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207_금요일_05:00pm
퍼포먼스 / 이건용_성능경_한큐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휴 Art Space Hue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68 성지문화사 3층 302호 Tel. +82.31.955.1595 www.artspacehue.com
이번 전시는 그동안 크리큐라티스트(cricurartist:critic+curator+artist:비평전시기획작가)를 표방해온 윤진섭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기 위한 모색의 1탄이다. 그는 1976년 이후 40 여 년에 동안 작가와 비평가, 전시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2007년 이후 퍼포먼스 활동을 재개하면서 왕치(王治/Wangzie)라는 예명을 사용해 왔으나 이번 스페이스 휴의 전시에서는 'Han Q'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Han Q aka Wangzie aka Yoon, Jin Sup 은 양파처럼 아무리 미분화해도 찾아지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 윤진섭은 2009년 이후 Facebook에 Pajama Jun, Vindle Bindle K, Vindung Bindung Y, So So(小小), 천둥치는 이 밤에, 아침에 힘(朝力), 진자(晉子:Jinja), 지족거사(知足居師), 뒤죽박죽Q(Mingle-Mangle Q), Oui-sunja, Don Fuan 등 20여 개의 예명을 사용해 왔는데 이는 추사 김정희가 평생에 걸쳐 334개의 명호를 사용한 것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숫자이다. 윤진섭의 실제 작품은 전시가 개막되기 전까지 공개되지 않으며 전시 개막 후에는 퍼포먼스가 이어지는데 이 또한 미리 공개하지 않는다.
한 달 동안 지속될 이번 전시의 특징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데 있다. 기존의 전시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전시회는 매 순간 변하는 인체나 사회처럼 하나의 유동체로 작동할 것이다. 이는 전시회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나의 전시관(展示觀)에 토대를 두고 있다. "어떤 관객이 이 작품을 보았는데 얼마 뒤에 다른 관객은 다른 작품을 보았다면 어떤 상황을 불러올 것인가"가 나의 관심사이다. 이번 전시는 관객의 미적 체험에 대한 하나의 '실험의 장(場)'이 될 것이다. ● 나의 관점은 이처럼 기존의 전시 문법의 '관례(convention)'와 '틀(frame)'을 바꿔보자는 데 있다. 나는 한번 설치되면 작품이 철수될 때까지 고착돼 있는 전시를 '죽은 전시(dead exhibition)'로 규정한다. 그것은 시체처럼 비활성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은 전시장에 설치되는 순간 죽는다. 전시장은 장례식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전시가 장례식이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인공호흡을 하거나 정신을 차리게 따귀를 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는 무당이기 때문에 죽어가는 작품을 살리기 위해서는 늘 '푸닥거리(굿)'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내가 지난 70년대 이후 미술 활동을 해 오면서 경험한 것들의 총화가 될 것이다. 최근에 나는 비평가(1990년 이후), 전시기획자(1987년 이후), 작가(1976년 이후)로서 나의 정체성을 'criㆍcuraㆍrtist(크리큐라티스트:critic+curator+artist의 합성어)'로 규정하면서 이 세 가지 요소가 융ㆍ복합된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는데, 이 용어는 나의 정체성을 잘 대변해 준다. ● 일상과 예술의 일치는 지난 몇 년간 나의 삶을 잘 대변해 주는 키워드이다. 예술은 '따로 국밥'이 아니라 '잡탕'이자 '짬뽕'이며, '비빔밥'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2011년 부천 전철역 광장에서 발표한 「청소」 퍼포먼스처럼 예술은 청소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실제 환경미화원을 고용해 퍼포먼스를 시키는(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이 퍼포먼스를 하는지조차 모르는) 대리 행위일 수도 있다. 그것이 예술인가? 나의 궁극적 지향점은 예술이 아니길 바라는 지점에 두어지지만, 예술계에 보고가 돼 번번이 실패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딜레마가 나의 숙제인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도 인생처럼 빗나가야 한다.
전시 오프닝 날 전시장에는 폐품으로 만든 오브제들이 몇 점 놓이거나 걸려 있게 될 것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인생의 다이너마이트」는 다이너마이트처럼 생긴 오브제이다. 이는 인생에 대한 하나의 비유로서 보는 사람들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전시기간 동안 전시장에서 벌어지는 나의 퍼포먼스는 나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사물들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든다. 그것이 과연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편의상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작품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사물은 초즈의 치즈를 선택했다(La chose chose Chose's cheeze)」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내가 어떤 계기로 갑자기 떠오른 세 개의 똑같은 단어들(하나는 불어, 둘은 영어)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내가 페이스북에 이 문장을 올렸을 때 나의 페이스북 친구인 프랑스인 알랭 파페로네는 불어로 번역할 경우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그렇지! 세상에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살아가지 않아? 비트겐슈타인의 잘 알려진 말처럼 문제가 없으니 해답도 없다.
cricuartist(크리큐라티스트)는 critic(비평가), curator(전시기획자), artist(작가)의 합성어이다. 최근에 나의 삶을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키워드로 설정한 용어이다. 나는 이 세 가지의 삶을 살아왔다. 7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는 작가로서, 80년대 후반부터는 전시기획자로서, 90년대 이후에는 비평가와 전시기획자, 작가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예술적 삶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일상적 삶 또한 내 삶을 구성한다. 밥을 먹거나 술 마시는 것 또한 내 삶의 일부다. 예술적 삶과 일상적 삶은 생활 속에서 믹싱이 돼 춤을 추는 가운데 발효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술은 경전이 아니며 그냥 심심한 물과도 같다. 그렇다. 예술은 발효이거나 물이다 썩지않는 물-이다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하나 발효된물은 불이 필요하지 않다 예술은춤춘다 우리의 머리위에서, 가슴팍안에서, 그 안에 오직 삶만이 존재한다, 단지 살아갈 뿐이다. ■ 한큐/왕치/윤진섭
Vol.20140208h | 윤진섭(한큐)展 / HAN Q / 韓Q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