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514b | 뮌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4_0320_목요일_06:00pm
뮌 mioon 김민선 KIMMIN & 최문선 CHOIMOON
비평가 김남수와 작가 뮌이 참여하는 작가와의 대화 일시 / 2014_0419_토요일_02:00pm 이메일 신청 / [email protected] (선착순 50명 모집)
후원 / (주)코리아나 화장품
관람료 / 일반_3,000원 / 학생_2,000원 / 단체(10인이상)_1,000원 할인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 일반_2,000원 / 학생_1,000원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 Coreana Museum of Art, space*c 서울 강남구 언주로 827(신사동 627-8번지) Tel. +82.2.547.9177 www.spacec.co.kr
1. 코리아나미술관에서 2014년 첫 번째 기획 개인전으로『뮌-기억극장』을 개최한다. 국내 대표적인 미디어 영상 설치 작가로서 뮌이 이번 전시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기억'과 '극장'이다. 이는 작가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해석하고 실험해온 주제이기도 하다.「관광객 프로젝트」,「홀로오디언스(Holoaudience)」등 2000년대 중반 뮌 작업에서의 기억과 극장 개념이 '집단 군중'의 범주에서 주로 미디어 기억의 차원으로 작동하였다면, 이번 전시에서의 기억은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보다 심도 있게 해석되었다. 영상이 포함된 6점의 오브제 설치 작품과 3점의 비디오 작업이 모두 신작으로 제작·전시되는 과정에서, '기억'과 '극장'을 연결시키는 시각적 방식 또한 보다 정교해지고 복수화 되었다. ● 기억은 항상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어떤 것이다. 기억은 저장되기도 망각되기도 변형되기도 하며,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구조와도 같이 하나의 기억 위에 새로운 기억이 덧입혀지기도 한다. 기억은 개인적·사회적 경험에 의해 혹은 미디어의 조정에 의해 변형·왜곡·재생성되며, 때로는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억의 유동성과 불안정성을 사회적으로 함축하는 개념일 것이다. 우리가 기억한다고 하는 어떤 순간은,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지라도, 어떤 장치나 담론에 의해 충분히 재구성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특정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그 순간의 진실이 아닐 수도, 그 이전의 수많은 과거가 중첩된 것일 수도 있다. 어떠한 기억은 억압에 의해 숨어 있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분열된 상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트라우마적 상기(traumatic recall)'라 불리는 이러한 기억은 정신의 분열작용에 의해 숨어 있다가 예기치 않게 발현한다. 그것은 말도 없고 정지된 스냅 샷의 연속과도 같다.1)
기억은 도저히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일종의 알레고리이다. 뮌이 이번 전시에서 의미화하고 있는 하나의 축은 이러한 기억의 메커니즘, 기억의 알레고리적 구조, 기억의 이미지이며, 또 하나의 축은 기억 구조를 표상하는 시각적 장치로서의 '극장'이다. 전시공간을 아우르는 대형설치 작품「오디토리엄 Auditorium(Template A-Z)」(2014)는 바로 '기억'의 이미지를 '극장'의 형식으로 표상한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기억과 극장의 연관성을 추적하기 위해 작가는 16세기 실제로 고안된 기억극장(memory theater)과 17세기 분더카머(Wunderkammer/wonder box), 18세기 독일 수집장 등 기억을 보존하는 장치와 그것의 역사적 변주과정을 오랜 기간 리서치 하였다. 16세기 카밀로(Giulio Camillo)가 고안한 기억극장은 원형경기장의 축소판 같은 극장 구조를 지니고 있었는데, 우주의 비밀에 대한 지식을 암호와 문장으로 체계화하여 이곳을 드나드는 소수의 '기억'을 통해 대대로 전수하기 위한 '기억의 저장소'와 같은 곳이었다. ● 카밀로의 기억 극장 구조를 내면화하듯 다섯 개의 책장이 반원형의 극장구조를 이루는 뮌의「오디토리엄」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형상은 책장 표면 전체에서 점멸하는 수백개의 그림자 이미지들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기차길, 줄지어 가는 군중, 총을 겨누고 있는 한 남자, 폐허의 그림자 이미지 등은 일정한 연관성 없이 파편화 되고 분절되어 있다. 몇 개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낯선 하나의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이 그림자 이미지들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 작가 개인의 경험을 소급하고 추상화된 감정을 환기시킨다. 책장 오브제를 뒤로 하여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그림자의 근원으로서 불투명한 아크릴판 뒤에 놓인 수백 개의 오브제들이다. 레디메이드 오브제, 작가가 제작한 기이한 오브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장치들은 모두 연속성을 상실한 채 비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불투명한 판 뒤에서 빛을 통과시키며 수백 개의 언캐니한 그림자 이미지를 창출한다. 작가가 즐겨 읽은 사무엘 베게트의 『몰로이(Molloy)』처럼 오브제를 만들고 배열하는 방식은 의식의 자동적인 흐름에 기대어 파편화되고 분절되어 있다.「오디토리엄」의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대면하게 되는 지점은 수백 개의 오브제들이 투사한 전시장 뒷 벽면의 또 다른 그림자들이다. 거대한 수레의 움직임, 동물과 인간이 중첩된 형상 등 벽면에 비친 검은 그리자들은「오디토리엄」의 공간을 순간 묵시적인 그림자의 세계로 변이시킨다. 관객은「오디토리엄」공간의 앞뒤를 거닐며 리비도(libido)와 정감(affection)으로 가득 찬 드라마틱한 그림자 세계와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이곳은 플라톤이 『동굴의 우화』에서 의미화한 빛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표상의 표상', 그림자의 세계와도 같다. 이곳은 머물러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잠재적 역동을 가진 곳이다.
불투명한 아크릴 판을 경계로 뒷면에 놓여진 오브제 형상과 앞면에 투사된 그림자 이미지는 일대일로 상응하지 않으며, 원전의 오브제 형상을 온전하게 보존하지 않은 채 기이하게 변형되어 있다. 뮌이 표상한 이러한 그림자 이미지는 기억의 구조와 닮아있다. 기억의 이미지는 개별적인 명확한 이미지로 부상하는 것이 아니라 중첩, 치환, 교환되는 비선형적 이미지로 나타난다. 기억은 총체적인 연결 구조를 가지기 보다는 어떠한 일관성을 거부한 채 분절되어 있다. 여기서 불투명한 아크릴 판은 과거의 명징한 사건을 흐릿하게 하는 심리적 장치, 스크린의 막, 문화적 담론, 권력이 표방하는 스크리닝(이데올로기) 장치와도 같다. 뮌의「오디토리엄」은 오브제와 그림자를 통해 기억의 심리적 구조, 기억의 오류, 기억의 유동적 특성을 건져 올린다. 또한「오디토리엄」은 우주의 비밀을 암호와 문장으로 저장한 카밀로의 기억극장처럼 역사적 사건들, 잊혀진 순간들, 억압의 기억들, 다시 귀환된 기억 등, 인간 삶과 역사의 파노라마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며 분출된 기억의 저장고와 기억의 장소를 표상한다.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제시한 '기억의 장소(lieux de memoire)'2) 와도 같이 뮌의「오디토리엄」은 특정 사건을 환기시키는 사물과 공간, 기억의 해석들, 기억의 상징적 영역들을 포괄한다.
2. 기억의 효과는 밀랍판에 써내려가는 기록의 효과와 같다.3) '거듭 고쳐 쓴 양피지'처럼 이전의 기억을 기록하고 그 위에 또 다른 기억을 덧입힌다. 고대 그리스 비극 필사본을 담고 있던 양피지가 조심스럽게 손질되어 깨끗하게 된 후 고대 후기에는 알레고리적 전설을, 중세에는 영웅 서사시를 담을 수 있었던 것처럼4) 하나의 기억은 다른 기억 위에 중첩되고 최근의 기억은 이전 기억의 흔적과 잔상을 머금은 채 떠오른다. 뮌의 영상 작업「세트 Set(American wooden house)」(2014)는 바로 이러한 기억의 잔상효과를 보여주는 듯하다. 뮌이 미국 아트 오마이 레지던시 기간 동안에 찍은 풍경영상을 바탕으로 한 이 영상 작업은 연속된 화면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화면과 화면 사이의 암전을 기본 구조로 한다. 작가는 영상이 프로젝션되는 전시장 벽면에 야광 안료로 영상 안에 등장하는 풍경이미지를 회화적 방식으로 그려 넣어 관객이 암전되는 5초 동안 암흑 속에서 야광 안료가 발광하는 이미지와 마주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야광 안료가 발광하는 회화적 풍경 이미지가 이전 풍경 영상의 종류와 밝기에 따라 지각적으로 다르게 인식된다는 점이다.「세트」가 보여주는 영상 이미지와 회화적(야광) 이미지 사이의 중첩과 잔상은 기억의 팔림세스트 효과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단일하거나 총체적이지 않으며 또 다른 기억과 중첩되기도, 또 다른 기억에 의해 보강되기도, 반복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 양피지 사본이 최초의 흔적을 내부에 담지할 수 밖에 없듯이, 하나의 기억은 이전 기억에 의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기억 개념처럼 현재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과거에 의해 새겨진다.5)
동상은 한 시대와 공공(public)이 필히 기억하기를 요구하는 일종의 기억의 장소이다. 역사는 기억으로 각인시키기를 원하는 인물을 동상으로 화석화함으로써 그를 집단적인 문화적 기억으로 전승시킨다. 뮌은 뉴욕에 세워진 몇몇 동상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하는 영상작품「Statue Number」(2010)를 통해 내면화된 우리의 사회적 기억을 재점검한다. 예로 영상에 등장하는 조지 코핸(George M. Cohan, 1878-1942) 동상은 뉴욕 타임 스퀘어 한 가운데 현란한 전광판을 배경으로 뒷모습을 보인 채 묵묵히 서 있다. 그를 둘러싼 도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미세하게 숨을 내뿜는 동상의 뒷모습만이 남겨진다. 코핸은 뉴욕사회가 그의 '숨결'이 현재까지 남아있기를 간절하게 요구하는 당대 최고의 뮤지컬 제작자이자 극작가이다. 그러나 동상의 뒷모습이 암시하듯, 타임 스퀘어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테크놀로지가 내뿜는 빛과 에너지에 의해 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타임 스퀘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그곳의 집단 정체성을 요약하는 문화적 기억(동상)은 시공간의 변화에 의해 언제든지 망각되거나 그 힘을 상실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해가는 뮌 영상의 풍경처럼, 얼굴을 더 이상 인지할 수 없는 동상의 뒷모습처럼, 집단기억과 문화적 기억은 물리적 환경에 의해 언제든지 흔들리거나 사라지거나 역행할 수 있다.
동상이 집단 사회의 기억을 응축한다면, 개인의 축적된 기억 보관소는 가정이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극장이자 취향의 저장고(아카이브)와 같은 곳이다. 뮌은「오프 스테이지 Off Stage(Making Ornament)」(2014)를 통해 세대를 거쳐 기억이 전수되고 축적되는 공간을 의미화 한다. 중앙에 자리 잡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중심으로 오각형 형태의 아크릴 박스가 둘러쳐져있다. 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면 관객은 작은 박스-극장을 통해 트리에 걸린 각기 다른 다섯 가족의 장식품들을 바라보게 된다. 미술가 가족, 문학가 가족 등 다섯 가구에서 취합한 상이한 장식품들은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의 기억과 취향, 거주방식을 담지한다.
심연 속에 감추어진 기억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의 시도를 거쳐야 한다.6) 뮌의 신작「커튼 콜 Curtain Call(Blinking doll)」(2014)은 10미터의 길고 좁은 퍼스펙티브한 공간에 세 개의 커튼을 4미터 간격으로 설치한 다음, 그것들이 센서에 의해 열리고 닫히게 만든 설치 영상 작품이다. 세 개의 커튼을 가로질러 10미터 공간의 반대편 벽에는 눈을 깜빡이고 있는 인형의 클로즈업된 영상이 투사되어 있다. 관람객은 세 개 커튼이 우연히 열린 틈을 통해서만 영상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인형의 영상 이미지는 작가 삶에서 떠오른 기억의 한 조각, 파편이다. 개인사와 연관된 멜랑콜리한 그 기억은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던, 심연 속에 감추어 놓은 삶의 기억이다. 파묻힌, 감추어진, 억압된 기억을 끌어오는 것은 세 개 커튼의 엇갈린 열림처럼, 우연히 열린 틈을 통해 가능하다. 이러한 기억은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냄새의 효과와도 같이 인생에서 어떤 계기에 의해 매우 간헐적으로 떠오른다. 작가는 기억이 반추되고 떠오르는 순간을, 오랜 과정을, 지난한 시도들을, 기억의 소환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커튼콜이 닫히고 열리는 과정으로, 눈의 깜박임으로 의미화 한다.
3. 극장이 등장인물(배우), 무대(사건), 그리고 관객으로 구성된 유기체라면 선수, 경기, 관객의 조합으로 작동하는 경기장은 극장의 동종체일 것이다.「앙상블 Ensemble(Ethics Business)」(2014)에서 작가는 경기장-극장의 형식을 빌어 기억, 군중,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축소된 모형의 권투 링 경기장과 8채널 사운드로 구성된 이 설치 작품 에서 처음으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작은 모형 링 위로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이다. 피비린내 나는 선수들의 싸움, 관객들의 거대한 함성, 군중의 열기와 박수 등, 어찌 보면 미디어로 기억되는 권투 경기장의 풍경은 으스스한 연기와 공간을 가로지르는 배경 사운드로 대체되었다. 권투경기의 스테레오타입화 된 미디어 기억을 해체하고 구체적 사건과 내용을 소거함으로써 그것의 최소한의 흔적과 뼈대만을 남겨놓은 이 작품은 역으로 경기를 둘러싸고 작동되는 사회적 맥락을 재 사유하게 한다. 관중의 몰입을 유도함으로써 사회정치적 상황에 둔감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전략은 몰입의 최적의 장소로서 경기장-극장이 가지는 정치적 컨텍스트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의 부제인 '도덕 사업(ethics business)'은 윤리와 사업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을 통해 제목 '앙상블'과 역설적 관계를 이루면서, 경기의 현실적 의미가 유도하는 '윤리'적 맥락을 들추어낸다.「앙상블」은 미디어가 기억하고 제도화하는 경기장을 둘러싼 집단기억을 자동 반복하는 대신, 여기에 균열을 가하면서 경기의 현실적 가치가 발생하는 문맥들과 조건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다.
기억은 단지 과거의 닫힌 영역이 아니다. 현재를 서술할 때 그 내부에 잠입하여 현재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다. 즉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부단히 넘나들며 '지금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정령'과도 같은 것이다. 또한 기억은 한 개인의 영역에서만 한정 지을 수 없으며, 집단적이고 문화적인 범주에서 작동한다. 기억은 시대를 관통하며 지배 권력이 항상 감시하고 지배하고 싶어하는 정치적 영역에 존재하기도 한다. 르네상스 이후 역사적으로 기억이 판옵티콘(감시)의 극장 구조와 연관성을 가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억의 수많은 의미작용들을 11점의 영상설치 신작으로 제시한 이번 뮌의 개인전에서, 나의 기억을, 역사의 한 순간을, 집단의 기억을, 기억의 상징들을 현재시점에서 유의미하게 호출할 수 있을 것이다. ■ 배명지
* 각주 1) Mieke Bal, "Introduction," Bal, Crewe and Spitzer(eds.) Acts of Memory: Cultural Recall in the Present, Dartmouth College, 1999, pp, vii-viii, 박은영, 「한국전쟁 폐허(ruin)와 그 이미지 연구」, 홍익대학교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논문, 2013, p. 45에서 재인용. 2) 피에르 노라 지음, 김인중·유희수 외 옮김, 『기억의 장소』 1-5, 나남, 2010. 3) 플라톤은 기억을 고대의 학생들이 글쓰기를 배웠던 도구인 밀랍판과 같이 보고 있다. 알라이다 아스만 지음, 변학수·채연숙 옮김, 『기억의 공간_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그린비, 2009, p. 202. 4) 위의 책, p. 205. 5) 위의 책, p. 19. 6) 위의 책, p. 218.
Vol.20140320f | 뮌展 / mioon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