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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206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로 55 1층 전시장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2013-2014 제7기 입주작가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그간 작가들의 입주기간 동안 제작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스튜디오와 외부에서 진행된 전시 및 개별 프로젝트 등을 정리하여 입주 후 작가의 향방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이번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는 권재현작가의 전시로 7기 입주작가의 16번째 아티스트 릴레이전이다.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권재현의 가볍고도 비어있는 합판조각 ● 예술에 있어서 조각의 역사는 두 가지 방향으로 흘러왔다. 하나는 입체적인 조각의 영역을 견고하게 유지시켜가는 것이었고, 하나는 조각이라는 개념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허물어가는 것이었다. 조각을 유지하는 차원의 작가들은 영구적인 재료와 형상에 대해 연구하였고, 탈조각을 추구하는 작가들은 점점 비형상, 개념을 추구해갔다. 물론 현대예술에서 조각과 탈조각의 영역을 구분하는 일조차 촌스럽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이라는 '개념틀'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일찍이 조각과 탈조각의 도전장을 내밀었던 수많은 현대조각가들이 조각을 회화적 평면과 연결시키려 노력하였다. 특히 1960년대 미니멀리즘이 선두에 섰다. 미니멀리즘의 가장 큰 공헌은 조각을 하나하나의 픽셀 혹은 오브제로 분해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21세기 디지털 조각을 예견한 역사적인 발견이었다. 현재 컴퓨터 가상환경 속에서 디지털화된 조각개념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 영역은 이제 인간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사고바깥까지 연결하고 있다. 권재현의 조각은 바로 이 픽셀화된 조각의 역사와 개념적으로 직접 연결된다.
1. 가벼운 평면의 조각 ● 권재현은 얇은 베니어합판으로 가방과 동물, 물고기, 인간 등 다양한 형태의 조각작품을 만든다. 그는 베니어합판의 조각조각을 이어 붙여 면적인 조각을 완성하는데, 그의 작품에서 합판조각은 입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면이자 하나의 픽셀로 기능한다. 그 픽셀은 하나의 덩어리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흩어져 하나의 베니어합판이라는 평면이 된다. 그것은 마치 회화의 캔버스나 디지털의 스크린과도 같이 평평하지만 잠재적인 변형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조각의 형상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골조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베니어합판 조각의 옆면을 접착제로만 이어 붙여가며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는 접착제 이외에는 표면을 위한 어떠한 장치도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조각은 형상의 외부와 내부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조각의 표면이 외형이자 동시에 내면인 것이다. 권재현 조각의 독창적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철판이나 스테인리스 스틸판 조각들을 용접하여 동일한 기법으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 많이 있기에 별반 독창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단지 형상을 위한 것이 아니며,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작품이 "가볍다"는 점이다. 얇은 베니어합판으로 제작된 조각은 단단한 표면을 통해 조각의 특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아주 가볍다. 물론 기법상의 특징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전달할 순 없지만 그가 얇은 베니어합판을 선택한 이유가 '가벼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였고, 이 개념이 작품의 방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작품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러한 생각이 잘 표현된 2012년 그의 개인전 『매달린 소』를 살펴보자. 그는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해 길러지고 도축되는 동물, 특히 소를 도축하고 그것의 고깃덩어리를 버젓이 걸어놓는, 소위 자본주의라 일컫는 이 시대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매달린 소의 형상을 조각하였다. 베니어합판으로 제작된 소는 5m의 거대한 크기로 제작되었고, 실제로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왼쪽 앞다리는 정육점에서 고깃덩어리를 잘라내듯이 뚝 떼어 내져 바닥에 떨어져 있다. 소의 몸체는 떨어진 앞다리를 통해 그 속이 완전히 비워져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소는 아주 가볍다. 그의 작품에서 '가벼움'의 개념은 여러 의미들로 다가온다. 자본주의 사회, 고도로 발전된 기술이 인간을 배제함에서 오는 상실적인 가벼움, 인본주의를 지향하면서 행해지는 갖가지 폭력에 대한 허무적인 가벼움, 이러한 가벼움을 지각하기 위한 예술적 활동의 환영적인 가벼움 등 그의 작품은 그것의 가벼운 깊이에 따라 여러 '가벼움들'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 거대한 조각은 한 사람이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다. 권재현은 작품을 통해 가벼움에 대한 개념을 직접적인 가벼움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시를 끝내고 그는 소의 몸통을 모두 분해해서 합판으로 다시 돌려보냈고, 소의 머리만 박제하여 작품으로 벽에 걸어놓았다. 우리 인간이 동물에 다루는 방식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 『매달린 소』는 특정한 소의 형태가 아니라 소를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에 대한 가벼운 제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고깃덩어리 소여도 되고, 아니어도 된다. 가벼움에 대한 반어적 제안들은 이제 형상이 아니라, 우리 인간존재에 대한 인식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2. 빈공간의 껍데기, 모던차일드 ● 권재현의 작품은 면으로 구성된 특정한 공간개념으로부터 왔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한 때 연극무대를 제작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연극무대에서 조형적 기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얇은 베니어합판으로 제작된 연극무대의 가변성과 그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연극이 예술에서의 조각의 형식과 닮아있다고 본 것이다. 입체라는 특정한 형상(그것이 조각적이든 탈조각적이든 간에)을 통해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예술로서의 조각이 가지는 기본 표현양식이라는 점이다. 조각을 구성하는 가장 최소단위인 단순화된 면을 통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되, 조각적 형상은 그 의미를 알리기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마치 연극무대가 그러하듯이 연극이 끝나면 당연히 해체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언제나 해체될 수 있는 얇은 베니어합판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베니어합판 조각은 가볍고, 또 속이 비워져 있다. 그리고 작품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언제나 열려져 있다. 매달린 소가 그러했고,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사람의 형상에서도 그러하다. 겉과 속을 동시에 보여주며 얇은 베니어합판은 연극 무대와 같이 극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이다. 즉, 형상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자 '껍데기'인 것이다. 그 껍데기는 합판이자 평면이고, 조각이며, 그가 표현하고자 한 작품의 '의미'가 된다. 작품 『모던차일드』는 '껍데기'의 개념을 잘 전달하고 있다. 작품은 어린 소녀들이 우비를 입고있는 형상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어른들의 사고에 의해 재단되고 길러지는 이 시대 아이들의 삶과 같이 우비라는 껍데기는 강력하고도 서글픈 현실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 껍데기는 『매달린 소』와 같이 특정목적에 의해 동일하게 길러지는 이 시대 인본주의의 공허함을 꼬집는 듯도 하다. 손이 발이 되고, 잠수부 오리발이 되는 아이들의 갑갑함은 바깥이 아닌 스스로 내부로 빠져들게 한다. 작품 『모던차일드』의 얼굴 속 비어있는 공간에 놓인 작은 미니어처 우비소녀의 뒷모습이 씁쓸함을 배가시킨다. 작품 『Untitled(man)』 또한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는데, 얼굴이 없는 인간의 형상을 한 조각은 외투만 입고 어정쩡하게 서있다. 작품의 얼굴 내부로부터 형성된 어두운 빈공간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비어있음을 인식케 한다. 그 비어있음은 조각의 형상이 아닌 그 조각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들의 신체로 채워야 함을 지각시켜주는 듯하다. 작품은 인간의 형상이 평면 조각들의 이어짐으로 구성된 빈공간이 아니라, 그것이 다시 평면으로 돌아가는 베니어합판의 가변성이 아니고, 또한 가벼움의 개념이 아닌 묵직한 우리들 신체가 가진 물리적 형상과 개념을 입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되묻고 있다. 그리고선 관객들이 바라보는 껍데기의 존재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권재현의 가벼운 조각이 조각의 영역을 유지시켜 온 역사적 방식과 탈조각적 해체에 모두 속하면서도 그것의 영역에서 또 다시 벗어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빈공간(void)", 인식의 틈을 메울 수 있는 공허하면서도 꽉 찬 공간, 형상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에 메여있지 않은 껍데기의 무대를 그는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이번 작품이 또 다시 『매달린 소』와 같이 해체되어 다시 평면의 베니어합판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껍데기는 충분히 그 속의 비어져 있는 가벼운 알맹이를 품고 있다. ● 칼 안드레가 자신의 조각을 밟고 다닐 수 있게 만들고, 도널드 저드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특수한 오브제'의 개념을 설파한 이래로 현대예술에서 조각의 영역이 무한히 확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로서의 조각개념은 더욱더 그것의 시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각이라는 3차원 형상의 한계를 실험하고 연구할수록 인간의 신체와 직접적으로 결부된 예술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권재현의 작품이 조각에 대한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지만 얇은 베니어합판을 통해 조각의 본질과, 우리 인간이 왜 인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볍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방식에 있어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방식이 아닌 직접적이고 가벼운(쉬운) 표현을 통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음이 특징이라 하겠다. 물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껍데기, 혹은 빈공간의 표현방식에 대한 예술적인 연구가 조금 더 감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의 가벼운 조각이 더욱 "가벼워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백곤
Vol.20140206c | 권재현展 / KWONJAEHYUN / 權宰賢 / sculpture