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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3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3층 Tel. +82.(0)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우리가 살아왔던 사회의 성격과 그 사회의 성격으로 인해 성장되고 습성이나 관습이 이식된 흔적을 찾는다면, 그것들은 어떤 형식과 유형으로 현재의 우리에게 말 걸기를 할까? 그리고 지금의 우리 앞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그리고 그 흔적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역사라는 거대담론, 대전제적인 카리스마에 비해 개인의 성장과 변화들은 그것과 무관하고 소소하고 하찮은 것일까? 이승현의 작업은 위의 질문들에 대해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는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들이 모여 군집을 이룬 사회 내에서 겉으로 표현되는 외향적인 속성 이면에 내면의 고립, 고통, 답답증에 대해 군중속의 고독이라 정의하였다. 이러한 정의가 가능한 이유가 인간의 생체적 조건인지, 문명으로 야기된 시스템에서 겪는 후천적 모순인지에 대해 정확히 분별하긴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마치 사람과 인간의 개념적 차이를 분멸함에 있어서 교집합적 판단과 분리적 잣대가 공존하는, 상황에 따라 관점이 얽혀있는 미로 찾기와 흡사하고, 현재 인간의 네트웍화된 생태로 본다면 그 분별과 분리가 점점 더 불가능해지리라 예상된다.
첫 개인전을 펼치는 작가 이승현의 뒤늦은 전시는 작업자로서 '공개적 첫 발자욱의 역사'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경험하고 사고한 증거물들을 매개로 재현적 메타포(metaphor)를 시도하고 공감하고자한다. 자신과 주변의 겪었던 시기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표면을 재현(replication)하는 측면에서 거리를 두고 또 다른 재현(reproduction)이 갖는 생산적 측면을 의미로 삼아, 그 사진 원본들이 드러내지 못하는 의식의 교류를 위해 시그널을 보내고자 하는 소극적이지만 진지한 태도로 보인다. ●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일군의 무리들은 표면상으로 동질의 과정, 동일한 경험의 장에서 생태적으로 만난 인격체들로, 그들에게 남겨진 사진은 그 시간과 장소에 대해 회상하고 감회를 가질 단서가 된다. 작가는 이 단서들을 회화로 전이시켜 그 사진들의 표면에서 마치 미스테리하게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개인들의 정서를 군집 속에서 분리시킨다. 사람과 인간의 미묘한 뉘앙스의 간극처럼, 집단으로 규정된 성격내의 몰개성적 시각과 인격들이 만나 화학작용을 유발하는 군집의 시각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에서, 역으로 작가는 그들의 고유한 표정에 이펙트(Effect)를 걸어 차연(差延)시킴으로 만감을 유도한다.
최근에 회자되었던 '응답하라 0000'의 드라마가 있었는데 드라마를 시청하며 지나간 향수의 시간이 재현(replication)됨에 사람들은 열광과 공감의 장을 선사받았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과거를 회상함에 대부분 상투적으로 '그때가 좋았지'라고 내뱉는다. 그 환경이 진정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의 나의 상태가 좋았던 것인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가치 있었던 것인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겠다. 한 사람의 디테일한 추억이나 경험을 근거로 과거를 바라보자면, 현재 그가 직면한 어떤 상황에 따라 그가 경험한 시간의 통체가 주는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그만큼 과거에 대한 소회들은 현재의 상태에 지배받고 현재는 과거와의 비교를 통해 정체를 확인한다. ● 이승현의 작업에서는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배경적 디테일로 향수를 환기시키는 상투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애초에 방기(放棄)된 것인지, 아니 더 노골적으로 '거세(去勢)'시킨 것인지 정확히 알긴 어렵다. 집체적인 방식의 사진의 모델들만이 그림으로 재현되어 묘한 표정으로 반기며 자신들의 시간을 드러낼 뿐이다. 아마도 이 부분은 차연의 관점에서 마치 원본적 시간과 재현적 시간이 공진(共振)하며 다의성의 틈새를 열기 위한 시도로 여겨진다.
이승현이 이런 인물들의 편집적 작업을 통해 말 걸기를 시도하는 것은 현재에 일어나는 어떤 상태들이 역학적으로 여전히 그 원본적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증명할 수 도 있겠다. 혹은, 그것이 주어진 환경이 여전히 지금의 사회라고 느낀다면 그 군집에서 일탈을 희망할 수도 있겠다. ● 다만, 복제와 모사적 응답하라의 방식이 주는 반향과 차별되는 관점에서, 동기로 주어진 사진들의 해석을 통해 그 시절 각자가 겪었던 '타자와의 불일치' '소통의 부재와 교감의 한계' '무리속의 소외감' '비상식적인 것의 관례' '불평등'등을, 지극히 잘 세팅되어진 인물들의 표정을 통해 환기시키고, 기저위에 현재 우리의 상태에 대한 반증을 도포(塗布)한다. 그리고 그 부분이 작가 이승현의 잠재된 과거이면서 현재도 지속되는 생태에 대한 말 걸기라 생각된다. 가면처럼 설정된 듯 보이는, 마치 한세대 이전 사진들의 어긋난 보정(補正)처럼 어색한 상태의 얼굴들처럼, 그 당시에는 당연했던 행위들과 기억들이 현재의 시간에서 회상할 때 일그러지고 굴절이 되는 감정 상태로 정착된다. 그들만의 유쾌한 듯 보이는 결속력과 기념적인 장소들의 감정은 화면에서 빠져나와 관람자와 마주하게 됨으로 각자 기억의 모듈 속에 잠재한 '어떤 기억'들을 우리에게 환기시키며 각자에게 주어진 차연의 시간으로 미끄러지며 현재에 도달한다.
결론적으로, 회고적 태도에 입각해 사진들을 소재로 차용했다고 치부해버리기엔 그의 회화가 담고 있는 중량들은, 모노크롬의 음성적(陰性的) 제스춰를 통해 어떤 지점에 지뢰처럼 은폐되고 있음을 공감하게 만든다. 유쾌한 듯 배열된 군상들의 모습에서 그것이 전체적 도열을 연상시킨다고 말하기엔 분명 거리가 있겠으나, 그가 지금의 작업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겪은 통체적 환경의 변화가 그의 내면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람과 인간의 묘한 간극처럼, 그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잠재를 드러내는 다양한 채널로 말 걸기를 하고 있다. ● 군중 속 고독의 시간은 이미 끝났는지 모르겠다. 현재 우리의 환경은 고독과 갈등조차 거세시키려는 무자비한 시스템이 군중을 허하지 않는다. 네트웍 속의 고독도 데이터의 향연이 펼치는 파라다이스에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각자의 캐시가 바닥나는 야릇한 긴박감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실재하는 고독의 실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방독면을 제거한 채 독가스를 먹이고, 어린이 사격장을 만들어 사격훈련 체험을 시키겠다는 히틀러의 유겐트적 사고가 권력으로부터 나와 현실로 차연되는 지금의 시점에서... 그의 작업속의 아이들은 비록 각자의 고독은 있겠지만 현재의 아이들보다는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매우 유의미한 담론과 다의, 만감을 우리에게 던진다. 더불어, 미세한 촉필로, 고독하지만 소임으로 버텨온 나날들로 쌓여진 그의 작업은, 현재와 과거의 통시(洞視)와 통시(洞時)의 증거물들을 뱉어내는 주인공들로 인해 우리가 어느 시간 어떤 장소에 현재 실재하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 정화성
Vol.20140326a | 이승현展 / LEESENUGHYUN / 李承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