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402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 유승호_윤성지_이광기_정세인
주최 / 코오롱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K_대구 SPACE K 대구시 수성구 동대구로 132(황금동 600-2번지) 2층 Tel. +82.53.766.9377 www.spacek.co.kr
코오롱의 문화예술나눔공간 스페이스K_대구에서 4월 2일부터 5월 9일까지 '비주얼 리터러시: 텍스트의 배반'전을 개최한다. 텍스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는 이번 전시는 언어적 설명 수단이라는 제한된 역할을 넘어 하나의 조형 요소로서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술의 역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미지를 설명하는 보조적 기능에 머물렀던 텍스트가 20세기 초에 입체파와 다다이즘에서 독립적인 오브제로 등장한 이후, 팝아트와 개념미술에 이르러 작품의 주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모티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의사소통 방식이 문자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옮겨진 20세기 후반에 그 상징적 중요성이 주춤하는 듯했지만, 최근 소셜 네크워크의 등장으로 이미지와 음성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전개된 텍스트의 표현법이 현대인의 일상과 정신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네 명의 작가들은 오늘날 텍스트가 점하고 있는 의사소통 헤게모니와 그 독특한 시각적 특성에 주목하여 전통적인 형식의 텍스트를 배반한다. 익살스러운 문구를 빼곡하게 채워 중국식 전통 산수화를 재구성한 유승호는 이미지와 텍스트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박제된 전통에 신선한 생명을 불어넣는다. 어법에 맞지 않는 비문(非文)을 작품 전면에 내세운 윤성지는 언어의 기호적 기능을 의도적으로 교란시키며 사회적 약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맥락을 제시한다. 한편 출판기념회의 형식을 빌어 북 커버와 네온사인을 연출한 이광기의 설치작업은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를 풍자적으로 꼬집으며, 정세인의 반복적인 텍스트 작업은 잉여 정보의 범람 속에서 대중매체를 종교처럼 맹신하는 현대인의 무기력한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텍스트를 유희하는 네 명의 작가들은 이른바 이미지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의 범위를 확장시키며, 텍스트들간의 관계(intertextuality)와 맥락(contextuality)에 대한 과감한 시도와 재설정을 실험한다. 타이포그래피는 물론 회화와 오브제, 설치작업 등 다양한 수법으로 시각화된 문자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개념미술의 미학을 수용하며 텍스트의 새로운 반란을 모색한다.
유승호는 이번 전시에서 중국 송대의 궁정 화원의 산수 화풍을 텍스트로 재현한다. 그가 보여주는 풍경과 인물들은 희미한 명암의 변화 속에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그림에 가까이 다가서면 산과 강, 구름과 인물의 형상이 깨알같이 작은 글씨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종이에 잉크 드로잉한 글씨들은 '어흥~옛날 옛적에'(eoheung~once upon a time)이나 '야~호 yodeleheeyoo!'와 같은 상투어나 후렴구를 영문으로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같은 문구를 반복적으로 이어 써 내려간 그의 선묘는 형상은 물론 동양화의 농담 표현까지 구사하며 작가의 지난한 작업 과정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미지와 문자 간의 경계를 넘어선 그의 작업은 전통 산수화 풍경 속에 유머러스 한 텍스트들을 빼곡히 삽입함으로써 옛 그림에 담긴 본래의 의미를 벗겨내며 박제화된 전통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윤성지는 전시 공간을 오랜 동안 관찰하고 경험하여 그 특성을 파악한 뒤, 텍스트와 오브제를 매개로 불확실한 상황 속에 관객을 개입시킴으로써 작업을 전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노랑으로 채색한 전시장 벽면을 배경으로 'YouDiedLastnight'라는 텍스트를 연출한 작품을 선보인다. 띄어쓰기도 어법도 맞지 않는 그의 문구는 관람객들에게 낯설게 파고들며 언어의 기호적 기능을 교란시킨다. 사회적 약속을 야금야금 위반하듯 의도적인 비문(非文)으로 구성된 그의 텍스트는 그 틈새를 조금씩 벌리며 새로운 기능을 수행한다. 언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 엉터리 문장을 늘어놓아 맥락과 의미를 박탈하는 그의 작업에서 끊긴 연결고리를 이어 미완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작가는 이 같은 작업이 완성되지 않은 장편소설의 한 페이지로 관객들에게 다가서길 기대하며, 그들 각자의 상상력과 경험 기반에 따라 서로 달리하는 독해를 유도한다.
출판 기념회의 형식을 전용한 이광기는 북 커버와 네온사인인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단행본 시리즈로 갓 출간된 듯한 두 권의 책 표지에는 각각 『내가 니를 어찌 키웠는데』와 『나는 엄마에게 속았어요』라는 제목이 인쇄되어 있지만, 180페이지 분량이 무색하게 속 내용은 텅 비어있다. 이 동명의 타이틀은 네온사인에도 적용되어, 마치 발화자의 한숨을 연상시키며 40초 간격으로 점멸하며 동일한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킨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사교육 광풍에 학부모와 자녀가 공허하게 휩쓸리는 사회 현상을 비판한다. 한편에서는 '자식 교육을 위해', 다른 한편은 '부모님 말씀에 따르기 위해'라는 표면적인 명분과 그 이면의 숨은 이해타산적인 욕망이 맞물려있음을 꼬집는 작가는 결국 어느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에 모든 것을 던지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의 허상을 풍자한다. ■ 스페이스K
Vol.20140405g | 비주얼 리터러시: 텍스트의 배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