류와 패류가 혼합된 상상의 생명체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한지의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모순적 물성에 관심을 가진 것과 같이, 그가 새롭게 만들어낸 상상의 생명체는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포식자에게는 무기력한 먹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이유는 오랜 시간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왔으며 멸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상속의 새로운 생명체로 현현된 전시 작품들은 임수빈 자신의 성장기 경험에서 비롯된 잊힘의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대상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가 한지를 꽈서 줄을 만들어 그것으로 성형 하는 과정은 시간을 적잖이 요한다. 물론 임수빈은 이제 줄을 꼬는 것에 익숙해져서 처음 시도할 때와 같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는 행위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행위의 반복이라는 일면만 본다면 이런 행위는 과거 서예를 통해 심신의 수양을 추구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양의 방편으로서 서예를 할 때 입정入靜-오직 한 가지 대상에 생각을 집중시키는 것意守을 바탕으로 하여 도달한 '맑게 깨어있는淸醒' 상태-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한지를 꼰 것에 관한 그와의 인터뷰를 상기해보면 한지를 꽈서 그것을 가지런히 정렬하여 성형하는 과정은 그의 지난 삶에 대해 반추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꼬임은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한 인간이 스스로를 반추해보며 현실에 점점 익숙해져 유년기의 꿈을 상실한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한 회한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임수빈 작품의 형상과 재료, 그리고 작업노트를 살펴보고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그가 말한 '과정의 잊힘'이라는 표현을 통해 조각의 특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생명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죽음의 공포는 다름 아닌 '잊힘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였을 것이다. 이런 상상의 결과가 신화와 종교의 기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현상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과학이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지금도 종교생활이 지속되고 신화에 기반 한 판타지 영화가 제작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이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의 반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준 10계명 중 둘째 계명은 조각의 특성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꼭 지켜야 될 10가지의 계명을 직접 돌 판에 새겨 모세에게 주었다. 첫째 계명은 자신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이며, 그 다음은 어떤 형상으로든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하였다. 하느님은 특이하게도 '그림'이 아닌 '만듦'을 금지시켰다. 평면 속 환영illusion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으면서 유독 촉각적 실체로 존재하는 형상은 절대로 못 만들게 하였다. 무엇 때문에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지금의 조각이라 할 수 있는 우상 만드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 시킨 것일까? 신학적 관점이 아닌 신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 계명은 '실재감'과 관련된 그림과 조각의 차이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양에서 초상조각이 가장 활발하게 제작되던 시기가 로마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소수의 특권층만이 초상조각을 소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그들은 죽은 자의 데스 마스크 death mask를 밀랍으로 떠서 요즘 장례식에 사용하는 영정과 같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죽은 자를 대신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종합해 보면 조각상은 촉각적 실체로 실재하므로 부재하는 대상을 기억하기위한 방법으로서 환영인 그림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조각의 강점으로 인해 우리는 역사에서 독재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죽어서는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살아생전에 거대한 조각상을 건립한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조각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임수빈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는 자신이 중요시하고 그래서 그만큼 집착하는 '작품 제작 과정의 기록을 어떻게 작품화 시킬 것인가'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회화는 잭슨 폴록의 그림과 같이 그 과정을 화면에 그대로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각 작품은 '과정의 응축물'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과정을 거치지만 최종 결과물인 작품만이 전시장에서 조명을 받으며 관객을 맞이한다. 이것이 조각의 또 다른 특성이다. 그리고 화가도 그렇지만 특히 조각가는 재료의 물성을 거슬러서 작업할 수 없다. 최종결과물인 작품에 작가가 그동안 재료의 물성에 순응하며 제작한 과정은 드러나지 않지만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읽혀진다. 임수빈이 과정의 응축물인 조각을 통해 앞으로 과정의 기록을 어떻게 작품으로 전개시켜 나갈지 다음 작업들을 기대해 본다. ■ 박춘호
난맥-투사와 반추를 위한 흔적 만들기 ● "나의 작업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친다. 작업을 하면서 모든 것을 적어두고 기록한다. 그 중에서도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들을 찍어 차례대로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이것도 내 작업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며 작업의 일부이기도하다. 결과들은 존재하지만 과정들은 남겨두지 않으면 그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얼마안가 그 과정들의 존재들은 영원히 잊혀 진다. 잊혀 지게 되면 아무도 그것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 ■ 임수빈
Vol.20140422b | 임수빈展 / YIMSOOBIN / 任秀彬 / illust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