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제1전시장 Tel. +82.22105.8190 www.kepco.co.kr/artcenter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대구에 살던 나의 아버지의 가족은 피난준비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그 난리통에 소고기를 50근 넘게 구해오셔서 장조림을 만들었고 소달구지에 식량과 이부자리와 의복 등을 싣고 부산으로 피난을 하면서 매끼 식사 때마다 식솔들에게 따뜻한 쌀밥과 장조림을 먹였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피난민의 평균적인 형편에 비했을 때 대단히 사치스러운 식생활이었을 것이고 많은 피난민들로부터 부러움을 샀을 것이지만 또 한편 궁핍했던 이들의 원성을 샀을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 내가 학생시절 첫 번째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선배의 집을 전전하면서 하루 이틀 씩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 다닌 적이 있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유학생들의 살림살이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는데 어떤 이들은 깨끗한 아파트에서 정갈하게 살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모든 짐들이 다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매우 지저분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그 중에 내가 제일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한 여자선배의 집이었는데 그 선배의 집에는 세간이 하나도 갖추어져 있지 않고 방 안에는 이부자리 한 채와 큰 트렁크 가방 하나가 놓여있었다. 모든 옷은 물론 그 트렁크 안에 다 들어가 있었고 집안에서는 음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왜" 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언제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국가에서의 삶의 틀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터전을 일정한 구역 안에 제한하는 것이 안락한 삶을 보장할 것 같은 인식을 하게 끔 설계 되어있다. 거주지가 그렇고 학교가 그러하며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의 지리적 조건들이 그러하다. 얼마 전 본의 아니게 이 Frame을 통째로 과천에서 세종시로 옮겨가야 했던 한국의 공무원들의 집단적 공황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치열한 삶의 마지막에는 비로서 온전히 정해진 공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대목에서 'Rest in peace'란 표현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 아티스트의 삶은 이와는 달리 언제나 주거지를 옮길 수 있는 Nomadic한 스트럭쳐가 담보되어 있을 때 오히려 생산적인 상태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러한 삶은 '안정'이라는 개념과는 일정기간 괴리되어지기 때문에 많은 젊은 아티스트들은 초기에 이러한 불안정성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 굳이 안정이 담보되어 있지 않은 '현대미술'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마츄어 예술 교육자나 비슷한 조건의 친구들끼리 취미수준의 미술을 구사함으로도 최소한의 예술가로서의 존재감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최근 우후죽순같이 생겨난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Artist-In-Residency)은 많은 젊은 아티스트들의 노매딕한 삶과 거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주고 있는데 이것 역시 '시간'이라는 제한 때문에 한국어 표현에 의하면 소위 "레지던시 메뚜기"생활을 해야 하는 고초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을 감내해 내더라도 정착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우리에게 용기와 낭만이 남아있는 한 인생을 통해 적어도 한 시절을 누려볼 만한 사치이며 그것으로부터 얻게 될 가치는 다른 것으로 치환되어 지지 않는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던져진 한국과 일본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2013년 8월 그리고 2014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오사카와 서울에서 교류전시를 가지게 되었다. 매우 제한된 예산과 시간적 제약 그리고 '언어장벽'때문에 이들이 만들어 내는 전시는 기획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한계가 발견된다. 자국에서의 전시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할 때는 옮겨갈 수 있는 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한 차례씩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보통의 경우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업을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줄 때 "최대치(maximum value)"를 내어놓게 되는데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크기'의 문제가 개입하게 된다. 물리적 이동에 제한이 없을 경우 이 가치의 주입에는 문제가 없지만 20Kg의 수하물 제한이라는 조건이 생겼을 때는 여러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발생한다. 이제 '현명한 결정'은 이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 아티스트들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될 것이다. ● 삼국시대에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철로 된 투구에 물을 끓여서 야채와 고기를 넣어 끓여 먹었다고 한다. 13세기 고려시대, 당시 정벌군 이었던 몽고인들이 이 조리법을 발전시켜서 신축성이 좋은 말의 오줌주머니에 건조시킨 양고기 등을 넣고 정벌 전쟁 때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도 투구에 물을 끓여서 현지의 채소와 말린 고기로 식사를 해결하면서 전쟁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등산을 할 때 물이 풍성한 계절에는 계곡과 샘에서 물을 얻지만 겨울에 계곡이 얼었을 때는 얼음이나 눈을 녹여서 식수를 해결 한다. 인류는 거주지를 이동시켜야 하는 순간에 봉착했을 때 제한이라는 조건을 적절히 개념화하고 환경을 분석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러한 해결의 과정은 어떤 때는 개별적인 아이디어가 되기도 하고 그 아이디어는 징기스칸 요리와도 같이 고유한 이름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이번 한일 교류전『Add Me』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해결하고 그것들을 시각화 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도록 하자. 이웃나라로 옮겨와서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들은 자기가 짐 속에 담아갈 것들과 이웃나라의 친구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해내고 그것들을 잘 조합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이들은 '최대치'의 오류를 피해갈 때 이번 전시의 의미를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을 점유해서 얻는 물량적 크기로 얻게 되는 가치가 아닌 무형의 가치를 자신의 Carrier안에 담아와서 그 해체된 파편들을 전시장 공간 안에 지혜롭게 조합해 낼 때 그리고 이를 통해 미술작품이 점유하는 물리적 공간 이외의 공간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낼 때 어쩌면 우리는 이들을 통하여 '개념주의 미술'의 신화를 다시 한 번 목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박지훈
Vol.20140215c | CARRY MORE-한일 교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