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31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3 GALLERY3 서울 종로구 인사동 5길 11 (인사동 188-4번지) 3층 Tel. +82.2.730.5322 www.gallery3.co.kr
풍경과 관념사이 ● 김희영의 화면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운필에 의한 다양한 선획의 구성이다. 모필로 선을 그을 뿐만 아니라 먹 자체를 바로 화면에 문질러나가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그려나가는가 하면 먹지 위에 그리듯 프로타쥬의 방법을 원용한 떠내기 등 일반적인 기법의 범주를 벗어난 것들이다. 모필에 의한 그리기에선 엿 볼 수 없는 힘찬 마디나 날카로운 선획과 굴절은 이처럼 변화있는 그리기의 모색에서 획득된 것이다. 따라서 화면은 무수한 운필의 자적들로 채워지고 있는 인상이다. ●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분절된 화면의 구성이다. 그의 대부분의 화면은 긴 횡축이거나 장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긴 횡축의 화면을 쌓아올리듯 계속 겸쳐 올리면서 하나의 커다란 화면을 만든다. 마치 블라인드와 같은 단면화된 면들이 겹겹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각 면에 시술된 운필의 자적은 서로 이어지면서 묘하게 겸쳐지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면서 지속과 변화, 또는 응축과 확산의 구조적인 변주를 시도해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인상되는 것은 수묵에 의한 선조와 운염의 구성에 일관되고 있다는 점이다. 때때로 붉은 바탕의 종이가 흰 화면과 대비를 이루는 변화가 시도되고 있긴 하지만 수묵이 주는 담백함과 압축된 아름다움이 지배되고 있음은 근래에 보기 드문 예라고 할만하다. 화학적인 재료에 의한 검은 먹빛의 남용이 현대적 회화의 실현이란 미명하에 남발되고 있음을 보면서 수묵이 지닌 깊은 정신적 여운이 날로 퇴락해감을 안타까워하는 현실에서 김희영의 화면이 지탱하고 있는 수묵에 대한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의 위안이 되기에 충분하다.
김희영의 화면엔 화조나 풍경 등 연상적 이미지가 풍부하게 점검되지만 그것들은 우리가 보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관념의 세계로 그 모습을 감춘다. 지금까지 그가 다루어왔던 것은 구체적인 대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초기엔 리어카 같은 현실적 소재를 수묵구성으로 시도해 보였다. 이후 그의 화면은 보다 전통적인 화제로 경사되면서 그러한 화제를 현대적 조형으로 재구성 해내는 작업들에 경주되었다. 근작들도 같은 문맥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근작은 부분적으로 풍경이나 화조의 요인들을 발견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이미 그러한 대상성을 탈각한 채 운필이 만드는 순수한 자적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 인상이다. 화면은 풍경과 관념의 사이에서 가까스로 자립한다고 할까. ● 추사가 글씨를 쓰면서 무심코 붓을 고르기 위해 옆 종이에 문질은 붓자국이 그대로 훌륭한 난초그림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난초를 그리지 않으면서 난초가 태어난 것이다. 김희영의 화면도 대나 난초나 매화를 그리지 않으면서 대나 난초나 매화를 연상케 한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나타나는 잠재성의 구현인지 모른다. 추사가 무심코 붓을 고르긴 했지만 이미 그 속에 내제된 잠재성이 난초의 형국으로 재현된 것과 같이 말이다. 보는 사람은 거기에서 난초를 읽기도 하고 대나 매화를 찾을지 모르나 작가는 단순한 그린다는 애초의 순간순간에 부단히 되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대상이기에 앞서 호흡이고 리듬일 따름이다. 어쩌면 그의 화면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떤 것도 아닌 동양인의 회화에 대한 관념, 생명의 율동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른다. ■ 오광수
일상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흘러가고 있고 공간은 비어 보이지만 사실 가득 차 있는 상태이다. 나의 작업은 경험했던 시간의 기록이며 머물렀던 공간의 재현이다. 나는 그저 내게 맞는 그릇의 테두리만큼 곱씹고 들여다 보아 담아낼 뿐이다. ■ 이춘복
Vol.20140312d | Dialogue-김희영_이춘복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