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324_월요일_04:00pm
참여작가 강현정_구미란_김푸르나_박신영_박정혁 오에리사_이동욱_정형대_최성현_최윤라_홍성준
협찬 / 버니니 인덜지코리아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Hongik Museum of Art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번지 문헌관 4층 Tel. +82.2.320.3272 homa.hongik.ac.kr
한국문화의 상징의 그 내면에는 기복, 벽사, 현실의 극복, 희망, 초월의 의미, 정신에너지가 있다.한국 문화의 상징적 소재에 대한 관심은 상징이미지의 재구성을 통해 상상공간으로 유도하고 이는 정신적 치유를 얻어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알아가는 것에 힘이 된다. 인간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위축된 현실에서 출구를 마련해주는 자기실현의 과정이다. ■ 강현정
모든 '파괴'는 '사소함'에서 비롯한다. 나비효과 나비의 날개 짓이 결국 커다란 허리케인을 야기 하지만 정작 나비는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한다. 사소한 행위(새총)들이 결국 큰 파괴적인 결과-관계 속의 심리적 트라 우마를 불러일으키지만 정작 본인들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인 심리적 트라 우마는 어딘가 남아 존재한다. ■ 구미란
몸이라는 의미를 넘어 몸의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 들고자한다. 신체의 안과 밖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남성과 여성의 경계 등 테두리를 가진 모든 것을 함께 융화시키며 이것의 넘나듦을 즐긴다. 온전히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이 작품 안에서 분열, 섞임을 반복하며 자신의 몸 이외에 자아와 타자, 나아가 사회의 융합까지 시도한다. ■ 김푸르나
단상위에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불필요한 것 들에 대해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을 반복한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동안 우리는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것을 왜 듣게 되었는지 조차 잊어버렸다. 상황 자체는 불필요하게 되어버렸지만 그냥 그렇게 아무생각도 하지 않은채 그저 듣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 박신영
...신학자 니멜러는 마지막 참회를 통해 사상의 은인이자 반전 행동주의자로 거듭났다. 니멜러는 자신의 묵인과 방관이 부른 대참사를 통렬히 아파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얻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처음에 저항하라(Principiis obsta)'이며 두 번째는 '결말을 생각하라(Finem respice)'는 원칙이다. ■ 박정혁
누군가의 불행을 보고 안도를 해 본 적 있는가? 무엇을 파괴하고 틀을 벗어나면 묘한 기쁨이 그대에게 찾아 오지 않는가? 우리는 짜릿한 쾌락의 욕구를 사랑하고 있다. 본인은 어렸을 적 외상의 경험과 흔적으로 생성된 비극 속의 카타르시스를 작업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 카타르시스 속 기묘한 반복의 충동과 욕망과 그 끝의 죽음, 공포와 쾌락을 동시에 느끼는 이중적인 심리 형태를 심도 있게 생각해 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본인에게 두려움 가져다 주는 존재와 정면으로 맞서 나 자신에게 굉장히 공포스럽고 잔인한 작업을 진행하는데 내 속에 여리고 상처받은 실체를 만나기 위하여 일부러 다소 불편한 사실들과 마주한다. 소름 끼치게 역겹지만 한편으로 매혹적이다. 내면 속에서 추방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의식 속에 끊임없이 출몰하고 나의 의식 언저리에 남아있다. ■ 오에리사
스포츠 이미지를 패스티쉬(Pastiche)와 알레고리(Allegory)방식으로 기호(SIGN)화 한다. 스포츠 아이콘을 등장시켜 동일시하며 대리만족 하거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 한다. 본인의 욕망(결핍)을 해소하고 나아가서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하는 '신화(Myth)'의 의미작용체제를 이용하여 새로운 맥락의 의미들을 발생시키고 관람객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 정형대
모든 작업 안에는 정체성이 불확실한 과도기적 존재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무기력함과 폭력이라는 감각이 그림 속에 함께 스며들어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불안'을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마침내 무의식 속에 잔존하던 욕망은 감춰진 나약함과 억제된 에너지로 그 형체를 드러낸다. ■ 최성현
풍경속의 다리는 인간 어른 정도의 크기인 엄지발가락부터 나타난다. 서서히 아래로 자라나기 시작해 다리전체가 뻗어 나온다. 그리고 더 이상은 자라지 않은 채 오래된 정원 속에 존재한다. 오래된 정원에서 생활하는 그무엇은 수풀을 해치고 살며시 발을 내밀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리는 현대 사회 속 인간에게 남아있는 '동물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다리는 땅으로부터 수평으로 인간의 몸을 지탱하고 달리고,걷고, 버티고,주저앉는 인간에게 남아있는 야생본능을 대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새로운 동물로 탄생하여 인간의 야생성을 나타내는 은유로서 작품 속에 등장한다. 그리고 가공된 정원속에서 동물화된 식물, 동물, 하늘과 함께 어우러져 동물계(Animality)의 풍경을 만든다. ■ 최윤라
I intended to create a "Witz" into my work by using text, a similar vein as a nonsense. Through this work, I try to make ready for the ways of reinterpretation about "interface" between the artwork and the people. ■ 홍성준
Vol.20140324b | 2014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석사학위 청구展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