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painting

2014_0410 ▶ 2014_0420

김연용_45.5×65.1cm로 분절된 Lynette Yiadom-Boakye의 Diplomacy I, 2009, Oil on Canvas, 190×250cm_ 캔버스에 유채_65.1×45.5cm_2014

초대일시 / 2014_0410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권기예_김연용_박보마_정지현_최기창

* 4월14일 월요일 관람가능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동시대 예술에 있어서 화가는 예술가와 동일한가? 확실성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두 단어에는 미묘한 다름이 있다. 아마도 회화에는 개별 작가의 신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가 개인의 역량, 개인의 주체성이 강하게 촉발될 수 밖에 없는 예술 장르로서의 회화적 특성이 완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회화는 개별 작가의 내재성으로부터 벗어나서 동시대적 의미에서의 바깥(타자)으로 향할 수 있을까? 평면의 캔버스 내부에서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던 회화로부터 출발하여 그 프레임 바깥으로 향하는 의미에서의 열림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러한 고민들을 앞에 세워둔 채로, 동시대 예술에서 '회화' 혹은 '회화적인 것'에 관하여 고찰하기 위하여 회화라는 장르적 범주 바깥의 작가들이 회화를 시도한다는 조건이 주어졌다. 이러한 시도는 장르적 개별성의 기저를 횡단하는 공통된 지향성을 암시한다. '페인터'와 '그렇지 않은'이라는 대립구조를 설정한 것은, 처음부터 회화라는 장르가 닫힌 것이 아닌 열려 있음을 전제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회화라는 순수성을 담보로 하는 영역을 구획 짓고 그 영역의 온전함에 비페인터들이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회화에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열림'을 위하여 오로지 '회화'라는 조건을 내걸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호루라기를 삼켜서 숨을 내쉴 때 마다 의도치 않게 호루라기 소리를 내야만 하는 찰리 채플린 영화의 어느 캐릭터처럼, 참여작가들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지점에서 도래하게 될 작품들을 기대하였다. 이렇게 하여, 특별히 회화에 천착하여 작업을 하지 않았거나, 작업 전개에서 회화에 무게를 두지 않았던 작가 5명 – 권기예, 김연용, 박보마, 정지현, 최기창- 이 이번 전시 참여하였다.

정지현_가지들 Branches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4

바깥을 향하여 ● 회화는 신체적이다. 시대착오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뒤로 믿는 구석도 이 구석이고 회화가 아직 폐기처분 되지 않고 버티는 대목도 이 대목이다.(1) 2002년 대안공간 풀에서 있었던 회화 워크숍 전시『회화, 악몽을 꾸다』에서는 부대행사로 공개 세미나를 개최했던 모양인데, 워크숍의 내용들을 면밀히 수록한 출판물에서 발췌한 최진욱의 위와 같은 발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 말에 공감한다면, 오히려 회화는 너무나도 신체적인 나머지 작가 특유의 손맛에 의해 개별 작가의 시그니쳐에 갇혀져 개별성, 고유성, 주체성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못하는) 것은 아닐까. 캔버스를 직조하고, 물감의 브랜드를 선택하고, 젯소의 정도를 고려하고, 붓의 크기를 선택하는 등 하나하나 나열하기 힘든 복잡한 회화적 단계 속에 이미 그 작품만이 담보하는 특성이 정해진다. 이제 회화에서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관한 대상성에 관한 문제는 뒤편으로 물러나 있다고 하더라도, 붓을 터치하는 순간에 작가라는 주체는 강하게 자리잡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회화라는 조건 안에서 어떻게 작가의 고유성과 개별성, 그리고 주체성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까. 어떻게 작가라는 내재적 존재를 지우고 타자로 향하는 회화를 지향할 수 있을까. 이 전시는 회화로부터 동시대적 의미에서의 바깥, 즉 타자로 열리는 다섯 작가의 실천들이라고 볼 수있을 것이다. 이 실천들은 이번 전시에서 1)이미 존재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정보-도판이미지, 캡션, 작품 스테이트먼트 등-만을 참고하는 것을 자신의 회화적 장치로 수용하여 그리기(김연용), 2)화면에 남아있는 작가 자신의 붓터치의 잔해를 닦아내는 동시에 그 흔적을 참조하는 그림 그리기(정지현), 3)일상적으로 익숙한 나머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이야기를 무감각하게 그려내기(최기창), 4)기성품으로 제작된 색도화지에 색면을 얹어내어 색채의 배합만으로 드러내기(박보마), 5)안료를 제작하여 거친 입자들이 스스로 장지 위에서 표면을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기(권기예)로 드러나고 있다.

최기창_Gray Painting : Exotic holiday_캔버스에 유채_88.2×90cm_2014

The Sense of the Painting(2) ● 장 뤽 낭시의 저서『The Sense of the World』는 국내에서 '세계라는 의의'로 번역되어 일컬어진다. 하지만 가만히 'Sense'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감각'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임과 동시에 이 단어는 '의미'라는 뜻도 가진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감지하기 위한 열림, 즉 '~을 향하다'라는 뜻도 가진다. 낭시가 책의 제목에서 'Sense'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이 단어가 갖고 있는 일종의 자기 해체적 측면이 작동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라는 것은 너무나도 닫혀있는, 그 자체로 온전함을 가진다. 동시에 그 의미 속에서 의미를 넘어서는 '향함'이 'Sense'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있듯, 낭시는 '몸'을 지적 체계로서의 '의미'와 감각적인 차원에서의 '감각'을 가로지르는 타자를 향한 열림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몸' 그 자체이기 때문에 '몸'을 사유할 수 없다고 낭시는 말한다. '몸'은 정신이며 동시에 육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은 사유 그 자체로 볼 수 있다.(3) 이 전시에서 화면을 앞에 두고 다섯 작가가 '몸'으로 행한 신체적 움직임은 회화의 의미적인 차원과 감각적인 차원을 횡단한다. 철저히 만짊으로서만 가능했지만, 만질 수 없는 지점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작품들은 온전함을 상실하고 파편화되며 부서져 버린다. 김연용의 그림은 '파편화된 작품'이다. 자세히 보면, '파편'과 '작품'은 서로를 밀어내는 단어이다. 하지만 김연용이 원본의 작품을 분할하는 태도에는 완성된 작품이 갖는 온전함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동시에 분할된 일부로 다가가고자 하는 역설이 들어서게 된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원작에 결코 수렴되지 못하는 회화적 사건들에 주목한다. 정지현이 자신으로 인하여 발생한 물감의 잔해들을 파헤치며 만들어 내는 붓터치들은, 캔버스에 자기 자신이 현전함을 불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가능하도록하는 이중성을 갖는다. 또한 최기창은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주변인들의 사진들을 캔버스에 오직 '흔적'으로서만 남겨 놓아 개별적 경험과 기억들이 도리어 무심하게 다가오도록 유도하였다. 회화를 통하여 역설적으로 배제된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시지각적인 감각을 드러내고자 기성 색도화지 위에 색깔들을 나이프로 얹어내는 박보마의 행위들에는, 언어라는 의미 체계로 환원되기를 거부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감각이 언어화되지 않은 채 단지 몸으로 구현될 때,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동시에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중간지대에서 색들은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권기예는 의도적으로 신체성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하여, 전통적 의미에서의 회화적 재료와 일정한 대상의 시각적 재현을 거부하였다. 일상적인 레퍼런스들을 재구성하되, 식재료에서 얻은 안료들로 하여금 화면에 투박하게 들러 붙어 있도록 하는 것에서 회화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발견 할 수 있다.

박보마_앞의 하늘색_색지에 유채_가변크기_2014

"하나의 작품을 그것이 회화라는 불행으로부터 구해내기"(4) ● 회화로부터 출발하여 그 너머를 지향하고자 하는 이번 전시에는 이중성들과 역설들의 모순 그리고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있는 것으로부터 앞으로 올 것을 읽어내기 위하여 회화라는 장르의 바깥의 작가들이라는 '타자'를 회화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도에 이미 온전한 회화가 될 수 없다는 예정된 오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들이 테이블을 오간 적이 있다. '예술이란 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멀어나는 과정'이라고. 한 작가가 무심하게 뱉은 이 말에 어떤 작가는 반박하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필자는 이 말 속에 우리의 시도가 함축되어 있다고 느꼈다. '나'라는 개별자가 '바깥'으로 향하고자 하는 지향성. 타자를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지난하게 고민해 왔다. 아마도 그 만남을 위하여 비(非) 페인터들은 붓을 들었고, 화면 앞에 앉았으며, 회화로부터 회화를 벗어날 그림들을 그렸던 것이다. ■ 윤민화

각주 (1) 최진욱, 회화는 정당한가?, 『회화, 악몽을 꾸다』, 대안공간 풀 회화 워크숍 기획전, 2002, 8p. (2) 이 소제목은 장 뤽 낭시의 저서『The Sense of the World』의 제목을 참고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3) 이 문단은 다음의 원문에서 모티프를 얻어 작성했음을 밝힌다.      "스스로를 ('자기'가 아니라) '너'로 접촉하는 것se toucher toi.      나아가 결국 같은 얘기지만, 스스로를 ('자기'가 아니라) 표피로 접촉하는 것se toucher peau.      그런 것이 몸이 언제나 더 멀리, 언제나 너무 멀리 끌고 가는 사유다.      아니 진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하도록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스스로를 분리해가는 것은      바로 사유 자신이다.      사유의 전 무게, 사유의 중압 전체는 –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무게를 달아 가늠하는 것pesée이다–      최종적으로 오직 몸들과의 동의concenter aux corps (격한 동의)를 향해 가기 때문이다."      장 뤽 낭시, 김예령 역, 코르푸스-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 문학과 지성사, 2013, 41p. (4) 이 문장은 레비나스의 전언      "...하나의 텍스트를 그것이 책이라는 불행으로부터 구해내기"에서 차용하였다. 같은 책, 174p.

권기예_화_박스를 감싼 장지에 고춧가루, 먹물, 소금, 와사비_180×66cm_2014 권기예_이_박스를 감싼 장지에 고춧가루, 먹물, 소금, 와사비_180×66cm_2014 권기예_팅_박스를 감싼 장지에 고춧가루, 먹물, 소금, 와사비_180×66cm_2014

Is a painter equivalent to an artist in contemporary art? With no guarantee of a certainty, there is a subtle difference in these two words. It may be because of the solidity of painting as a genre, which involves intimate connection between an artist and his/her physical in the act of painting, provoking individual capability and identity of each artist. Then, can painting be independent of immanence, proceeding towards the outside (the other) in the contemporary sense? Starting from a flat canvas where a period had to be put, how can an opening to the outside of the frame be achieved? With these questions lined up in the front, in this exhibition『B painting』, artists who are nonnative to the genre of painting were given the precondition to attempt to paint, to study 'painting' or 'something pictorial' in contemporary art. An attempt of non-painters to paint implies the common directivity that crosses the basis of individual genre. The setting up of structure of conflict between 'painter' and 'not' was possible only with the assumption that painting as a genre was not closed, but open in the first place. It was not about setting boundaries around painting as an area that requires purity and non-painters stepping into it, but it was about finding an 'opening' that has existed but never been discovered. Like a character in a Charlie Chaplin movie that had swallowed a whistle, resulting in unintentional whistling every breath he takes, the identity as a 'non-painter' in each participating artist was expected to carry the resulting works to arrive at an unexpected place. Thus, five artists – Kiye Kwon, Yeon-Yong Kim, Boma Park, Jihyun Jung, Kichang Choi - who do not pursue painting as their primary method of work or do not utilize painting in their works at all, attempt to use painting as their method of work in this exhibition. Facing outwards ● Painting is physical. This is what painters who paint anachronistic paintings count on, and this is why painting still exists and has not yet been disposed. (1) The painting workshop exhibition in Alternative Space Pool,『Painting, has nightmares』in 2002, was accompanied by a public seminar. Jin Wook Choi's remark quoted above from a publication that includes the contents of the workshop was impressive. This statement suggests that painting may be too physical that it does not (or cannot) break the boundaries of the painter's individuality, character, and identity, trapped in the painter's touch and signature. Through uncountable combinations of decisions made in the act of painting such as weaving the canvas, selecting the brand of paints, deciding the amount of gesso, and choosing the size of brush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work is predetermined. With the objectivity of 'what' is being painted set aside, as soon as the brush touches the canvas, the identity of the painter becomes dominant in the work. If so, how can we separate the artist's individuality, character, and identity from the work in painting? How do we erase the immanent being of the artist and proceed towards the other in painting? This exhibition is the result from the practice of five artists to open painting towards outside in the contemporary sense, the other. The practices in this exhibition are 1) painting with reference only to information about an already existing work of a different artist such as images of illustration, captions, and work statements to embrace as pictorial devices (Yeon-Yong Kim), 2) rubbing off the remains of the artist's own brush-touch and painting referring to the traces of the erased painting (Jihyun Jung), 3) painting familiar daily stories without an owner with insusceptibility (Kichang Choi), 4) painting color-fields on top of a ready-made colored drawing paper to expose only in a color scheme (Boma Park), 5) painting with custom pigments with coarse particles on traditional drawing paper to induce unintentional surfaces(Kiye Kwon). ■ YUNMINHWA

Footnote (1) Choi, Jin Wook, Is painting reasonable?, 『Painting, has nightmares』,      Alternative Space Pool Painting Workshop Exhibition, 2002, 8p.

Vol.20140410g | B painting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