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213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다움 Daum Kim_Khvay Samnang_Fei Jun_Jiang Pengyi Lu Yang_Nalini Malani_Tejal Shah_Hikaru Fujii_Yoshinori Niwa Finger Pointing Worker_Kolatt_Yadana Win_Su Hui-Yu_Tu Pei-Shih Sompot Chidgasornpongse_Mark Salvatus_Renan Ortiz_Halil Altındere Hamra Abbas_Şener Özmen_Hoang Duong Cam
주최 / Asia Curators Network 주관 / 대안공간 루프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8:00pm
대안공간 루프 ALTERNATIVE SPACE LOOP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5-11번지 Tel. +82.2.3141.1377 www.altspaceloop.com
검열의 바다 ● 제7회 무브 온 아시아의 주제가 '검열(Censorship)'로 정해진 것은 이 개념이 아시아의 현재를 포착하는 데 유효하리라 보였기 때문이다. 검열이 특정 지역만의 문제일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구 사회에 비해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이 문제와 한층 친숙할 거라는 가정이 있었다. 아시아는 근대화의 역사에 있어 명백히 후발 주자였고, 급속한 사회 변화와 함께 격동의 시간을 겪어 왔다. 그리고 이 가운데 아직 민주주의가 충분히 정착하지 못한 나라들에서는 사적 표현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감시와 통제가 지속되고 있다. 사실 이번 전시에서도 미얀마, 태국, 베트남 등에서 참여하는 작업들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검열을 다룬다.
그러나 Censorship의 내용 전반에 대한 리서치가 진행되면서, 차츰 이 주제는 모호하고 넓은 외연을 드러내게 되었다. 독재 정권이 어떤 사상이나 표현을 강제로 금한다는 좁은 뜻으로 검열을 논한다면, 여기서는 문제를 이해하고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이 비교적 쉽다. 그러나 우회적인 불이익을 통한 위협이나 현실에 대한 체념에서 기인하는 '자기 검열'은 더 복잡하고 포괄적인 문제다. 이는 정치 체제와 무관하게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며, 일상과 분리할 수 없는 미시적인 형태로 작동한다. 이 전시는 오늘날 더 지배적인 쪽이 후자라는 점을 숨기지 않으며, 이때 아시아라는 단서는 보다 보편적인 문제를 조명하기 위한 특수한 프레임이 되는 셈이다.
거대한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펼치자면 끝이 없으니 깊숙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예술이 검열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독재의 횡포에 대해서라면 예술은 저항과 고발을 수행하거나, 풍자와 패러디로 빈정대거나, 혹은 자학을 일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빅브라더'가 없는,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형식이나 그 책임 소재가 다양하고 불분명한 현실에서는 검열에 대한 투명한 이미지를 포착하기도 어렵다. 에마뉘엘 퓌에라가 엮은 검열에 대한 검은책(2012)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검열의 민영화를 폭넓게 논한다. 기업과 광고주는 사법적 규제가 아닌 경제적 압력을 통해 자기 검열을 조장하는데, 이는 개인에게도 영향을 주지만 무엇보다 언론에 적용될 경우 큰 효과를 발휘한다. 공권력에 의한 검열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는 사회의 안녕뿐 아니라 사적 영역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서 수행된다. 종교 집단이나 그 밖의 사회 운동 단체들도 종종 문화정치적 표현에 대한 선악을 규정하고자 한다. 인터넷, 특히 SNS는 단체뿐 아니라 개인들도 각자 가치관에 따라 타인의 표현을 선별하고 차단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내밀히 작동하는 자기 검열까지 생각한다면, 검열의 세계는 공사를 불문하고 바다처럼 넓다.
넓게 본다면, 검열 그 자체를 비정상이나 잘못으로 단언할 수는 없다. 금기와 제약은 문명이 성립하기 위한 근본 조건이다. 물론 제도적 권위나 자본의 힘으로 강요되는 검열은 폭력적이며 유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종 차별, 아동 포르노, 전쟁과 불평등이 있는 세계에서 무한한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사실 추상적인 단어에 불과하다. 나의 자유가 타인의 부자유, 고통일 수 있다. 또한 자기 검열은 비겁한 순응이 아니라 불필요한 투쟁을 피하려는 선택, 혹은 사회적 공존을 위해 욕망을 제어하는 기제의 일부일 수 있다. 하다못해 타인과 일상에서 대화할 때조차 우리는 속내를 다 드러내서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검열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자유를 제한하는 각각의 선택이 과연 정당한가 아닌가에 있으며, 이 물음은 바닥 없는 철학의 심연으로 흐른다.
Censorship은 검열의 바다를 펼쳐 보이는 20여 편의 영상 작업을 전시한다. 이들이 다루는 검열의 이미지는 넓고 다양하며, 각각의 배경을 이루는 아시아 각 지역의 현실은 그 이미지에 무거움을 더한다. 그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세 나라에는 국가 기관에 의한 강력한 검열이 존재한다. 인도에서 온 작업은 사회를 좌우하는 거대한 힘을 가진 종교와, 그 속에서 검열당할 수 있는 개인의 고통을 나타낸다. 일본의 참여 작업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작금의 재앙이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번 전시에는 자기 검열의 문제에 깊이 접근하는 여러 작업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공론화하는 데 대한 개인의 두려움, 이런 두려움을 만드는 난국들, 혹은 우리 자신도 검열에 참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반성을 드러낸다. 다만 이런 다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Censorship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적인 성격이 있다. 즉, 모든 작업은 검열을 단지 사회적 개념이나 정치적 이슈로만 다루지 않으며, 이 문제에 처한 개인의 실존을 희석하지 않는다. ● 다시 앞서 던진 물음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예술은 검열을 악으로 규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악을 단정하는 일에는 사법과 정치, 저널리즘이 더 능숙하며, 이는 다시 무언가를 허용하고 금지하며 또 다른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예술이 담는 세계는 그리 명료하지 않다. 객관적 거리에서 검열을 논평하는 대신, 예술은 그 안에 자리하는 개인을 기록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검열의 잘못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긴 방황을 예고한다. 이 전시의 참여 작업들은 해답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향적인 현실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끝없는 의문을 담을 그릇을 제공한다. Censorship은 어둡고, 물결이 거칠고, 별은 멀리 보이는 검열의 바다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 황대원
Vol.20140213d | Censorship-The 7th Move on Asia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