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uilibrium_Sound of Silence

윤위동_이만나 2인展   2014_0403 ▶ 2014_0426 / 일요일 휴관

윤위동_꽃향기가 나는 여인_종이에 아크릴채색, 수채, 퍼티, 금박_286×165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CSP111 ArtSpac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Tel. +82.2.3143.0121 blog.naver.com/biz_analyst

"Keep Calm and Carry On! 평정심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하십시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왕이 국민에게 전했던 메시지라고 합니다. 최근 이를 인용한 "Keep Calm and ...." 시리즈의 광고 문구들이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80년대 이념전쟁, 90년대 경제전쟁, 그리고 2000년대 문화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은 우리, 2010년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인 다국적 각축전을 치르고 있는 동시대 우리의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기야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적이라고, 전쟁 중에 내란을 다스리는 대국민선언이 아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은 인간으로서의 덕목과 희노애락애오욕 감정으로 갈라지고 뒤얽힌, 속 시끄러운 자신과의 투쟁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자비로운 부처님의 각성(覺性)과 해탈도, 인자한 공자님의 중용(中庸)의 삶도,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의 평화의 인사도 한결같이 "Keep Calm!"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말씀이었거늘. 새삼스레 와 닿습니다. 문득 평정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무얼까? 궁금해집니다. 많은 화가들이 마음을 그리고, 그림으로 다가서서 우리와 마음을 나눈다고들 합니다. 취미와 개성, 새로움의 신화와 역사로서 자부심, 새로운 시대의 우상으로서의 명성과 명예욕, 사회적 가치와 의미, 시대적 역할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예술을 둘러싼 온갖 관심과 인기의 소란스런 웅성거림에 기웃하는 마음까지. 이런저런 마음들 모두 화가의 마음인데, 우리가 그림에서 보는 화가의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가 그림에서 보려는, 보고 싶은 화가의 마음은 무엇일까? 말입니다.

윤위동_Thinking women and yellow butterfly_종이에 아크릴채색, 퍼티_258×172cm_2013

'그 마음에는 화가의 듣는 마음도 있고, 듣는 마음도 보는구나.' 윤위동의 고독한 인물과 이만나의 고요한 풍경을 보며 드는 생각에 눈길이 머뭅니다. 윤위동의 상처로 고개 숙이고 웅크린 젊은 이, 아이를 품은 어린 임산부, 기도하는 손과 여인, 화려한 신부, 윤위동은 그들의 이야기와 목소리, 흐느낌마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순간, 좌절과 상처, 아픔의 몸짓과 흔적, 상념과 고뇌로 지쳐 잠든 시간마저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왜 무엇 때문인지 그들의 정황을 물으며 사심을 드러내거나, 우리의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지 않으며, 감정의 과장이나 격한 동조를 표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외딴 곳을 함께 지키며 그릴 뿐입니다. ● 이만나 역시 수많은 인적이 지나간 자리, 인적이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과 건물, 정원과 경기장, 벽과 모퉁이, 길 등 외딴 곳을 함께 지킵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왔다갔는지, 혹은 인적이 드물어졌는지, 그마저 사라졌는지, 남겨진 사물에 대한 인간적 감정이나 서정을 이입하지도 않습니다. 윤위동의 고독한 인물이나 이만나의 고요한 풍경은 애초에 화가의 관심이나 감정이 끼어들 여지도 없이, 마치 화가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 자신들의 상황에 몰입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화가 윤위동 · 이만나는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한결같이 그들의 외딴 곳을 함께 지킵니다. 그리고 화가로서 자신의 그리는 일에 촉각을 세웁니다. ● 윤위동의 숨결과 체온, 맥박이 느껴질 듯 사실적으로 묘사된 형상들 (웅크린 어깨와 생명으로 부풀어 오른 배, 제 자신을 쥐어뜯는 손아귀와 다부진 팔뚝, 상처와 혈흔, 불거진 혈관,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들), 그리고 이만나의 존재와 부재가 반복되고 중첩된 시간과 빛의 흔적들을 미묘하게 아른거리는 색들의 고운 입자로 살려낸, 다소 까슬까슬함이 느껴지는 촉각적 풍경들 (한 때는 성(城)과 같은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을 법한 벼랑 끝의 낡은 집, 만남과 소통, 친교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활기찼던 특정 장소들. 담 벽의 흔적들–무수히 붙이고 떼어지기를 반복했을 광고전단지들의 흔적과 나무 그림자, 담쟁이덩굴) 은 모두 여전히 살아있음의 형상으로 칠흑 같은 어둠과 깊은 적막으로부터 당당하고 존엄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만나_벽12-2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3
이만나_눈 밤_캔버스에 유채_73×91cm_2014
이만나_산1,2,3_캔버스에 유채_33.5×45.5cm×3_2014

이번 전시에서 윤위동 · 이만나의 외딴 인물, 외딴 곳을 향한 마음, 믿음직한 의로움과 희망어린 시선은 그들의 기쁨과 환희도 누구보다 먼저 함께 합니다. 그리고 화가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라고 나직이 말합니다. 윤위동은 신부와 여인의 수줍지만 부끄럼 없는 당당한 자태, 차돌처럼 다부지게 빛나는 얼굴, 꽃처럼 피어나는 그들의 향기, 그에 합당한 의장을 섬세하게 수놓으며, 최고로 아름다운 순간을 우리와 함께 나눕니다. 이만나는 벽에서 문으로, 띄엄띄엄 세워진 등불을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서히 한 발 한 발 우리의 시선을 산등성이로, 새벽녘 빛의 어스름으로 이끕니다. 급변하는 세상으로부터 정체되고, 뒤처지고,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일지라도 제 삶에 충실한 이들, 그리고 그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누군가 자신의 산을 오르려는 이의 빛이 되고 길이 되리라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로 고요하지만 힘 있는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 윤위동 · 이만나 두 화가의 그림은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고, 고요하지만 침묵하지 않습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나 슬프고 괴로울 때, 잘살 때나 못살 때, 성할 때나 아플 때, 그들에 귀 기울이며 속정 깊은 그윽한 시선을 나누는 화가의 마음이 함께 했기에 말입니다. 고요함 중에 닮고픈 마음, 여러분과 함께 보고픈 그림입니다. ■ CSP111 ArtSpace

Vol.20140403d | Equilibrium_Sound of Silence-윤위동_이만나 2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