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207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버튼 Gallery Button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 35길 83(성북동 1가 103번지) 1층 Tel. 070.7581.6026 www.gallerybutton.com
우리가 사는 세상, 더미랜드 ● 갑과 을의 전쟁, 약육강식, 출구 없는 미로, 이 난처한 상황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더미들의 모습. 작가 강혁이 그리고 있는 더미랜드와 그 곳에서 살아가는 더미들은 고단한 오늘날의 상황과 이 상황을 버텨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았다. 이 작품 연작은 일명 더미 시리즈로 그는 2011년 이 연작을 시작하였다. 더미(dummy)는 영어로 대량생산된 구관절 나무인형을 뜻하기도 하고, 우리말로는 한 장소에 모여 쌓여있는 큰 덩어리를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작가가 그리는 더미랜드의 구성원인 개성 없는, 획일적인 모습으로 대량생산된 목각인형은 인간조차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조차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를 은유한다. ● 작가는 더미 시리즈를 더미산수화와 더미랜드로 크게 구분하여 발전시키고 있다. 그는 더미산수화 시리즈에서 공동체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의 제도를 만들거나 개선하지 못하고 그 거대한 흐름에 그저 일생을 휩쓸릴 뿐인 현대인들의 암울한 운명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를 테면 서로 다른 규모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더미의 모습은 삶을 위해 노력하지만 자원의 불균등, 동등하지 않은 출발선 등으로 인해 삶의 질을 동일하게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미산수화는 산수화의 조형성을 추구하면서도 기존 산수화가 추구해 온 미적 개념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의 고통스러운 풍경,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시각화한 것이다.
더미랜드 시리즈에서는 이 주제를 더 구체화시킨다. 소수자, 약자를 짓밟으며 탄생하는 공동체 대표의 모습, 어떤 길을 선택해도 출구가 없기에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더미의 모습, 의학에 과도하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오늘의 세태 등등. 이런 주제들을 작가는 순발력 있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즉각 그림으로 옮기려고 노력한다는 그의 말에서 더미랜드 시리즈가 왜 드로잉이라는 소박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드로잉은 산수화처럼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지만 시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그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느끼고 경험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기고자 하기 때문에 강혁의 더미랜드는 희망적이기보다 암울한 쪽에 가깝다. 만약 이후에 그의 더미랜드에 어떤 변화가, 장밋빛의 변화가 생긴다면, 그건 세상이 변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날들을 꿈꾸어 본다. ● 강혁은 쉽지 않은 결정을 몇 번이나 했다. 건축을 전공하다 순수예술로 길을 틀었고 작업에 자신이 붙었을 즈음 먹고 살 궁리도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처음 그 자리다. 아니, 딱 그 자리로 돌아왔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작품은 단순히 형태를 넘어 장르까지 바뀌었다. 융복합 따위의 단어가 유행하는 지금, 보는 사람 입장에서야 장르 좀 바뀐 게 큰 일이겠냐 만은 작가가 그걸 결정하기까지 겪어야 했을 고민의 크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다. 갤러리 버튼의 신진작가 지원전시 My Little Buttons의 첫 주자는 그런 강혁이다. 이 전시는 그런 강혁과 그런 그의 결정을 걱정하고 응원하는 전시다.
혹시 학부 시절의 강혁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번 전시에 걸린 그의 작품에 당황할 지 모르겠다. 한글의 자모음에 색깔을 대입하고, 관람객이 쓰는 글을 온갖 색으로 출력해 벽에 붙이는 그의 작업은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는 발상이다. 아마도 그 때 강혁의 전시에는 총천연색의 거대한 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년에 작업실에서 만난 강혁은 한지 위에 검정색 만년필로 산수를 치고 있었다. 작은 구체인형의 이미지를 쌓아 그렸기에 더미(dummy)산수라 이름 붙인 이 작업에 그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고, 그 다음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그의 더미산수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완성된 작품은 순수미술이라기보다는 마치 산업디자인이나 일러스트처럼 보이기도 했다. 들인 공의 결과물, 고민의 순간의 집적이었으나 산처럼 쌓인 더미(dummy)를 인간에 비유하여 작품 자체가 사회의 은유가 되는 그의 작업이 딱히 남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지나치게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비유였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해 온 이야기였다. 되려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만년필이 손에 익을 때까지 그렸던 작은 드로잉들이었다. B5 용지에 힘을 빼고 그린 만년필 드로잉 가운데는 더미 산수와 동일한 주제를 가진 것들도 있었으나, 소소한 일상과 가족사,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업들도 있었다. 몇몇 작품들은 의외로 사람 속을 뜨끈하게 하는 힘도 있었다. 더미산수의 구체인형이 객체화, 타자화 되는 동안, 드로잉 속의 구체인형들은 정말 '우리'를 닮아가고 있었다.
만년필은 뾰족한 촉으로 종이의 표면에 흠집을 내고 그 흠에 잉크를 흘려내 글씨나 그림을 만들어내는 도구다. 더미 산수는 만년필이라는 도구의 특성을 이용해 날 선 이야기들을 풀어낸 작업이다. 다만 그것은 매체의 날카로움과 강렬한 주제의식이 한데 녹아 큰 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크게 맞부딪혀 불꽃을 튀기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강혁의 드로잉은 날카로움과 날카로움이 만드는 에너지가 아니라 날카로움과 뭉근함이 충돌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큰 목소리를 가진 두 사람보다는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 하나와 잘 들어주는 사람 하나가 대화를 완성하는데 더 효과적이듯 뾰족한 만년필 촉이 만든 선들과 한지의 거친 표면, 슬쩍 번진 잉크의 흔적이 만든 이미지는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좋은 상성을 보여준다. ● 이번 전시에는 만년필 작업과 더불어 근래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동판화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이미지 자체는 만년필 드로잉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동판화를 찍을 때 생기는 잉크의 흔적과 날카로운 선들은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뾰족한 촉으로 동판을 긁어 만든, 아이러니한 온기다. 흥미로운 점은 만년필에서 동판화로 진행되는 동안 그는 '뾰족한 것으로 긁어내는' 작업의 형태를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불어 작품의 크기는 작아졌다. 날카로운 선의 집합이 만든, 지나칠 정도로 강한 조형성과 형식미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찾아낸 듯 하다.
만년필로 그린 더미 산수와 드로잉이 동판화로 변화, 진행되는 동안 그는 작품의 이미지와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어우러지게 하는 방식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작업 방식이 특정되는 과정은 그의 작업이 점차 형태를 갖추고 단단해지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발전시키는 과정은 효율적으로 작업을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술작업 과정에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만, 지향점을 향해 전보다 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강혁이 작업을 해나가는데 있어 시행착오에 할애할 시간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는 앞으로 더 많이, 그리고 더 능숙하게, 더 좋은 작업을, 더 적은 시간을 들여 해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강혁은 언젠가 다시 펜을 놓고 먼 산을 바라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해내려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 그래서 다시 작업을 시작한 이래 선보였던 모든 방식을 내놓는 이 전시는 그에게 노란색 신호등 같은 의미다. 멈추든 달리든 주의해서 판단하면 된다. 바라건대, 지금 그는 속도가 붙은 자동차처럼 보이니 어정쩡하게 멈추지 말고 조금 더 가속페달을 밟았으면 좋겠다. 사실 유턴하기에는 너무 많이 오기도 했다. ■ 오경미
Vol.20140310b | 강혁展 / KANGHYUK / 康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